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함이 어색할 때
또 시작이다.
11월이면 꼭 찾아오는 그 이상한 기운. 독감이 하나둘 돌기 시작하더니, 결국 옆반이 먼저 무너졌다.
교무실에선 아무 말도 없는데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차례겠네…"
그리고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만 여섯 자리가 비었다. 출석부는 허전하고, 교실은 갑자기 공간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코로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화면 속에 갇혀 살았다. 아이는 화면으로 들어오고, 나는 화면 앞에 붙어 앉아 "○○야, 음소거 풀어볼까?"를 하루에 스무 번씩 외쳤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다가 눈을 감으면 네모난 잔상이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았다.
덕분에 선생님들의 IT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무서웠지만, 발전은 있었다.
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화면 속 아이들의 얼굴. 음소거된 웃음소리. 만질 수 없는 거리.
그때의 두려움은 지금도 가끔, 빈 자리를 볼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섯 자리가 비어 있으니 교실이 덜컹거렸다.
남아 있는 아이들은 한 명씩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 우리 반 왜 이렇게 썰렁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톡 하고 건드려졌다.
거리두기, 조심, 혐오.
그런 단어를 먼저 찾는 건 사실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다르다. 걱정하고, 기다리고, 보고 싶어한다.
한 명이 안 보이면 그냥 "보고 싶다"가 먼저다. "옮을까 봐"가 아니라.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속도는 빨라지는데, 마음을 챙기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는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를 미루고, 연락을 밀린 일처럼 쌓아둔다.
"나중에 전화해야지" 하다가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난다.
하지만 아이들은 반대다.
삶보다 마음을 먼저 챙긴다. 누가 없으면 바로 보고 싶어한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아픈 아이의 빈 자리를 슬쩍 바라보다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
그 마음이 세상 제일 건강한 마음인 것 같다.
오늘도 교실 한가운데에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조용해서 좋은데… 애들 없으니까 이상해요. 그냥 빨리 완전체 됐으면 좋겠어요."
완전체.
우리 반은 스물여섯 명이 모여야 완전체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뭔가 어색하고, 균형이 안 맞고, 덜컹거린다.
그 말이 이 계절에 들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처방전 같았다.
약도, 주사도, 격리도 아닌.
"빨리 다 같이 모였으면 좋겠다."
세상은 우리에게 말한다.
거리를 두라고, 조심하라고, 혼자 있는 법을 배우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안다.
진짜 건강은 함께 있을 때 완성된다는 것을.
완전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만들어진다는 것을.
내일은 몇 명이 돌아올까.
언제쯤 우리 반이 다시 완전체가 될까.
보고 싶다가 먼저인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