소실 1

[Chapter 1 : 기억] - 1

by Chris Paik 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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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싸늘하게 솟은 빅토리아 양식 건물 위에 떠오른 초승달에도 한기가 배어있었다. 불규칙하게 번지는 가로등 아래, 길가를 거니는 사내의 발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바람이 집마다 굳게 닫힌 유리창을 두드리며 만드는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은 초대받은 방문이 아니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의 낭만주의 클래식은 어느 사내의 등장으로 쥐 죽은 듯 꺼져버렸다.


“가까이 가면 안 돼. 창문도 열면 안 돼. 어서 자.”


“오늘도 왔군.”


밤이 깊어지자, 그날도 사내는 밖으로 나왔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일상이라 사람들의 욕을 한 바가지씩 얻어먹는 것도 그에겐 이미 익숙했다. 아니,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친놈’으로 불리는 그 사내는 며칠 전부터 밤마다 영국 다트포드Dartford의 마을을 차례로 돌며 거리를 배회했다. 항상 같은 시간에 나와 같은 경로로 돌아다니는 그 젊은 사내는 특유의 기름지고 엉킨 긴 머리에 후줄근한 옷차림이 눈에 띄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연신 작게 기괴한 소리를 내댔는데, 그것이 절대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였다는 사실이 그가 미친놈이라는 별칭을 부여받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마을의 주민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를 아니꼽게 여기며 경계했다. 그 미친놈이 다트포드에 나타난 지는 일주일이 조금 넘었지만, 모두가 그를 질타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를 내쫓아버리자는 시위는 이미 세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피해를 준 사례는 없어 그것들은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를 미친놈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취침 시간이 조금 당겨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저 미친놈이 또 지나가네.” 그가 길거리에 보이자 작은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 가게를 정리하다 말고 밖으로 나와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미친놈’으로 불리었다. 그의 행동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부를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미쳐있을 수가 없었다.


“존재부터 민폐일세.” 생선 가게와 맞닿아있는 술집에서 나이 많은 바텐더가 나와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미쳐버렸다지? 사람들이 그러더군.”


“그런 거 믿지 마. 다 지어낸 얘기지. 대화도 안 되는 사람한테 뭘 듣겠어.”


“하긴, 사람들이 요즘 로맨스 소설에 미쳐 사니. 아니면 별 미친 사람에게 시시콜콜한 사연을 붙이는 것이 관습이었는가?”


“저 남자, 언제쯤 그만 돌아다닐는지.”


그 미친놈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부정적인 편이 많았다. 애초에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고 이유에 걸맞은 별명인 ‘미친놈’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에게 여러 가지 헛소문과 사람들이 갖다 붙인 크고 작은 막장 소설이 달라붙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사람들이 그에 대해 떠들어댄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살인을 하고 세 번의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여덟 번의 파산을 경험한 후 여섯 번의 자살 시도에 실패하고 미쳐버린,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그가 동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을 때, 사건은 기어코 터지고야 말았다.

같은 시간, 프랭크는 식탁에 잔을 내려놓고는 술집에서 나왔다. 그는 범죄 조직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었는데 깔끔한 정장 차림에 키는 7피트 2인치(218센티미터)가 족히 넘을 것 같은 거구의 소유자였다. 결혼 후 손을 씻고자 조직 생활을 청산했지만, 말보다 먼저 나가는 손버릇과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마당에 좋은 가장이 되기엔 일찍이 그른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보다 샴페인을 더 사랑했다.


“샴페인이 부드러워 목 넘김이 좋더군요. 지폐는 카운터에 올려두었으니 거스름돈은 술에 대한 제 애증이라고 생각하고 넣어두시죠.” 그가 바텐더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프랭크가 돈이 많아 거스름돈 따위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애증이고 나발이고는 핑계고, 그는 그저 귀찮았을 뿐이었다.

그는 이 말을 끝으로 두 상인을 뒤로하고 곧장 미친놈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미친놈은 그의 인기척을 느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멈춰봐.” 프랭크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자신의 큰 덩치를 과시하며 그에게 말했다.


잔잔하고 차분한 말투였지만 그것은 그의 자만심 가득한 협박이었다. 프랭크는 미친놈이 자신을 두려워하길 바랐다. 잔뜩 술에 취한 프랭크는 조금 전, 화장실 거울 속에서 우락부락한 자신을 마주했다. 덩치는 말할 것도 없고, 얼굴도 평균 이상인 듯한데, 어디 가서 꿀리기야 하겠어? 그런 그에겐 그저 프랭크의 힘을 증명할 제물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혐오 대상이었던 미친놈이야말로 그 역할에 제격이었다.


하지만 미친놈은 멈추지 않고 그를 지나쳐갔다. 프랭크는 미친놈을 노려볼수록 그의 신비롭고 기괴한, 그런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압도당한다고 느꼈다. 그가 무섭게 생겼던가? 못생겼다면 자기보다 훨씬 못생겼지만,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다고, 프랭크는 생각했다. 그가 덩치가 크던가? 비실비실하고 작아서는 발길질 한 번이면 아일랜드까지 날아갈 것 같다고, 프랭크는 생각했다.


그렇게 프랭크의 주먹질에, 미친놈이 바닥으로 세게 엎어진 것은, 그가 미친놈에게 멈추라고 말한 후 3초나 지났는데도 그 미친놈이 멈추지 않아 발생했다. 하지만 미친놈은 피를 조금 흘릴 뿐, 조금도 아파하는 내색 없이 다시 일어서 가던 길을 갔다. 그 미친놈은 그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거 원, 아픈 걸 못 느끼는 사람인 건가? 무서운 걸 모르는 사람인 건가? 아니 애초에, 이 새끼가 사람이 맞긴 한 걸까?


곧 일방적인 폭행이 시작되었다. 멀리서 지켜보다 놀란 상인들은 혹여나 이 사건에 연루될까 허겁지겁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한밤중 어느 깡패의 이유 없는 폭행은 삼십여 분간 계속되었다. 한껏 얻어터진 미친놈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프랭크는 그를 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아침에 되어서야, 길거리에 훤히 보이는 핏자국을 본 마을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미친놈을 때린 게 프랭크라는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돌아 모두가 알게 되었지만, 그날 이후로 미친놈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기에, 경찰조차 쉬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미친놈뿐만이 아니었다. 프랭크도 함께 마을에서 실종되어 지금까지 그들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의 정확한 생사까지도….


이것은 당시 그 마을에 돌던 소문이다. 꽤 섬뜩한 데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었기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며 변형되고 왜곡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 소문의 근본적인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도시에서도 그 미친놈을 봤다는 목격담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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