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기왕 시작한 거'
아파트는 신축공사를 진행할 때 벽의 수직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고 작업을 한다. 그 이유는 '떠바리'라 불리는 '떠 붙임 공법'을 사용해서 타일을 붙이기 때문인데 떠 붙임 공법은 타일 위에 시멘트의 양을 많이 주고 압착의 정도를 조절하여 수직을 맞추는 방식이다. 이 공법은 수직을 맞추기에 좋은 공법이긴 하나 하자율이 높고 타일 시멘트의 양을 많이 주기 때문에 그만큼 타일 시공 시에 두께가 늘어나서 화장실 내부 공간이 좁아지는 단점이 있다. 그렇게 떠 붙임 공법을 사용하다 보니 신축아파트 시공사들은 골조공사시에 벽이 조금 넘어가거나 넘어오는 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을 너무 과소평가하여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욕실에 그 어떤 타일도 떨어지지 않았을 시점에 '정말 타일을 철거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공간이 좁아지더라도 덧방을 하는 게 리스크가 적지 않을까'하는 등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싶어 철거를 했지만 한쪽 벽면을 철거 후 내 생각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거 뭔가 잘못됐다.'라고 느낀 것이다. 그렇게 느낄 정도로 벽의 수직은 맞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왜 자꾸 철거를 이어나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먼지를 풀풀 뒤집어써가며 철거를 하는 동안에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벽까지만 철거하고 다른 벽은 남기고 덧방을 할까' 하며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난 그렇게 끝까지 생각만 했고 결국 벽의 모든 타일 철거를 완료해 버렸다. 그놈의 '기왕 하는 거'라는 생각만 없었어도...
철거 전에는 '벽 수직이야 조금 안 맞으면 어떻나, 타일 붙이면서 맞춰 먹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내 생각보다 기존 벽의 품질은 좋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대충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벽의 수직은 춤을 추고 있었다. 이런 벽에 타일을 반듯하게 붙여둔 기술자분이 새삼 대단하다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벽의 수직은 붙어있는 타일을 보고는 절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뼈에 새겼다.
철거를 진행한 후 수평대로 확인해 보고 낙담을 한 이후 욕실을 볼 때마다 '고생 꽤나 하겠는데'라며 걱정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어디로도 가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단지 '고생 꽤나 하겠다'는 그 자리에 내가 찾아와 시공을 한 것뿐이었다. 하부는 안으로 들어오고 상부는 밖으로 넘어간 벽체의 상태 덕에 하부타일은 접착제를 최소한만 해서 얇게 붙였고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를 더 줘서 나름의 수직을 잡아 나갔다. 물론 워낙 격차가 컸기 때문에 완전히 맞추진 못 했지만 "이 정도면 됐어"라고 느낄 정도는 했다. 혹자는 "타일 붙이는데 그냥 좀 삐딱하면 어때"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타일을 붙이면서 수직을 잡는다는 건 그 벽 자체를 위함이 아니라 그 벽 양쪽으로 있는 벽과 맞닿는 타일을 위함이다. 그래서 나는 기울어져 있는 벽 그대로 붙였다가 옆 벽과 직접적으로 붙는 타일들의 형태가 위로 올라갈수록 길어지는 대각선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벽타일을 붙여 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면을 완성시켰다.
이렇게 욕실 타일의 준비운동을 마쳤다. 준비운동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지만 지금까지가 준비운동이었다는 것을 느낀 건 젠다이(욕실 선반)가 있는 벽을 진행하면 서다. 세 번째로 진행한 휴지걸이가 걸리는 문 틀이 포함되어 있는 벽은 콘센트 구멍을 내는 것 빼고는 그럭저럭 할 만했었다. 하지만 젠다이가 있는 벽은... 정말 힘들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젠다이가 있는 벽이 아니라 젠다이에 타일을 붙이는 과정이 정말 고통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포세린 타일의 꽃이라 불리는 '졸리컷'까지 시도했다. 졸리컷이란 타일들이 'ㄱ자'로 돌출모서리가 있을 때 타일과 타일 사이에 재료분리대('코너비드'라고 부른다)를 설치하는 것이 아닌 마주치는 타일의 모서리 안쪽을 45도로 재단한 후 타일과 타일끼리 붙이는 방식이다. 이는 타일 자체를 갈아내는 것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타일이 깨질 수도 있고 제대로 재단하지 않는다거나 제대로 붙이지 않는다면 줄이 엉망진창 삐뚤빼뚤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말 그대로 어느 정도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기왕 처음 붙여보는 거!' '기왕 철거한 거!' '어차피 망해도 내 집인데'라는 생각으로 졸리컷을 시도했다.
