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기억]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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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3월 27일.
찍찍대는 쥐새끼의 울음소리나 빠지지 않고 고인 빗물이 바닥을 흐르는 불쾌한 소리뿐이었던 골목의 고독한 침묵이 깨졌다. 여자가 진흙과 곰팡이로 축축해진 바닥을 디딜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방이 높은 건물로 틀어막힌 탓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들지 않아 깜깜한 곳이었다.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던 이 골목에 30년 만에, 누군가 들어온 것이었다.
이곳은 본래 1870년대, 거리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구박받던 굶주린 노숙자들이 사람들을 피해 모여든 곳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곳 사람들의 주식은 살아있는 쥐나 지네뿐이었고, 가끔 바람에 굴러들어온 통조림 쓰레기라도 있는 날엔 너도나도 모여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남아있는 찌꺼기를 한 번씩 맛보곤 했다. 위생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던 탓에 이곳은 온갖 전염병과 세균의 파라다이스였다.
때문에, 이곳 노숙자들의 사망원인은 대부분 전염병이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균들이 밖으로 확산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뒷골목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에게 잊혔기에 그곳에 갇혀 살던 노숙자들은 제대로 된 도움 한 번 받지 못하고 그곳에 나란히 누워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여자는 고독과 절망의 흔적으로 찌푸려져 있는 골목과 대조적으로 온기를 갖춘 황백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와 쥐의 배설물 악취가 코를 찔렀고 골목의 벽면에는 이끼와 곰팡이가 슬고 있었지만, 그 여자가 가장 경악했던 사실은 수많은 백골과 낡고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벽과 벽 사이에 홀로 남겨진 낡고 거대한 가죽 텐트. 그 안에는 꿈틀대는 어떤 것의 형체가 보였다. 생사가 확실치 않은 반송장인 것 같으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괴기한 그것을 보며 여자는 그 모습 자체로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 가죽 텐트는 다른 색상과 재질의 여러 가죽을 이어 붙여 하나로 만든 것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변색과 먼지로 인해 비슷한 색상을 내며 마치 하나의 큰 가죽같이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텐트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나는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지지대가 없어 무너져 내린 낡은 가죽 텐트를 이불처럼 덮어 자신의 온몸을 숨기다가 재빠르게 밖으로 긴 팔을 뻗어 지나가는 쥐 따위를 잡아먹는 노숙자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골목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가죽 텐트를 덮은, 그야말로 햇빛을 전혀 받지 않는 상태였다.
그 노숙자는 가죽 텐트 속에서 옅게 숨만 쉬다가 바로 앞으로 다가온 무언가를 인지했는지 가죽 텐트 안에서 계속 꿈틀대던 몸을 멈추더니 긴 팔을 쭉 뻗어 그 앞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여자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팔짝 뛰자 그는 자신이 잡은 것이 쥐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팔을 집어넣었다.
다음날에도 여자는 그 노숙자를 찾아갔다. 그러다 그가 가죽 텐트 밖으로 재빠르게 팔을 뻗어 근처로 지나가는 쥐를 낚아챈 후 자기 가죽 텐트 안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쥐의 시끄러운 비명이 어느 순간에 뚝 끊겼다. 여자는 그가 쥐를 가지고 무슨 짓을 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살점 떨어지는 소리와 말없이 우걱우걱 씹어먹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 여자는 그의 팔이 사람의 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생기 없고 푸석한 피부로 뒤덮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 피부를 벗기면 근육 없이 바로 뼈가 보일 것만 같이 앙상하게 마른 상태였다. 여자는 사람을 경계하고 쥐를 잡아먹으며 살아온 그의 몸과 정신 상태가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의사였다. 그러나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그녀의 태도에 반하는 노숙자의 거센 저항 때문에, 의사는 그를 이곳에 내버려 두고 혼자 병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이따금 음식을 들고 그 노숙자를 찾아갔다.
