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 선반도 만들고 문틀도 세우고
"이제 들어가도 되겠는걸."
출근해서 욕실바닥을 조심스레 밟아보고 혼잣말을 하듯 아내에게 말했다.
제일 최근 공정으로 욕실의 바닥을 해 둔 상태다. 타일을 붙이기 위한 과정으로. 그래서 오늘은 타일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공정을 하는 날이다. 욕실 선반(젠다이)을 제작해야 하고 타일을 붙이기 위해서는 문틀도 미리 시공되어 있어야 한다. 타일은 마감이기 때문이다. 마감 후에는 어떤 것도 손대기가 어려우니 그전까지 끝을 내야 한다. 시간적으로 촉박한 건 아니지만 혹여나 빼먹은 게 있을까 봐 마음이 초조했다.
욕실선반이라고 말은 했지만 단어가 참 어색했다. 현장에서는 '젠다이'라고 부르는데 딱 봐도 뭔가 일본말에서 파생된 단어처럼 들려서 이래저래 찾아봤다. 그러고는 나 혼자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어려서부터 어른들께서 사용하시던 말인 '다이'는 어느 정도 익숙해서 알고 있었다. '다이'는 '무언가를 얹어둘 만한 상'이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딱히 익숙할만한 단어가 아니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는 다이가 하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당구다이'였다. 그나저나 대체 '젠'은 어떤 뜻일까.
찾아보니 '젠(ぜん)'도 '상'이라는 뜻이었다. 일본어 사전에서 젠다이를 찾아봤지만 그런 단어는 없었고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말이 섞이다 보니 그렇게 불린 듯했다. 나의 결론으로 젠다이는 그저 '선반'이라는 말이었다. 뭔가 '욕실선반'이라고 말하기에는 선반의 종류가 많아서 하나의 명사로서 자리를 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 중에서도 뜻이 같은 음절 두 개가 붙어있는 단어가 종종 있는데 그냥 그런 느낌인보다. 일본말을 되도록이면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마땅한 단어가 없어 그냥 젠다이로 칭할 예정이다.
설명이 길었지만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바닥이 잘 양생이 되어 작업하기에 충분한 상태임이 확인이 됐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줄자를 챙겨 자신 있게 욕실로 들어갔다. 젠다이가 생길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 그렸다. '바닥에서 타일이 얼마나 올라오려나', '변기의 높이는 얼마나 되려나', '상부장은 얼마나 내려오려나', '그나저나 상부장은 어느 높이에 맞춰야 하려나', '상부장을 하려면 천장 마감높이를 알아야겠구나' 등 각각의 공정들이 모여서 확실해져야 젠다이의 높이나 두께 너비를 확정낼 수 있었다. 그렇게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야 젠다이와 상부장 사이의 공간을 충분히 둘 수 있다. 막상 제작했는데 선반의 공간이 얼마 나오지 못해서 치약 하나 혹은 컵 하나 놓을 높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만드는 의미가 무색해지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업에 임해야 했다.
나는 그 순간 아무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었지만 심적으로는 꽤나 진지하고 바쁜 상태였다.
보통의 젠다이 제작은 일반 벽돌로 제작을 한다. 하지만 나는 벽돌로 제작하면 안 될 이유들을 생각해 봤다. 벽돌로 제작하는 이유가 뭘지 혹은 벽돌로 제작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 등. 그런 생각 끝에 나는 골조를 나무로 제작하기로 했다. 나무로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나무가 썩을 수도 있다' 였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방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일. 방수가 제대로 된다면 나무가 썩을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벽돌을 사용하여 시공했을 때도 방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벽돌이 썩진 않겠지만 물은 샐 테고 결국엔 보수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유지보수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목재로 선택을 했다. 방수는 애초에 잘하는 게 맞으니 방수로 벽돌과 나무를 비교할 순 없었다. 그리고 내가 목재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랬다. 혹여나 누수가 생겼을 때(배관의 노후로 방수층 하부에서 터졌을 경우나 벽에 매입되어 있는 배관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등 방수층과 관계없는 누수) 벽돌은 바닥부터 쌓아 올리기 때문에 다 깨버려야 한다. 하지만 목재는 수도배관과 배수구 부분을 뚫어둘 수 있기 때문에 후에 문제가 된다면 다 깨부수지 않아도 보수가 용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실천을 했다. 목재로 수도배관과 하수배관을 묻지 않도록.