졸리컷을 하는 과정은 정말 끔찍 그 자체였다. 먼지는 먼지대로 나고 면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며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번 잘못 재단하거나 실수를 하면 다시 졸리컷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치명적인 과정들이 있었다. 아니 장점은 고작 '보기에 좋다'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단점이었다. 하지만 해보지 않았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그런 과정들을 겪었다. 왜 타일공사 시에 졸리컷이 추가가 되면 인건비가 그렇게 늘어나는지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번 타일공사에서 나는 그놈의 '기왕 시작한 거'라는 녀석에게 정말 많은 시련과 경험을 받았다. 그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재미난 경험들이었다.
우린 600x600의 포세린 타일을 골라서 사용했다. 이 타일은 자체적인 사이즈도 크고 흡수율이 낮은 만큼 밀도도 다른 종류의 타일보다 높았기에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다. 처음에는 번쩍번쩍 들어다가 붙였지만 그것도 한두 장이지 여러 장을 붙이다 보니 확실히 무게에 대한 부담이 느껴졌다. 기존 타일도 무거운데 거기에 타일 시멘트까지 올려 바르니 그 무게는 정말 상당했다. 자칫 잘못해서 떨어뜨린다면 대형사고가 날 것임이 분명하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린 '개량압착 공법'으로 진행했는데 개량압착공법은 타일에도 시멘트를 발라주고 바탕면에도 타일 시멘트를 발라줘서 접착 강도를 높이고 공극을 줄여주는 공법이다. 이 공법은 정말 제대로 붙여지고 하자율이 거의 없다시피 낮지만 손이 많이 가고 바탕면이 고르게 되어 있어야 가능한 공법이다. 그래서 아내는 바닥에 앉아 타일에 시멘트를 바르고 나는 바탕면에 타일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을 붙이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혹시나 내 손이 미끄러져서 건네받은 타일을 놓친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그런 사고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원래 조심하자고 생각할 때 더 사고가 많이 나는 법이라고 긴장을 해서 그런지 타일은 더 무겁게 느껴졌고 손에 힘은 점점 더 풀려간다 느꼈으며 체력은 더 금방 바닥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개량압착공법은 정말 좋은 점이 많은 공법이지만 우리가 시공한 타일부의 바탕면은 고르지 못했고 우리의 실력은 낮았으니 그저 제대로 붙어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600x600 타일은 타일을 욕실로 옮기는 과정부터 타일 시멘트를 바를 때, 들고 붙일 때 등 모든 순간이 무거웠고 벅찼다. 타일가게에서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셀프로 한다고 하니 "힘드실 텐데", "어려우실 텐데"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그 뒤로는 항상 대단하다고 그리고 두 분이서 하는 게 너무 재밌겠다고 잘해보라고 응원의 말씀을 해주셨다.
젠다이에 타일을 붙일 때는 어찌나 자잘한 조각들이 많은지 고작 얼마 크지 않은 젠다이를 붙이는데 벽 한 면보다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아내도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끝내야지 라는 생각이 겹치고 겹쳤다. 그러다 보니 손은 급해지고 실수는 잦아지는 그런 상황들에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신중하게 천천히'라고 말하지만 내 몸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네 벽을 다 붙인 후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소식이 없으니 들어와서 '뭐 좀 도와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작은 조각들은 도움이 필요한 그런 상황들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얼른 붙이면 될 뿐. 나는 욕실에서 혼자 분주하지만 조용하게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 하나 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지만 내가 원하는 품질을 끌어내진 못했다는 점이다. 정면, 옆면, 윗면의 세 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뭔가 수평 수직이 맞지 않았는지 자꾸 삐뚤어져서 한참이나 고생을 했고 결국엔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끝을 냈다. 끝을 내면서 바라는 건 하나였다.
제발 물만 새지 않기를.
아내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도장준비를 마저 했고 우리 아파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벽돌 부위에 도장을 했다. 도장은 보일러실, 세탁실, 베란다 세 곳을 할 예정인데 나를 기다리는 동안 두 곳의 1차 도장을 마친 것이다. 그래도 심심하지 않고 일을 찾아서 해준 덕에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이제 벽타일은 끝이 났으니 바닥타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