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말아요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만,
거기에 너무 매몰되면 오히려 중요한 걸 놓칠 수 있습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최선을 다하되,
너무 애쓰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올바름 All 발음>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인 존 듀이 교수는 인간 본성에 있어 가장 강한 충동은 '중요한 인물이 되고픈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본성을 스토리로 남긴 작가는 셰익스피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좋고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생각이 그것을 만들어 낼 뿐이다."는 명언과 함께 말이지요. 이 말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다기 보다 상황이나 환경, 타이밍 등에 서로의 케미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관계도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바로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인데요. 그 욕망을 바라 보기 위해 우리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이 필요하는 것이죠. 저의 블로그 포스팅 중에 48가지 감정에 대해 다룰 때 스피노자가 인간의 이성이 아닌, 의지이자 욕망이라 부르는 '코나투스'를 인간의 본질이라 보았고, 이 블로그의 48가지 감정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이에 관해 좀더 깊이 챙겨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멋진 인간관계를 위한 최고의 충고가 있다. 헨리 포드가 말하기를, "성공 비결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이다"라고 했다. 훌륭한 말이다. 한 번 더 되풀이하자면, '성공 비결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이다.' 이 말은 너무 간단 명료해서 누구든지 말속에 담긴 진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 10명 중 9명은 살면서 10번 중 9번 정도 이 말을 무시하고 산다.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솔직함은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지만, 때론 지나친 솔직함이 무례함이 될 때가 있고, 무례함이 솔직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요.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이 이성이나 논리보다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표현도 감정이 섞이면,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다르게 표출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상대방의 방어기제나 성향 등을 파악하는 것 또한 인간관계를 잘 엮어나가는데 있어 도움이 됩니다.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가 논리의 동물을 상대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우리는 감정의 동물을 상대하고 있고, 그들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존심과 허영심에 의해 자극받아 행동한다.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요즘은 자기 계발서나 심리, 철학, 문학 등의 서적에서 좋은 방법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일반론이기 때문에 예외의 경우도 많지만, 그중에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많은 분들이 읽고 적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굳이 이 책이 아니어도 인간관계론을 참고한 서적들도 많기 때문에 특별한 내용이 담겼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네요. 결국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겠고요.
사람을 다루는 기본적인 기술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1. 타인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라.
2. 미소 지어라.
3. 상대방에게 이름은 그의 어떤 말보다도 달콤하고 중요한 말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4.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돼라.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격려하라.
5. 상대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라.
6. 상대방이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어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가 너무 중요하다는 걸 잘 알지만, 거기에 너무 매몰되면 오히려 중요한 걸 놓치고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왕이면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좋겠지만, 때론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어쩌면 인간관계를 더 잘하는 방법이지 않나 싶습니다.
'위인은 범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위대함을 보여준다'라고 칼라일은 말했다. 사람을 비판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 편이 비판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고 흥미롭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은 공감, 관용, 친절을 낳는다.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하나님도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심판하지 아니한다"라는 존슨 박사의 말처럼, 하나님도 살아 있는 자를 심판하지 않으신데 왜 우리는 심판하려 한단 말인가.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비즈니스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비판과 논쟁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회피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논쟁이 아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본 결과, 논쟁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상에서 유일하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듯이 논쟁을 피하라.
논쟁은 열이면 아홉이 결국 참가자가 자신의 의견에 대해 전보다 더 확신을 갖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사람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논쟁에서 지면 당연히 지는 것이고, 만약 이긴다고 해도 그 역시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일까? 자, 당신이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 그가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치자.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물론 당신이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방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당신은 상대방이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는 당신의 승리에 분개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설득당한 사람은 여전히 변함없는 생각을 고수한다.'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대신 의견을 말할 때는 프랭클린의 말처럼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나친 겸손 또한 교만과 같으니, '정중함'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네요.
프랭클린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행동과 나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삼갈 것을 규칙으로 세웠다. 심지어 나는 고정된 의견을 나타내는 단어나 표현을 쓰는 것 또한 자제했다. 예를 들면, '확실히', '의심의 여지 없이'와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 그 대신 나는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이해하기로는', '제가 추정컨대', 아니면 '현재로서는 제가 보기에' 같은 말을 썼다 누군가 내 생각 하기에 틀린 점을 주장하면 나는 그 사람의 주장에 퉁명스럽게 반박하거나 그의 잘못을 즉시 입증해 보이며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특별한 경우나 상황에 따라 그의 말이 옳을 수 있다고 보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라 보인다. 혹은 달라 보이는 것 같다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내 태도의 변화가 가져오는 이점을 발견했고 대화는 즐거워졌다. 의견을 내놓을 때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니까 상대방이 더 쉽게 수긍했고 반박도 줄어들었다.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덜 치욕스러웠고 내가 옳을 때는 이제 손쉽게 상대방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합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Tip이 될만한 내용도 있습니다. 능숙한 화자는 '네'라는 대답을 여러 번 이끌어냄으로써 청자가 긍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한다는데요. 아이스브레이킹과 같은 효과가 아닌가 합니다. 심각한 사안을 논의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야 할 때 사용한다면 효과적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니오'하고 대답을 하면 그 사람은 자존심을 지키기 이해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후에 자신의 '아니오'라는 대답이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느끼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계속해서 그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 한번 말을 뱉고 나면, 그 말에 집착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대화를 할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능숙한 화자는 처음부터 '네'라는 대답을 여러 번 이끌어낸다. 그렇게 해서 청자가 긍정적인 태도로 변하는 심리 상태를 양산한다.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를 맺고 삽니다. 세상은 단순하지만, 우리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던가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나면, 관계에 있어서도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도 쉽지 않다면, 이건 어떨까요?
모퉁이 저편에 경찰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되,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르라.
<인간의 굴레> 서머싯 몸
서머싯 몸이 <인간의 굴레>에서 전한 메시지처럼 이것저것 맞추려 노력하기 보다 남의 선 혹은 도덕적 기준을 지켜주면서 내 마음이 따르는 대로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를 지키면서도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비법이라면 비법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선은 어떻게 아나요?라고 묻는다면, 바로 고귀함의 마지노선이라 제가 명명했던 수치심이 아닌가 합니다. 내 양심이 전하는 신호이기도 하겠고요.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미소도 장착해야 하고, 괴리감과 자괴감이 괴롭히곤 합니다. 이럴 땐 본연의 나 자신과 사회적 자아인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할 때의 나와 평소의 나 말이지요. 공과 사를 구분해 놓으면, 일과 관련된 것은 전혀 나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심리적인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나의 건강한 마인드가 사회적으로 맺은 관계들을 잘 지탱해 줄 수 있으니까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무리해서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뭐든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은 법 아닐까요? 변하는 관계도 있지만, 이 모든 관계들이 의미가 있고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 곁을 소중히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기도 하고요! :)
�️ 인간관계론 미션
말을 덜 한다고 문제 되는 경우보다는 '더 확실하게' 하겠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말을 더 얹는 경우가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곤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더 하기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듯이요. 너무 잘 하려고 하기보다 목에 차오르는 말을 꿀꺽 삼키고 가볍게 넘어가는 아량을 연습해 봅니다. 물론 공과 사를 구분해서 업무적인 경우는 확실하게 해야겠지요. 미션은 한 마디를 덜 해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