골조는 목재로 진행했고 마감은 시멘트보드로 진행했다. 시멘트보드는 말 그대로 시멘트를 보드형태로 제작한 자재다. 시멘트를 벽돌 형태로 제작한다면 그게 시멘트 벽돌이다. 아파트에서 이 시멘트 보드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여러 공정이 들어와야 하고 여러 공구가 사용되기 때문에 번거로움에 사용하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든다. 벽돌로 진행을 하면 벽돌이 커서 불편한 점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공구가 여러 가지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타일 하시는 분을 불러 진행하거나 설비를 진행할 때 만들어 달라하면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금방 만들게 된다. 하지만 시멘트보드를 사용하면 골조를 세워야 하고 시멘트보드를 부착해야 하고 그 위에 방수를 다시 해줘야 한다. 벽돌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들 때문일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이 달라!"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로 내 마음속도 별반 다르지 않은 판단을 하고 있다. 딱 봐도 벽돌이 편해 보인다. 하지만 어차피 내 집인데 일반적이지 않은 시도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내 나름의 고집도 있다.
시멘트보드를 부착한 후에 벽과 바닥에 방수를 했듯이 똑같은 방식으로 방수를 진행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서리 부분이다. 벽과 바닥에는 안쪽으로 들어간 모서리는 있지만 바깥으로 돌출된 모서리는 없었다. 그래서 바깥으로 돌출된 모서리를 위해서 방수천을 시공했다. 방수천은 모서리를 가려주기 때문에 모서리로 물이 들어갈 상황을 없애준다.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혹시나 빼먹은 곳이 있는지 살펴보며 구석구석 꼼꼼하게 방수를 해줬다. 이번이 아니면 방수를 다시는 손댈 수 없기에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혹여나 마감을 다 해서 첫 샤워를 했는데 밑에 집에서 물이 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 그건 정말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상황임이 분명하리라.
내가 첫 번째 방수를 다 진행한 후에 양생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칠이 가능해졌을 시간이 흐른 후 두 번째 방수는 아내가 들어왔다. 아내에게 어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고 부탁하는 김에 욕실 들어오는 입구의 하부도 부탁했다. 문틀의 높이가 있어서 아래에 물이 고일 일은 없겠지만 이것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진행했다. 부디 꼼꼼하게 열심히 한 만큼 누수문제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밥을 먹고 오후에는 아내와 베란다 작업에 들어갔다. 욕실에 문틀을 설치해야 하지만 아내가 발라둔 방수제가 마르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중간에 얼른 끝내버릴 공정을 집어넣었다. 아내는 도장을 위해 사포를 들고 베란다의 오래된 페인트와 요철이 있는 벽을 갈아냈고 나는 베란다 큰 창 하부를 막는 작업을 했다. 창 하부에 타일을 붙일지 도장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타일은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창 하부도 도장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창 하부도 시멘트보드를 사용해서 막아줬다. 타일이 자신 없었던 점도 있었지만 타일을 붙이면 창보다 마감이 튀어나오게 되어 별로 보기에 좋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창 하부가 조금이라도 처진다면 타일은 분명 깨지거나 탈락이 발생할 것 같아 선뜻 시공하기가 두려웠다.
오전에 욕실공사를 할 때는 문을 닫고 있어서 춥진 않았는데 베란다 작업을 하면서 먼지가 많이 나길래 창문을 열었더니 정말 얼어버릴 것 같이 추웠다... 그 덕에 일은 엄청 빨리 끝냈다. :D
베란다 작업을 끝내고 방수제를 손으로 톡톡 만져봤다. 힘을 줘서 문지르면 떨어질 정도의 건조상태라 문틀 설치를 진행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방수제의 역할이 크게 중요한 곳도 아니기 때문도 있다.
욕실의 문틀은 다른 방들과 달리 네 개면이 모두 있는 문틀이기에 설치가 다른 방들보다 쉬웠다. 하지만 쉬웠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끔찍한 일이 생겼었다. 문틀을 주문할 때 가로와 세로길이를 내가 직접 실측해서 불러줬는데 실측에서 오류가 생겼던 것이다. 어느 정도 문틀이 움직일 수 있게 여유를 줘서 불렀지만 욕실문이 설 자리의 우측의 벽이 너무 기울어있어서 문틀 아래쪽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벽을 수직에 맞게 갈아내는 작업이 동반됐다. 철거하면서 이제 벽을 갈아내고 잘라낼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또 먼지를 뒤집어쓰는 날이 오다니... 정말 끔찍했다. 또한 제대로 실측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가 한 잘못이라 화도 낼 수 없고 그저 한숨만 푹 푹 쉬어댔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문틀 설치를 완료했다. 중간에 타일 마감을 생각지 않고 문틀을 설치해서 다시 수정하는 일이 있었지만 큰 일은 아니었어서 순탄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문틀도 섰으니 타일을 붙이기만 하면 끝이다. 뭔가 타일을 붙인다는 게 결실을 맺는 그런 순간처럼 느껴지고 타일 붙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 긴장에 긴장이 겹쳐지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부디 잘 끝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