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내 아내여서 참 다행이야.
장판자재와 싱크대 자재가 몰아치기 전에 도배를 위한 준비를 끝내야 했다.
먼저 우린 벽면에 부직포 시공을 시작했다. 천장에 부직포시공을 전에 했었지만 한 번 해본 걸로 자신감을 갖기에는 너무나 어색하고 실력이 부족했다. 그나마 천장은 긴 길이를 붙여야 했지만 벽면은 짧은 길이를 붙여서 한결 편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건 각종 스위치와 콘센트 구멍들이었다.
부직포를 시공하는 이유는 벽면에 각종 요철들을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시공한다. 보통 띄움 시공이라고 하는데 벽면이 있다면 양쪽 끝부분에 본드를 바른 후 접착시키면 본드가 발리지 않은 부분은 자연스럽게 벽면과 떨어져서 떠있게 된다. 그러면 중앙부에 약간의 요철이 있어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 띄움 시공은 주로 콘크리트 벽이나 미장벽에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런 이유에서 퍼티를 할 때 벽의 네 모서리에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집은 새로 만든 가벽 부분의 석고보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석고보드 부분도 모두 시공했다. 이유는 석고보드와 벽지가 너무 오래되어 벽지를 제거하는 중에 벽지의 잔해인지 석고보드의 겉종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무언가의 종이가 일어나서 자잘한 요철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 좌측 회색벽은 새로 시공한 석고보드고 중앙에 보이는 갈색 부분은 석고보드의 종이가 떨어진 부분이다. 이음 부분에 퍼티를 했는데 석고보드 뒤편의 시공을 '떠 붙임 시공'을 해둬서 이음 부분이 힘이 하나도 없었다. 퍼티를 하고 샌딩을 하면서 압을 가하면 푹푹 들어가서 꽤나 고생을 한 부분이다. 석고보드에서 떠 붙임 공법은 타일에서 떠 붙임과 같은 방식으로 석고보드 뒷면에 두껍게 접착제를 올려서 수평을 잡아가며 붙이는 방식이다. 역시나 넓게 도포되지 않아서 석고보드의 모서리는 힘이 없고 그저 도배를 하기 위한 면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타일 떠 붙임과 마찬가지로 미장을 하게 되면 인건비가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고안된 편법(?) 같은 느낌의 시공법이다.
아내에게 잔뜩 의지하며 나름 합을 잘 맞춰가고 있었는데 혼나기 시작한 부분이 생겼다. 그건 다름 아닌 코너벽. 부직포는 울지 않게 붙이는 게 생명(?) 같은 작업인데 코너 부분인 데다가 비디오폰에 스피커에 스위치에 온갖 장애물들이 있어서 고전을 했다. 마음은 급하고 가고정해 둔 부직포는 자꾸 떨어져서 마음이 흔들렸다.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됐다!" 했는데 아내의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 보다. 왜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하고 몇 걸음 떨어져서 봤더니 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합리화한 것임을 깨달았다. 처음 여섯 가닥 주름에서 세 가닥 주름 그리고 두 가닥 그리고 한가닥이 남았을 때 나는 '처음보다 낫네'라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했었다. 왜냐면 또 건드리면 다시 여기까지 오지 못할 것 같았기에... 그렇게 나는 기어코 아내에게 바통을 넘겼고 아내는 슥슥 삭삭 하더니 주름하나 없이 깔끔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역시 전문가는 달라.
그렇게 우리의 하루가 이렇게 마쳤다. 하지만 부직포를 다 붙였다고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아직 다른 공정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내는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어느새 쓱싹쓱싹 뭔가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자재와 처음 보는 모습에 뭘 하는 거냐고 물었다. 아내는 운용지 붙일 준비를 한다고 했다. "운용지? 어디에 붙이는데?"
벽이랑 천장에 붙일 거라고 한다. 정확히는 벽과 천장의 부직포에 한 겹 더 붙인다는 뜻이다. 이 운용지가 붙는 부분은 도배지와 도배지가 만나는 부분에 붙게 된다. 역할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도배지에 풀을 바른 후 붙이면 건조됨에 따라 수축이 발생하는데 부직포는 그걸 잡아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축이 일어나지 않는 운용지를 도배지 이음 부분에 붙여서 도배지의 터짐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말인즉슨 도배지와 도배지가 만나는 이음 부분에는 모두 이걸 붙여야 한다는 뜻이다.
어쩐지 한 롤이 무지막지하게 두껍더라니...
석고보드 이음에 '네바리'를 붙일 때는 풀이 발라져 있었는데 운용지는 아내가 직접 풀을 갠 후 발라서 사용했다. 그렇게 한 방에 사용될 양 정도에 풀을 바른 후 한 방 씩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주방을 기준으로 작은방, 안방 등등. 운용지는 두께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정확히 이음에 붙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한 번 밀리면 걷잡을 수 없이 밀린다는 아내의 말은 꽤나 전문가 같은 완벽을 추구하는 말 같았다. 아내는 레이저 레벨기를 켜고 마킹해 둔 부분을 기준으로 운용지의 가운데가 오게 한 땀 한 땀 섬세하게 붙여 나갔다.
레이저 레벨이 하나밖에 없는 관계로 나는 도울 수 없었다. 사이즈가 큰 것도 아니기에 같이 잡아줄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일을 시작했다. 장판이 시공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원래는 장판이 시공된 후에 하려고 했지만 언제 하던 무관했다. 그건 걸레받이 시공이었다. 장판이 시공된 후에 걸레받이를 하려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걸레받이를 후시공하면 장판의 끝을 대충 잘라도 걸레받이의 두께가 있기 때문에 커버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많은 곳에서 일하는 팀이 각자 들어오기 때문에 목공팀이 장판팀이 들어온 후에 걸레받이만 하러 들어오기는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목공에서 걸레받이를 미리 해두고 장판 하는 사람이 걸레받이에 맞춰 시공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그래서 나는 호기롭게 걸레받이를 후시공하겠다 다짐했었지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어느새 걸레받이를 시공하고 있었다.
걸레받이는 그저 붙이면 되는 건데 석고보드 면은 깔끔하게 붙는 반면 콘크리트 미장벽은 벽이 들쭉날쭉이라 정말이지 힘들었다. 제대로 붙지도 않고 품질도 좋지 않게 나오니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집에는 춤추는 걸레받이가 떡하니 붙어있다.
아내가 모든 벽의 운용지를 끝내고 나는 모든 벽의 걸레받이를 끝내고 다시 뭉쳤다. 천장에 운용지를 붙이기 위함이다. 벽은 아무래도 혼자 할 수 있었겠지만 천장은 혼자 하기에 벅찬 부분이 있다. 도배지가 붙을 부분에 일직선으로 붙여야 하기도 하고 부직포에는 붙되 천장에는 붙으면 안 되는 그런 힘조절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천장에 부직포를 붙였던 팀워크를 살려 붙여나갔다. 팀워크를 살렸다고 했지만 그 속엔 나의 수많은 실수가 있었고 수도 없이 혼났다. 마음은 답답하고 천장에 딱 붙어서 위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혼도 목도 빠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린 여덟 시가 넘어서 모든 일정을 끝냈고 서로 아무 말 없이 정리를 하고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지쳐버린 상태로 퇴근을 했다. 이제 정말 장판과 도배, 싱크대를 위한 모든 준비작업이 끝났다.
그나저나 장판 전에 바닥에 있는 모든 공구들을 다 치워야 하는데... 언제 어디로 치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