전염병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40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곳곳에는 머리 없는 쥐의 사체와 뒤집힌 채 떼로 죽어있는 바퀴벌레의 사체들이 득실대며 이로 인한 악취가 풍기는 것은 여전했다. 노숙자 앞에 들고 간 음식을 주면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다음에 다시 그를 찾아오면 깨끗하게 비어있는 그릇을 보며 그녀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의사인 그녀에게 있어 노숙자인 그는 그녀의 환자였다.
여자는 경찰청에 신고를 몇 번이고 넣어봤지만 엄청난 거부감을 표현하던 경찰은 여러 핑계를 대다가 끝내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몇 년간 매일 같이 먹어오던 꿈틀대는 쥐가 아닌, 보살핌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노숙자의 마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의사의 선의를 거절한 그였으나 이제는 매일 어두운 가죽 텐트 속에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쥐 잡아먹지 말라고 했잖아.” 의사가 올리브에게 꾸짖는다.
올리브는 방금 가죽 텐트 속에서 기다랗고 마른 팔을 쭉 뻗어 재빠르게 도망가는 쥐를 낚아챈 직후였고, 의사는 그에게 음식을 전해주러 왔다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의사는 낡은 가죽 텐트에서 나오지 않는 노숙자에게 ‘올리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놔.”
올리브의 손아귀에서 몸을 위아래로 구부리며 저항하던 쥐는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빠르게 달려 어딘가로 도망간다. 골목에는 수많은 쥐구멍이 있다.
“이제 좀 나와.” 의사가 올리브 앞으로 가지고 온 음식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솔직히 말해 봐, 너도 답답하잖아.”
올리브는 그녀의 말에 침묵으로 대응한다. 그에겐 아직까진 밖으로 나올 생각은 전혀 없다.
의사는 병원에서 가져온 나무 가면을 올리브의 가죽 텐트 안으로 밀어 넣는다. 물푸레나무를 매끄럽게 깎은 그 가면에는 웃는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의사는 올리브가 그 가면을 당겨 가져가는 것을 느낀다.
“병원을 무서워하는 어린 환자들을 만날 때면 항상 의사들이 쓰는 가면이야. 너는 꼭 그런 애들 같아. 아이들은 종종 치료를 거부하거든.” 의사가 중얼거린다. “걔넨 차가운 금속 기구를 무서워해. 얼굴에 가져대면 질질 짜더라고.”
의사가 말을 멈추자 텐트 안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치료는 해야 해. 넌 내 환자야. 그래서 이렇게 널 보살피는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병원으로 같이 가자. 거긴 여기보다 따뜻하고 아늑해.” 의사가 말을 계속한다. “네 상태가 어떤지 네가 제일 잘 알겠지.”
거대한 가죽 텐트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올리브가 볼 수 있는 건 잔뜩 찢어지고 울어버린 가죽 텐트의 틈으로 보이는 바깥, 그리고 그곳에 있는 의사의 두 발뿐이다.
“듣고 있지?” 의사가 묻는다.
바닥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으로 올 거지? 그래, 돈은 안 받을게.”
침묵이 이어진다.
“안 올 거야?”
바닥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알겠어.”
바닥을 두드리는 것은 그가 하는 유일한 의사소통이었다. 왜인지 말은 절대 하지 않는 올리브였다.
*
의사의 신상정보를 얻어낸 것은, 한 시간짜리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실수였다. 아니, 애초에 사과 한 박스에 홀려 기차역으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나는 장발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내게 겉으로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더라도 속으로는 분명 나를 이용해 먹고자 하는 악의가 그득그득하니, 곧장 집으로 도망쳐야 했을 것이었다. 킹스크로스역에서 발프 병원은 그리 멀지 않았다. 기껏해야 20분 정도 걸었으려나.
사실 내가 가장 많이 의식한 것은 일이 앞으로 어떻게 벌어질까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난 장발에게 팔을 붙잡혀 강제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배고프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적게 먹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생각을 좀 했다면, 장발과 의사와의 관계 정도였다. 물론 그다지 깊게 고민해 보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배가 고팠으니까.
