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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Oct 27. 2024

관점을 바꾸니 세상이 보이더라

청소부 유니폼을 입은  교수

주말에 호텔 객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교수가 그렇게 힘든 일을 왜 하냐는 반응들이다.


틀 (Frame)을 깨고 나와보니

강의하는 모습이나 연구실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모습. 내가 교수라는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일 것이다.

대학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액자의 프레임 (frame)처럼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나를 가두어버린 듯하다. 언젠가부터 내가 아닌 사회가 짜놓은 "틀"에 나를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 틀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걸어 나오면 특이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특히 교수가 청소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을 "매우" 특이하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교수라는 직업에 비해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남이 머물고 간 뒷자리를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로 여겨지기 때문이지 싶다.


사회적 지위 외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의 차이, 학벌에 대한 고정관념 등 우리 사회가 짜놓은 교수와 하우스키퍼 (housekeeper)라는 틀 안에는 "특이한 교수"가 될 만한 요인이 여럿 있다. 그래도 틀 안에 갇혀서 답답하게 살기보다 특이함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학벌이라는 틀을 깨기 위한 딱 한 발자국의 용기

"그래도 박사까지 한 사람이 청소를 하는 게 좀... 그렇지 않아요?"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왔다. 당연히 멋지고 뿌듯한 직업이긴 하다. 하지만 고학력자라는 학벌에 대한 고정관념에 묶여서만 살았으면 호텔 일을 통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호텔에 발을 디딘 순간이 나를 누르고 제한해 오던 "틀"을 깨뜨리는 기회가 되었다.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은 틀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 딱 한 발자국의 용기였던 것이다.


청소라는 아르바이트는 학벌에 대한 차별이 없다. 학벌과 상관없이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시급을 받는다. 졸업장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유니폼을 입고 호텔로 출근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동료이다. 너도 나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이기에 굳이 학벌을 과시하고 자랑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다.


학벌은 개인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와 관련된 전문직에 한해서 말이다. 이민자들을 만나면 본인이 한국에서 어느 명문대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정보는 본인만의 자부심일 뿐, 그 학벌로 인해 같은 이민자들 사이에서 계급이 나뉘거나 더 존중을 받거나 인정받을 이유는 없으며 자랑거리는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호텔에서 깨닫게 되었다.


함께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 중에 명문대 출신도 있고, 나 외에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시간강사도 있다. 동네 초등학교 선생님도 있고, 딸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 선생님도 있다. 나의 학벌과 교수라는 신분을 숨기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이들의 눈에는 내가 영락없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동양인 이민자로 보였겠지만 그 어느 한 명도 선입견 없이 똑같은 동료로 대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고 나의 신분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서로의 학벌에는 관심이 없으며 우리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급을 받고 일하는 동등한 동료이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 틀을 깨는 특이한 행동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이 행복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일 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기도 한다. 내가 처한 상황, 나만의 가치관, 축적된 경험, 사람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달리는지 등에 따라 "나는 지금 행복한가?"에 대한 답은 늘 변한다. 이 질문에 답을 하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내일이 되어 오늘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할 일 없이 현재의 삶에 충실한지?"

이 기준에 진정성 있는 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에게 매우 솔직해야 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프레임"이 노이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프레임에서 딱 한 발자국만 나와서 나에게 솔직히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호텔에 들어서면 메리어트 특유의 향이 나를 흥분시킨다. 내일이 되어도 오늘 나의 모습은 떳떳하고, 즐겁고,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최소한 호텔에 있을 때는 행복하다. 내일이 되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남들이 이제는 그만두라고 해도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관점을 바꾸니 세상이 보이더라

강단에 서서 대학생을 가르치고 연구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끼고 있는 교수의 모습은 깨끗하고 지적여보이고

걸레를 손에 쥔 청소부가 왠지 더러운 일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정 반대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대학 내에서는 호텔 객실 변기를 닦는 것보다 더욱 더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때로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용히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학과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이 내 위치가 약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갈 때도 있고, 정치적으로 나만의 색을 숨겨야 할 때도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은 없다. 고로 묵인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의 의도와 다르게 정의롭지 않은 일에 묵인함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마치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만 같다. 동의하지 않는 이론이나 방법론을 마치 정답인 것 마냥 가르치고 동료들의 압박에 못 이겨 눈을 감고 입을 막아야 할 때 나 자신이 얼마나 더럽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정의감에 불타 대학을 떠나자니 당장 모기지와 생활비가 끊겨버리는 상황이 아찔하기만 하다. 그놈의 돈 때문에 당장 때려치우고 나오기도 힘들다. 조기은퇴 계획은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학생이 성장하는 모습, 인터뷰를 잘 보고 잡을 찾아 떠날 때, 어려움을 이겨내고 무사히 졸업할 때 등 뿌듯한 순간들 또한 은퇴하기 전까지 대학에 몸은 담고 있는 한 교수로서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한 주간 쌓인 복잡한 머릿속, 답답한 마음,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중적인 생활을 주말에 호텔에서 정화시켜 버린다. 객실을 청소하고 체크인 준비를 마치게 되면 더러운 기분까지 깨끗해지는 희열을 느낀다. 관점을 달리하면 청소부는 더러운 일이 아니다. 정장을 입고 온갖 더러운 일에 가담하는 교수보다,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객실을 청소하는 일은 더욱 깨끗하고 떳떳한 직업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면 행복을 조금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기에 특이한 삶을 살더라도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청소 일과를 마치고 호텔 건물을 나서며 세상을 다시 보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한다.


- 나는 지금 어떠한 틀에 갇혀사는 가?

- 그 틀을 깨부스고 한 발자국 나올 용기가 있는지?

- 틀에 나를 맞추지 말고 특이하게 살아도 떳떳하면 된다.

- 나는 지금 행복한가?

- 내일이 되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즐겨야 하는가?

- 나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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