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
"우리 아빠 같은 아빠가 되지 않을 거야"
한 번쯤 이런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강압적인 부모 아래 자랐던 사람들은
자녀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한다.
수용해 주고 원하는 것은 최대한 들어주고 싶다.
정서적 결핍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고 싶어 한다.
물론 원가족 부모님의 가치관과 양육 방식이
뿌리 깊게 내면화된 경우는 자녀에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기도 한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님과 완전히 다른 방식을 시도하다가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평소에 입던 옷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어보는 것과 같다.
억압당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유롭게 키우려고 했는데
적절한 훈육이 빠지기도 한다.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는
아이도 이미 어린 나이가 아니라
수습하기가 힘이 든다.
외로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직 자녀만을 보며 밀착 케어를 했는데
아이가 답답하게 여기기도 한다.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면 좋겠다"라고
한소리 하는 경우도 있다.
대물림을 끊기 위해 애를 쓰지만 허탈해진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나의 부모'와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절대 '치킨'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치킨'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오히려 원부모와 비슷하게 행동하거나
완전히 다른 방식을 시도하다가
또 다른 잘못된 형태의 양육을 하기도 한다.
세대에 걸친 대물림을 끊으려는 의도 자체는 정말 좋지만
그전에 '나의 부모'와 '나'를 분리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당연히 쉽지는 않다.
위협과 트라우마가 세대를 거쳐 후대에 전해지듯
'좋은 돌봄' 또한 세대를 거처 대물림 될 수 있다.
단순히 나의 부모와는
다른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만으로는
또 다른 잘못된 대물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은 변화 가능성이 있기에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