거리는 어두웠다. 난 계속해서 장발을 의식했다. 소름이 돋았다. 장발이 움켜쥔 내 팔목은 피가 통하지 않아 손끝이 저렸다. 그의 피부는 차가웠다. 거리로 나오자 가로등이 제일 먼저 보였다. 나뭇잎을 흔드는 차가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얇은 옷을 입은 탓에 춥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
발프 병원 앞에서 장발은 의사를 곧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레이스는 빈 쟁반을 들고 있었다. 더욱더 배가 고파졌다. 그레이스는 장발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세요?”
그레이스는 우리를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레이스 맞습니까?〛
“맞는데요.”
그레이스는 당황한 듯 보였다. 장발은 훔친 흑향기의 가방을 그레이스에게 건넸다 그레이스는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종이를 꺼내 읽었다. 동시에 그 얼굴은 점차 굳어갔다.
“이게 뭡니까?” 그레이스는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
〚흑향기의 심기를 건드리신 모양입니다. 기재된 신상은 그쪽이 맞죠?〛 장발이 말했다. 〚아무래도 좋은 소식은 아니겠죠.〛
그레이스는 초조해 보였다.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그레이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레이스는 우리보고 대체 누구냐고 따졌다. 신경이 곤두선 그녀였다. 이것은 예상한 반응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특히 장발은 진짜 수상하게 생겼다)을 곧장 믿을 것인지, 혹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직감에 목숨을 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전해드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돌아섰다. 외투를 고쳐 입고 단추를 잠그는 그레이스의 손이 벌벌 떨렸다. 겁에 질린 감정이 얼굴을 통해 드러났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레이스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냐고 물었고, 난 “처지에 울어드릴까요?”라고 답했다. 이 말을 생각해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게 그렇게 엄청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누군가 자신에게 원한을 가졌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큰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 남에게 공감 따위 하지 못하고 사회에 부적응한 반사회적 사이코패스나 허무주의자 따위로 불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 상관 없지만.
정적이 흘렀다.
“이대로 가시게요?” 그레이스가 다급하게 손으로 나를 잡았다.
“예.” 나는 곧장 답했다. “제 목숨을 걸고 당신을 지켜드릴 순 없잖습니까.”
“그럼, 여기 왜 오신 거죠? 보아하니 꽤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었어요?”
난 장발을 노려보았다. 장발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사실 오기 싫었는데.”
그레이스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불쑥 던진 말을 정말 진심으로 믿는다고? 나였으면 하나도 믿지 않은 채 꺼지라고 답했을 텐데. 이러면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그녀의 감정에 공감이 안 되는 건 사실이었다. 굳이 내가 내 감정을 소비해 가며 따뜻하게 위로하는, 그런 비효율적인 일을 감행할 필요는 없지.
“위로를 바라신다면,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먼저 일러두죠.” 내가 말했다.
〚도버Dover로 가죠.〛 마지못해 장발이 말했다. 〚여차하면 바다 건너 프랑스로 도망가게.〛
장발의 진지한 모습이 조금 전, 기차역 천장 지지대에서 보인 모습과 대비되어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늘은 이제는 너무나 어두워졌다.
그레이스는 무언가 결심한 듯 보였다. 그리고는, 발프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데려가야 할 가족이 있다고 외치면서.
잠시 뒤, 병원에서 그레이스의 손에 이끌려 다른 의사가 나왔다. 그레이스의 약혼자, 조지는 다급한 표정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곧 흑향기가 올 겁니다.〛 장발이 말했다. 〚지금쯤이면 제가 가방을 훔쳤다는 것을 알아챘겠죠.〛
“그레이스, 잠깐만.” 조지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는 사람들이야?”
“몰라!”
“근데 왜 그렇게 심각해? 믿을 만 한 말이냐고!” 조지가 그레이스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몰라! 맞는 거 같다고! 며칠 전에 수술하다 죽은 환자 기억나?” 그레이스의 신경이 곤두섰다.
“약 한가득 삼키고 실려 온 여자?”
“그래! 그 사람 남편이 사이비 교주였다고!” 그레이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언젠간 이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흑향기에게 쫓기는 신세인 이유가 있었구나. 이 상황에서, 나는 내가 그녀를 왜 도와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레이스는 숨을 몰아쉬고는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조지가 그레이스를 크게 부르며 그녀를 쫓아갔다.
