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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Nov 16. 2023

원수는 주차장에서 만난다.

우리 만나지 맙시다

병원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멀리서 흰색 벤츠 한 대가 미끄러져 내려온다. 가만있어보자. 어디서 많이 본 차인데.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나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던 ‘그녀’의 차였다.

나도 모르게 얼었는지 그 자리에 서서 운전석에서 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얼빠진것 처럼 빤히 쳐다보고있을 때 나를 발견한 그녀가 반가운 듯 인사한다.

"어머, 잘 지냈니?"

".....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우리 병원에 주차장이 좀 멀어서 너네 병원에 주차 좀 하려고, 신고하면 안 된다. ㅎㅎ"

하고 홀연히 옆건물 방향으로 사라진다.

내 직장 근처로 이직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여기서만날 줄이야. 그것도 내차 옆에 차를 대다니 소름이 끼칠 정도다.

‘지금 뭐라는 거야?  근데, 그곳이 최고의 직장이라더니 왜 이직을 한 거지?‘

궁금했지만 어차피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며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낸다. 주차장에서 잠시 멈춰 있던 걸음을 다시 재촉하며 출근을 마무리한다.


그 사람은 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간 직장에 새로 와있던 실장이었다. 처음부터 애기 엄마라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던 사람이었는데, 어찌나 아줌마들을 괴롭히는지 아주 치가 떨렸다.

"너네 아줌마들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 입시설명회를 가야 한다는 말에.

"너네 때문에 아줌마는 안된다는 거야."- 아이 생일로 왕복 1시간 거리 회식이 부담스럽다 말에.

"아픈데 병원을 왜 오늘가? 쉬는 날 가야지." - 독감증세로 병원접수만 해놓고 온다는 말에.

"왜 세미나를 들어.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필요한 역량을 위해 세미나를 듣겠다는 말에.

"그 정도면 너 월급 많이 받는 거야. 불만 가지면 안 되지."- 적게 오른 연봉에 퇴직을 생각하는 동료에게.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언사를 꾸준히 그것도 아주 골고루 해왔고, 감정적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날도 많아 스트레스를 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정말 그 사람 기준에서 내 능력이 그것 밖에 안되는 그런 사람인 것만 같았다. 정말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기에 이 사람 밑에서 하라는 데로 일해야 할 것 같았다. 2년 정도 꾸역꾸역 버티는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재밌어하던 일이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일하는 곳은 마치 출근과 동시에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표정이 굳은 체 일했다. 퇴근해서는 다람쥐쳇바퀴 같은 생활에 탈출구가 없는 것 같아 눈물지으며 맥주를 들이켜는 밤이 늘어만갔다.


 그런 원수 같은 그녀를 주차장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말하던 그 병원의 조건보다 더 나은 곳에 이직을 하게 되었고 연봉도 처우도 훨씬 좋았다. 엉거주춤 인사를 할게 아니라 아주 당당하게 인사를했어야 했는데 무엇 때문인지 잔뜩 쫄아서 그러지 못했다.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뒤진다. 우물쭈물 못나 보인 거 같은 생각에 약이 바짝 올라 신경질적으로 급하게 스크롤을 올린다. 곧이어 전화번호부의 이름을 확인하고 수화기를 들어올려 통화를 시도한다. 신호음이 들리는 그 3초 간의 시간이 30분처럼 느껴질 때 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관리소장님 안녕하세요 . 주차장에 요즘 건물이용자가 아닌 분들이 주차하던데 관리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특히 흰색 벤츠 운전자는 옆건물로 가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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