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꿀벌 일지 03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꿀벌일지

by 서여름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날지도, 걷지도, 꿀을 모으지도 않았다.


풀잎 위에 조용히 앉아,
내 작은 다리를 접고
그저 이슬방울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 속엔 세상이 담겨 있었다.


동그랗게 부푼 투명한 구슬 안에서
바람이 지나가고, 빛이 굴절되고,
나의 얼굴이 뒤집힌 채로 웃고 있었다.


이슬을 핥지도 않고
꽃잎에 다가가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이래도 괜찮을까?’
작은 불안이 한쪽 날개에 내려앉았지만
그마저도 곧 바람이 데려가 버렸다.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꿀을 얼마나 모았어?”


그럴 땐 조용히 속으로 대답한다.


“조금도 모으지 않았어.
하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익어가고 있어.”



꿀이 언제나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꿀은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고요하게 익어간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무언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채워지는 날.


그렇게,
나는 내 작은 꿀단지에
고요한 시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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