장발 역시 그레이스를 쫓아가려 했으나, 난 그를 붙잡았다.
“어디까지 간섭하려고 그래?” 내가 매섭게 따졌다. “알려주기만 한다며!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잖아!”
장발은 내 어깨를 세게 붙잡고 그냥 따라오라고 속삭였다. 잔잔한 협박. 바람에 흩날리는 잔머리가 그의 얼굴 위를 혼잡하게 가로질렀다. 이번에도 나는 그냥 그를 따르기로 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반드시 수당을 요구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레이스가 간 곳에는 낡은 가죽 텐트 속에서 꿈틀대는 무언가가 있었다. 또한 악취가 풍겼다. 나는 코를 틀어막았다.
“올리브! 나와! 올리브! 올리브!” 그레이스가 소리쳤다.
눈앞에 펼쳐진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백골이 가득한 썩은 쓰레기장에 사는 무언가라니. 나는 목으로 올라오는 구토를 겨우 참아냈다. 저것 이름이 ‘올리브’인가?
그레이스는 가죽 텐트를 억지로 들어 올리려 했으나 안에 있는 무언가가 틀어막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레이스는 울기 직전이었다. 그리고는, 흑향기가 올리브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데려가야 한다고 흐느꼈다.
“빨리 가야 한다고!” 그레이스가 소리쳤다. “올리브! 나오라고!”
조지는 그레이스를 뜯어말렸고, 우리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가죽 텐트 안에서 길고 깡마른 팔이 튀어나왔다. 팔꿈치가 튀어나와 기괴하단 느낌을 줄 정도로 마른 팔이었다. 피부색은 까만색이었는데, 그가 흑인이라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잿빛 피부라는 것이었다.
그레이스와 조지는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는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난 그 가죽 텐트 안에 뭐가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윽고 가죽 텐트가 들어 올려지며 안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로 괴기스러워서, 보자마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창백한 남자가 핏기 없는 얼굴로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의 나무 가면으로 본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었던 것이었다. 서로 달라붙고 헝클어진 더러운 머리카락에 뼈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굉장히 마른 체구의 소유자였다. 뭉툭하게 튀어나온 관절들은 마른 체구와 함께 기괴하다는 느낌을 가져다줄 정도였다. 그는 등이 휘어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해서 구부정하게 서 있었는데 얇은 팔은 긴팔원숭이처럼 굉장히 길어서 서 있는 상태로 땅에 닿을 듯했다. 사람이라고 보기엔 너무 흉측한 모습이 세상에 장발 단 한 명뿐인 줄 알았건만, 어찌 그는 장발보다 더 흉물스러웠다.
조지는 주위를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고는 골목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레이스는 그것을 ‘올리브’라고 부르고는, 주춤거리며 불안정하게 선 그를 서둘러 부축했다. 올리브는 그녀 얼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가면 때문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난 가면 아래쪽 틈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작고 투명한 방울이 바닥에 조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땀방울, 혹은 눈물이었으리라.
그레이스는 넋 없이 올리브를 빤히 쳐다보았다. 올리브는 나이조차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가 훼손된 상태였다.
그레이스는 올리브를 붙잡고 그에게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도망쳐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난 그런 그녀를 기다리는 게 조금은 지루했지만 빨리 가자고 재촉하기엔 주변 눈치가 보인 탓에 잠자코 있었다.
올리브는 나와 장발을 둘러보았다. 천천히 돌아가는 목에선 뻑뻑한 뼈 소리가 났다. 올리브는 내게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자 악취가 더 심해졌다. 그리고는, 내게 이상한 천 주머니를 건넸다. 천 주머니는 낡고 더러웠다. 그 안에는 여러 고철이 들어있었다. 난 그가 내게 쓰레기를 준다고 생각했다. 쓸 만한 걸 찾아보았다.
철사…, 이것은 너무 잘 구부러져 돌돌 만 종이보다 딱딱하지 못했다.
