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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배를 하다. (1)

정배 : 초배를 한 뒤에 정식으로 하는 도배.

by 짜미 Mar 12. 2025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문 앞에는 그제 쇼핑몰로 주문했던 상품이 놓여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건 새로 깐 장판을 보호하기 위한 제품이었다. 보통 의자의 다리에 끼우지만 우린 작업용 발판의 다리에 끼웠다. 작업용 발판에도 고무패킹이 끼워져 있긴 하지만 너무 딱딱해서 딱히 고무라고 하기에는 플라스틱이라고 하는 게 더 와닿을 정도였다. 그래서 혹여나 자국이 남을까 싶은 장판을 위한 애틋한 마음에 신발을 신겨줬다.

  작업용 발판은 너비가 넓은 대신 폭이 좁아서 자칫 방심했다가는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 발판에서 많이들 사고가 난다. 기껏해야 무릎정도의 높이지만 떨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사고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계단이 끝난 줄 알았는데 한 칸이 더 남았을 때의 그 떨어짐조차도 엄청난데 무릎높이라면 지옥불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작업발판을 사용하기 전에는 '오늘도 조심 또 조심!'이라는 말을 하고 시작한다.

  작업발판에 신발을 신겨주고 조심히 올라가서 테스트를 해봤다. 아무래도 푹신한 걸 신겼다 보니(우리는 테니스공을 끼웠다.) 생각보다 많이 흔들렸다. 작업에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 사용해 보고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빼고 하자는 말을 전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장판 걱정을 하느라 우리의 안전을 뒷전으로 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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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발판의 준비와 자재, 공구들을 준비한 후 본격적으로 정배를 시작했다. 나는 정배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뜻을 검색해서 찾아보니 '초배를 한 뒤 정식으로 하는 도배'라는 뜻이었다. 결국 마감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도배지에 대해서 혹여나 찢어질까 겁이 많이 났다. 다른 공정들이야 타일이 깨지면 새 타일을 사용하면 되고 나무를 잘못 잘랐으면 새 나무를 사용하면 되는데 도배지를 찢는다거나 잘못 사용하면 새 도배지를 풀방에 맡겨 풀을 바른 후 다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실수 없이 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부담감이 너무 컸다. 섬세한 작업을 힘들어하는 나에게 축축하게 풀이 발라진 얇은 종이를 붙이라는 건 정말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너무 막 잡으면 도배지가 오염되고 끝자락만 잡고 있자니 모서리가 찢어질 것 같고 풀발린 부분을 잡자니 손에 풀이 한가득 묻어서 여기저기 묻히고 다닐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는 어떻게 잡았는지 나와는 다르게 핸들링이 아주 능숙했다.


  시작은 신발장에서 진행했다. 가장 좁은 공간이고 길이가 짧은 도배지가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아내가 나에게 교육해 주며 시작하기 좋은 곳이었다. 아내는 친절하되 엄하게 나를 교육했다. 나는 혹여나 말을 놓칠까 봐 경청을 했지만 듣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어서 시작하는 데에 애를 많이 썼다. 과정을 익히지 못하니 자꾸 한 과정을 뛰어넘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내는 계속해서 "아니 그거 말고 이거 먼저 해야지"라는 말을 반복했고 나는 "아 맞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허둥대는 내 모습에 참 창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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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장을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정배가 시작됐다. 정배는 공간의 한 면을 기준삼아 일정한 간격을 겹쳐나가며 붙여나가게 된다. 조금 손기술이 필요하거나 섬세한 작업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 나는 큼직큼직한 일들을 해 나갔다. 아내는 슥슥 잘만 자르는데 나는 종이 자르는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칼만 댔다 하면 왜 그렇게 찝혀서 울어버리는지 정말이지 답답할 노릇이었다. 자꾸 실수가 나오니 일하랴 눈치 보랴 정신이 하나도 없어 진땀을 뺐다.


  그리고 우리는 천장에 부직포를 붙여뒀다. 부직포는 바탕면이 좋지 않은 곳을 감추기 위해 '띄움 시공'을 하기 위함인데 도배지를 너무 강하게 눌러 붙이면 풀이 부직포를 뚫고 넘어가서 바탕면에 붙게 된다. 그러면 띄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부직포에만 풀이 붙을 수 있도록 누르는 강도까지 조절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감이 없어서 내가 지나간 곳은 전부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아내는 나를 쫓아다니며 그걸 떼어내는데 급급했다. 속으로는 '이러면 차라리 아내 혼자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너무나 많이 스쳐 지나갔다. 아내의 표정에서 답답하고 화나는 감정이 너무 느껴져서 나는 한없이 위축되고 소극적이게 되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이 손발이 맞아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작업인데 너무 뒤떨어지니 답답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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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장을 붙이고 나니 슬 손에 익기 시작했다. 이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음 순서를 준비할 수 있으며 필요한 공구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조심스럽게 작업하긴 했지만 이제 아내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고 한 장 두 장 무리 없이 붙여나갔다. 하지만 실수는 언제나 오만함에서 발생하듯 기어이 큰 실수가 하나 생겨버렸다. 첫 코너를 만난 나는 양쪽으로 칼집을 넣어 떼어냈어야 하는데 모퉁이 끝자락이 제대로 잘리지 않아서 도배지 끝이 찢어지고 말았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아내의 눈에 나의 쭈뼛거림이 인식되고 말았다. 나는 시무룩한 모습으로 상황을 설명했고 또 아내의 기분이 나빠지겠구나 걱정을 했지만 아내는 생각한 것과 다르게 밝은 모습으로 괜찮다며 수습하겠다며 작업에 나섰다.

  붙이고 잘라내어 바닥에 던져둔 조각들에서 필요한 만큼 다시 잘라내어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역시 숙련된 사람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과는 완벽.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수습을 했다. 뭐 우리가 살면서 천장의 모서리를 보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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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황들 속에서 정배가 계속해서 진행됐고 거실에서 주방까지 연결된 모든 곳에 정배를 마쳤다. 한 타임 쉬고 각 방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붙이고 또 붙였다. 이젠 꺾이는 코너도 없으며 길이가 긴 부분도 없다. 나도 어느 정도 손에 익었겠다 아내와 합을 맞춰서 방 한 칸 한 칸을 끝마쳐 나갔다. 이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준비해 줄 수 있는 합이 되었다. 아주 뿌듯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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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시간이 다가올 때쯤 천장의 모든 정배가 끝났고 야간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농담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계속해서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는 나를 케어하느라 고생했을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대답으로 아내는 답답하고 화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찾아올 많은 어려운 시기에도 항상 서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며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생겼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함께 해나가면서 스스로와 우리를 더 위해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 것 같아 정말 좋았다. 우리가 처음 공사를 하면서 생각했던 '힘든 일을 같이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과 성장'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비록 정말 피 마르는 순간이 많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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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안전사고 없이 작업을 마쳤다. 점점 콘크리트와 지저분한 바탕면들이 가려지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공간이라는 게 아직까지 믿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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