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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Nov 14. 2023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프롤로그

고1 여름날이었다.

 친구들 3명과 하교하던 그날은 내 기억 속에 초록색과 노란색이 예쁘게 섞인 청량 하면서도 굉장히 뜨거운 날이었다. 학교 앞 떡볶이를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교문을 나서던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변에 비를 피할 건물도 없었다.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던 시원하게 내리는 소낙비였다.


 처음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비에 얼떨떨하게 하늘을 보다가 막 쏟아지는 굵은 비속에서 우리는 신나게 뛰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비를 맞는 그 순간, 나 혼자 맞는 것이 아닌 그 시간이 그저 좋았다. 그 시간 내내 우리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즐거웠던 날은 그날이 유일했다.

 5분간의 재미있는 깜짝 이벤트가 끝나고 소나기로 인해 후덥지근한 뜨거운 열기가 거리에 가득했다. 젖은 옷은 찝찝했고 공기는 더 답답해졌다.

다만,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않은 듯 참으며 뜨거운 햇빛 아래 돌아다니다 보니 얇은 여름 교복은 금방 말랐다.

 천진난만한 10대의 짧고 귀여운 방황 뒤에 보상받듯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20대가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20대의 시작은 소나기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다가왔다.

20대의 관계 역시 10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20대, 안락한 자유의 끝이자 온전하게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선택이 자유로운 나.

소낙비를 맞았던 그 짧은 시간처럼 스무 살의 설렘은  금방 사라졌고, 후덥지근한 찜통 같은 진짜 어른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른만이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달콤한 ‘자유‘라는 사탕발림에 가려져 제대로 된 각오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모님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던 10대의 나는 사라지고, 책임이라는 유리에 갇힌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다 추억이야. 시간이 약이야. 다들 그렇게 살아.”

 너무나도 쉽게 하는 말은 지금 너무 힘든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다 추억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을 살아내는 동안은 쓰디쓴 약을 삼키는 듯하다.

누군가에겐 지극히 평범하고 순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가 돌아본 나의 38살 인생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때까지 뜨겁게 아팠고, 치열하게 견뎌냈다. 여전히 그때의 상흔들을 애써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내고 있다. 살아야 하기에. 그럼에도 세상은 굴러가기에.

 누군가의 위로를 간절히 받고 싶었지만, 그 위로조차 부담스러워 혼자 한, 두 권씩 읽으며 쌓아둔 책장 가득한 책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수많은 감정과 불안에 대한 책들이다.

그 책들을 읽으며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고 했던 그때의 감정은 뒤늦은 사춘기였다.

 혼자 인 게 좋지만 사실은 절실히 함께 하고 싶어서 혼자이고 싶은 나. 그렇지만 외로운 건 싫은 그런 내가 20년 동안 노력했고, 마흔이 되도록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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