실탄…, 이것은 낡고 해진 덕분에 어떤 총이든 이걸 그대로 쐈다간 불발이 날 거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면도날 조각…, 이것 역시 너무 닳아있었다. 손가락에 긁어보았으나, 내 피부조차 베지 못했다. 다른 것들도 더 있었지만, 쓰레기에 불과했다. 올리브는 내게 이것들을 왜 주었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움직일 때마다 불안정하게 떨어대는 올리브의 팔과 다리는 이미 그의 몸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곧 올리브는 다시 가죽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 가 모습을 감추었다.
“올리브!” 그레이스가 다시 가죽 텐트를 들어 올렸지만, 올리브는 안에서 텐트를 굳게 잡았다.
그레이스가 올리브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조지가 뛰어 들어왔다.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리를 죽이고 숨으라고 했다.
“왔다고!” 조지가 작게 외쳤다. “눈을 마주친 것 같아.”
“뭐?” 그레이스가 놀라 재차 물었다.
나는 골목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 뒤에 몸을 숨겼다. 이곳에 오래 있어서 악취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감당할 수 없는 냄새가 올라왔다. 슬쩍 쓰레기통을 확인했을 땐, 수북하게 쌓여있는 쥐나 벌레 사체를 보고 그 선택을 후회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나는 장발에게 속삭였다. “이런 일에 엮일 생각은 없었어.”
〚어차피 지금은 집에 못 가. 그리고 흑향기가 너도 죽이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겨우 숨어서 목숨을 부지했잖아.〛 장발이 속삭였다.
“그래, 기억나. 너도 같은 곳에 숨어있었지.”
장발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자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런…!” 그레이스가 입을 틀어막았다.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두 명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와 냄새.”
“이게 뭔 냄새야? 좀비부터 잡자. 뭔가를 알고 있겠지.” 그들은 흑향기였다.
조지는 점점 다급해졌다. 입 모양으로 장발에게 소리 없는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 총 있습니까?”
〚예?〛
“총 있냐고.”
장발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고개를 저었다. 발소리는 점점 다가왔다. 조지는 가장 가까운 벽에 몸을 붙이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썩은 나무판자를 움켜쥐었다. 나는 조지에게 올리브에게 받은 면도날 조각을 주었다. 조지는 나무판자가 갈라진 틈 사이에 면도날을 끼웠다. 그리고 우리에게 속삭였다. 너무 작게 이야기한 탓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 모양은 꽤 정확했다.
“걸리면 바로 뛰어야 해.” 조지가 소리 없이 외쳤다. “저기를 비집고 밖으로 뛰어나가.”
조지가 가리킨 곳에는 오래된 나무 벽에 커다란 틈이 있었다. 바깥으로 연결되는 구멍이었다.
이윽고 두 명의 흑향기 조직원이 뒷골목에 들어섰다. 조지는 대기하고 있다가 그들을 기습했다. 나무판자로 둘의 얼굴을 가격했다. 장발은 나와 그레이스를 데리고 곧바로 벽에 난 틈을 비집고 나와 반대편으로 나왔다. 그러나 조지 혼자 두 명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곧 커다란 총성이 들렸고, 기괴한 비명이 들렸다.
그레이스는 울음을 터뜨렸다. 장발은 조지가 총에 맞은 건 아닐 거라고 말하며 그레이스를 다독였다.
그레이스는 완전히 정신을 놔버린 채 꼼짝하지 않았다. 눈동자마저 떨어대는 그녀의 잔뜩 겁먹은 모습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데리고 나올게.〛 보다 못한 장발이 내게 말했다.
그리고 장발은 내게 그레이스를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장발이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자, 그레이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난 잠자코 있었다. 여기서 계속 울면 들킬 수도 있다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레이스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였다.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으며, 호흡이 가빠졌다. 얼굴은 일그러진 채 그대로 굳어버렸고, 난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장발과 조지는 나오지 않았다. 골목 안에서는 사람들이 한데 엉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이 소란스러운 소리에 섞여 있었다.
곧 장발은 다친 조지를 끌고 나왔다 조지는 거의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구멍 뚫린 조지의 왼쪽 종아리에선 피가 멈추지 않았다. 조지는 자신은 종아리에 총을 맞았으며, 흑향기 신도 두 명은 끝내 머리가 터져 죽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는 그들을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지를 부축했다.
