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옥 Aug 08. 2024

괜찮아, 그런 실수할 수 있어

자책이라는 병을 치유하는 방법

좌절하는 이유

실수를 했을 때 좌절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을 수습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타인으로부터의 질타이다.

상사, 동료 교수, 학생들로부터의 질타나 컴플레인은 그간 신생아 젖 물려가며 교수엄마가 된 강한 인내력과 정신력까지도 한순간 무너뜨릴 만큼 자존감을 바닥까지 내쳐버린다.

큰 실수가 아닌 작은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환경은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에게도, 성장하는 아이에게도, 깊어져가는 연인관계에도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한 텃밭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해도 건강한 텃밭에서 충분한 빛과 수분을 섭취해야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최고의 씨앗이 아니더라도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식물은 어느 정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도 한다.


누렇게 타버린 수건 덕분에

나는 건강한 텃밭에서 살고 있는지,

나는 내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텃밭에 좋은 영양분이 되어주고 있는지,

혹시 분갈이가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타버린 수건

빨래방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모두가 카트 주변에 둘러서서 수건을 뒤적이고 있었다. 누렇게 타버린 수건 더미 속에서 한 장이라도 쓸만한 수건이 있는지 골라내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단 한 장도 객실에 비치할 수 있는 수건이 없었다.

모두가 시무룩해져 있었다. 수건이 없는 객실이라니. 영어가 서투른 하우스키퍼끼리는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얼굴 표정과 숨소리만으로도 드러나는 심정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손님을 받을 수는 있는 건지.

쏟아지는 컴플레인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새로운 수건으로 교체하는 비용을 실수한 사람이 물어내야 하는 건지.

그리고, 수건을 몽땅 태워먹은 제인은 잘리는 건지.


매뉴얼의 중요성

청소에도 빨래에도 매뉴얼이 있다. 매뉴얼을 잘 따라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면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불필요한 듯해도 매뉴얼대로 실행한다.

빨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인은 매뉴얼대로 빨래를 하지 않았다. 더 많은 양의 수건을 무리하게 건조하기 위해 더 높은 온도와 더 긴 시간을 맞춰놓고 일찍 퇴근을 해버린 것이다.  

죄인들의 명장면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한 제인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실수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못 하고 얼얼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우린 불편한 분위기 속에 슈퍼바이저 오피스 문이 열리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대기하는 시간이 멋쩍어 한 장이라도 타지 않은 수건이 있는지 매우 희박한 가능성을 바라며 건조기에서 나온 수건을 확인할 뿐이었다.

실수는 제인이 했는데 모두가 함께 죄인이 된듯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눈빛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입 밖으로 한 단어도 내뱉지 않았다. 빨래방 안의 선풍기의 모터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 긴장감 속에 단 한 명도 제인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영어가 능통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충분이 모두가 한배를 탄 운명을 함께하는 공동체 같았다.

그때 그 상황이 영화로 제작이 되었다면 분명 명장면이 될 수밖에 없다.


매니저와 한참을 통화하던 슈퍼바이저 사무실 문이 열렸다. 나의 심장도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괜찮아, 그런 실수할 수 있어.”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 상황인데 괜찮단다. 슈퍼바이저의 몸짓은 차분했고 목소리에는 무게가 있었다. 괜찮다는 그 한마디가 옥중에 갇혀있던 마음의 창살을 부셔주기라도 한 듯 우리 모두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마음의 체험을 한 샘이다. 제인은 무릎을 접고 앉아 눈물을 터뜨렸다.


"너의 실수로 호텔이 망하지는 않아."


참으로 훌륭한 재치였다. 빙하같이 꽁꽁 얼어붙은 긴장감이 한순간 녹아내리는 듯했다. 순간 빨래방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입가엔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지만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너도 나도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싸안았다. 이 또한 명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냉철함에서 온 자책이라는 병

지구온난화로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쩌면 빙하기 때보다 더욱 차갑고 냉철한 것 같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각박한 삶이 때로는 숨이 막힌다.


나 또한 "그깟 수건 때문에 호텔이 망하지 않는다"와 같은 마인드를 한심하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지.

하는 일마다 대충대충이야.

그로 인한 금전적 손해가 얼마인줄 알아?

매뉴얼이 왜 있는지 생각은 해봤냐?

너의 실수로 조직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러한 마인드에서 나오는 질타, 실망, 원망, 무시 등의 잣대가 나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자책"이라는 "병"도 생겼다.


자책병을 치유하는 방법

어린 시절, 쑥스러움이 매우 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실수를 두려워한 탓이다. 실수를 했을 때 쿨하게 넘기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넘기고 싶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실수를 했을 때 주변에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내가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면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

내 주변에는 나를 위로해 줄 스승이나 부모가 없다.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은 물론이며 이민자들이나 백인 이웃들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마냥 씩씩한 교수엄마이기에 괜찮다는 위로 따윈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의도적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괜찮아. 이런 실수는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거야.
이 작은 실수로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아.
사람들은 너의 실수를 오래 기억하지 않아.
의외로 그들은 자기들의 삶만 살기에도 너무 바쁘거든.
자책도 병이야. 병을 키우지 말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이전 02화 마음의 날씨에도 주기적인 진동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