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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Nov 20. 2023

강강약약? 나의 처세술

안다치는 사회생활은 없다. 단지 적게 다치고 싶을 뿐.

 3년전 일이다. 날카로운 날씨에 온몸이 움츠러드는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이 지나고 연두색 잎과 고운 색깔의 꽃잎들이 터져 나오는 따뜻한 봄이 왔다. 그 즈음 탈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악에 바쳐 일하던 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퇴사 하고, 나락에 떨어져 있던 자존감을 다시 쏘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성공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적응할 무렵 전쟁터 같았던 직장에서 함께 일하며 전우애를 다졌던 동생 윤정을 오랜만에 만났다.


"윤정 잘 지냈어?"

"그럼요. 언니도 잘 지냈죠?"

우린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다 어색하지 않은 공백이 생겼을 때 즘 문득 그때의 나에 대해 묻기로 했다.

"우리가 함께 일하던 2년 동안 나는 왜 그 사람한테 그토록 미움받았을까?"

"아, 맞아요. 그분이 좀 성격이 별나긴 했는데 유독 언니에게 좀 더 그러긴 했죠. 제 생각엔 아마도 무슨 독한 말을 해도 의기양양하고, 지지 않는 눈빛 때문에 더욱더 독한말을 했던 것 같아요. 언니가 좀 지지 않으려 했어야죠. 또 동료들이 많이 따르고 했던 게 어쩌면 더 도화선이 되었던 것 같기도 했요."

 

그랬다. 나는 나를 누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강하게 몰아붙일수록 강하게 버텨냈고, 그것이 방어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나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더욱 독하게 대했다. 나를 건드려봤자 좋을것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못된 계산이었다. 겉으로만 강한 척하며 내면으로는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미움받는 것에 지쳐 내 상처를 돌보지 못해 우울함에 곪아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듯 험담 하며 나의 체면을 스스로 깍아내렸고, 우울하다며 술을 마시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곳이라며 스스로 일하는 곳의 발전이 없다는 듯 주어진 일만 했다. 마치 그녀가 정했던 나의 한계가 정말로 딱 거기까지라고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강약약', '외강내유'


 방어적인 눈빛과 똑같이 거친 말과 행동으로 답하며 그녀에게 표적이 되었다. 난 그녀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그녀가 화나길 바랐던 것이었을까? 둘 다 쓸모없는 처세술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휘둘리며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의 자존감을 나락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다 순간 지옥 같은 현실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할 것이 아니라, 정말 능력이 딱 그 정도인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를 다시 정비하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름바 퇴사 프로젝트!!


27살 팀장이라는 직책을 내려놓고 결혼을 하게 되고, 타지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다시 평직원으로 5년 정도를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퇴직하고 다른 곳에 취업할 때는 제대로 된 중간관리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팀원들과 함께 내가 바라는 환경을 세팅해서 수직적 구조보다는 수평적 구조에 가까운 조직도를 꾸려나가고 싶었다. 머리로만 아는 나의 스킬들도 팀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시각화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코로나 시대 덕분에 내가 원하는 역량의 온라인 세미나는 넘쳐났다.

 '온화하게 이기는 말', '나를 알리는 포트폴리오', '상담스킬', '병원전문강사'등등 6개월가량을 세미나와 책을 읽으며 역량을 끌어올리려 쉴 새 없이 달려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녀는 나에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전과는 다르게 크게 가슴에 꽂히지도 밉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2년동안 제자리 걸음이던 커리어는 6개월 동안 부지런히 발전시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그녀가 말한 내 역량의 한계 보다 더 크게 커리어를 쌓고 있었고, 그것들은 나에게 좋은 무기가 되어 잃었던 자존감을 되찾아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화장실을 자주가? 신장이 안 좋은 거 아니야? 병원 좀 가봐."

"어떻게 아셨어요? 저 만성적으로 신장이 안 좋아서 약 먹고 있는데 역시 실장님은 보는 눈이 다르네요."

"... 그래. 그런 거 같더라."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이다. 정말로 걱정되서 했던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곁에 있던 동료는 트집잡으려 한말에 내가 정통으로 대답했다고 했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는게 중요한거지.


진정한 처세술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던지 귀담아듣지 않는 여유였다. 그 여유는 나의 마음 달려있었다.


 앞으로도 구태여 적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뭐라 반박한들 그들에게는 그저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온몸 구석구석의 세포들이 하나같이 도망가라고 외친다면 꾸역꾸역 버티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버티는 일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급하게 퇴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조용히 준비를 하고 때가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사직서를 낼 것이다.


"여기 말고도 저 갈 때 많아요!"


3년 전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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