“올리브는?” 그레이스가 울먹거렸다.
“그 노숙자는 죽었어. 머리를 얻어맞자 더 이상 안 움직이더라.” 조지가 말했다. “잊어버려, 그레이스! 걔도 수많은 환자에 불과했어. 사고였던 거라고.”
장발은 올리브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를 그레이스에게 완전히 넘기면서, 총소리 때문에 흑향기 신도들이 더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레이스는 힘없이 쳐졌으나, 우리는 킹스크로스역으로 달려갔다.
장발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역으로 향했다. 난 그를 뒤따라 뛰었다. 그레이스와 조지는 점점 뒤처졌다. 장발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달렸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리는 조용했다. 거리에 사람들이란 담배를 태우며 떼거리로 술집 앞을 배회하는 몇 명의 젊은 청년들뿐이었다. 그들은 보도블록에 발이 걸리면서 넘어졌다. 그리곤 자기들끼리 낄낄 웃어댔다. 난 그들이 술에 잔뜩 취했다고 생각했다.
난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라오는 흑향기 신도는 없었다. 그레이스와 조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장발에게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 장발은 뒤를 돌아보았다.
장발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레이스와 조지의 낙오를 뒤늦게 알아차린 후의 반응으로 욕설은 적합했다. 그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하며, 내 팔목을 붙잡았다. 나는 그를 몸으로 밀치며 뿌리쳤다. 나는 그와 거리를 두었다.
“혼자 가. 난 집에 갈 거야.” 내가 말했다.
〚안 돼. 너도 있어야 한다고.〛
난 그 말을 무시했다.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는 것도 저 말에 넘어가서였지.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내 역할은 없었다. 내가 그레이스 때문에 고생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장발은 발을 떼지 않았다.
“가기 싫으면 너도 가지 마. 솔직히 너도 힘들잖아. 왜 고생을 사서 해?” 내가 쏘아붙였다.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잖아!”
〚너한테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킹스크로스역까지만 같이 가자는 거잖아.〛 장발이 대꾸했다. 〚그냥 좀 따라오면 안 돼?〛
“그럴 이유가 없잖아.”
〚이유는 있는데 네가 기억하지 못할 뿐인 거다.〛 장발이 말했다. 〚일이 마무리되면 다 설명하겠다고.〛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위로 올라왔다. 그것은 분노였으리라. 나는 장발에게 천천히 걸어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으나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다 말해.”
장발은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가 모르는 척한다고 생각했다.
“역으로 가겠다고? 역은 봉쇄됐잖아. 몰랐던 거 아니잖아.” 그는 지금까지 나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상했지. 넌 내가 기억을 전부 잃어버린 것도 다 알고 있어.”
장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 적이 없잖아. 내 기억상실증을 악용해서 네가 누군지 조차 얘기하지 않았던 거지! …무작정 따라오라고 하고는 날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난 흥분했다. 이렇게 소리치는 동안에도 장발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움직이지 못하는 조각상 같았다. 그가 날 쳐다보고 있기는 했을까.
그때 장발은 한 손으로 날 저지하더니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입을 막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난 마구 소리쳤다. 그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다.
〚나중에 다 설명할게. 제발 입 좀 다물어.… 좀 가만히 있어봐.…〛 장발이 속삭였다. 〚다 듣겠어.…〛
그 순간 누군가가 우리 근처를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우린 숨죽였다. 장발이 내 허리를 아래로 꺾어버린 탓에, 주변을 볼 수가 없었지만, 점점 커지는 발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뛰어!〛
비명이 들렸다. 그것은 짧고 굵은 여자의 비명이었다. 그레이스의 비명은 아니었다.
*
그레이스는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조지를 업고 역까지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을 보았을 땐, 클로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을 버리고 먼저 도망간 것이었을까? 그레이스는 점점 좌절했다. 얼굴에서 흐르는 액체가 땀인지 눈물인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골목으로 들어가 조지를 잠시 내려놓았다. 실제로 저 멀리서 총을 든 채 거리를 거닐던 신도들을 직접 봤기 때문에, 그레이스는 자칫하면 그들에게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조지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숨을 헐떡이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지혈부터 하자.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그레이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상처가 더 벌어졌어.”
그레이스는 자기 옷가지를 찢어 조지의 다리에 꽉 묶었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잘 묶일지조차 미지수였으나, 그것은 그레이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자신의 이 신세에 한탄밖에 나오지 않는 그레이스였다. 앞으로 다시 병원에서 일할 수나 있을까. 그레이스는 힘들었던 과거와 겨우 잡은 끈을 놓을 수밖에 없게 된 자신의 처지가 생각하면 할수록 비참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바닥에서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레이스는 바닥을 나뒹구는 커다란 돌덩이에서 조지의 신발을 겹쳐보았다. 그날도 그레이스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그 바닥도 흙먼지가 가득했었다.
그레이스가 가이스 병원에서 해고되기 며칠 전, 불길한 소란스러움과 함께 병원에 응급환자가 들어왔다. 동료와 함께 여우를 사냥하다 총상을 입은 노인네였다.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노인네가 빨갛게 물든 수술대에 누워 숨을 헐떡였다. 의료진은 분주했지만,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노인은 사망 판정을 받고 말았다. 사인은 폐 파열로 인한 질식과 과다출혈. 수술을 집도했던 윌리엄은 애초에 가망이 없었던 수술이었다며 수술에 참여한 다른 의료진을 다독였다. 그러나 그 이후 원장은 수술 실패를 빌미로 관련된 의료진들을 한날한시에 전부 잘라버렸다. 가이스 병원에서 10년 넘게 일한 베테랑 윌리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히 순식간에 직장을 잃어버린 의사들이 부당해고에 수긍하고 조용히 잠적하지는 않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공론화되자 런던 광역 경찰청까지 개입했고, 이것이 단순히 가이스 병원에 채무초과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한창 원장의 비리가 조사될 때도, 그레이스는 절망에 빠져야 했다. ‘킹스칼리지 의학과 차석 졸업’. 이 얼마나 힘 있는 호칭이었던가. 그런 사람이 고작 채무초과로 인해 한날한시에 해고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직면한 그레이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발프 병원의 의과 의사, 조지였다. 그레이스는 흙먼지 가득한 길바닥으로 들어선 조지의 검은 구두로 그를 처음 마주했다. 조지는 그녀에게 자기 병원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고는 사정이 너무 딱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조지는 그레이스에게 이제 자신을 버리고 가라고 했다. 걷지 못하는 자신은 짐만 될뿐더러, 여기까지 오면서 피를 계속 흘렸기 때문에 흑향기에게 그레이스의 도주 경로를 전부 알려주는 꼴이 된다는 이유였다. 조지는 이미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러나 그레이스에게는 조지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올리브마저 잃은 상황에 조지를 버리는 것은 그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 한구석의 이성은 조지를 버리고 도망쳐야 한다고 외쳤지만, 어떻게 그를 놓고 갈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조지와 함께 겪은 모든 순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클로드라는 사람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왜 자기는 소중한 사람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 걸까.
지혈 덕분에 조지의 피는 멈췄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레이스는 조지와 함께 도망칠 방법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조지를 업고 흑향기에게 들키지 않으며 역까지 갈 방법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조지를 업고 역까지 갈 수나 있을까? 날이 밝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걸까? 조지의 상처가 아물어 그가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숨어있어야 하는 걸까?
응급처치를 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위생 또한 최악이었다. 진흙 섞인 물이 건물 외벽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빈 공허로 가득 찬 마음속에서 허우적댔으리라. 만약에 그때 조지를 두고 뒷골목을 빠져나오지 않고 같이 싸웠다면 조지는 살 수 있었을까? 만약에 응급처치를 조금 더 빨리했다면 조지는 살 수 있었을까? 그레이스는 자신을 탓하며 후회와 아픔을 느꼈다.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이윽고 눈물이 그레이스의 눈 앞을 가렸다. 더 이상 숨 고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앞이 차가워지는 이 기분은 뭔가, 잘못하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조지는 이미 차갑게 죽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