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점보다 어려운 건 왜 하고 싶은지를 찾는 일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그 아이가 손을 들었다.
손을 든 자세가 유난히 깔끔하다.
마치 오래된 교과서 삽화에서 ‘발표하는 모범생’ 포즈만 따온 것처럼.
“선생님, 이것도 수행평가예요?”
늘 그렇다.
자리 정리를 하다가도, 교과서를 펴다가도, 심지어는 가위와 풀을 나누어 주는 순간에도
그 아이는 묻는다.
이 활동이 ‘몇 점짜리 삶’인지.
수행평가란 단어가 이 아이의 세계에서는
도장처럼 ‘인증된 노력의 이유’를 찍어주는 셈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수행평가 아니면, 저는 지금 왜 이걸 열심히 해야 하죠?”
이런 눈빛이 슬쩍 따라온다.
감히 말하자면, 꽤 합리적이다.
어른들도 그러니까.
연말 인사, 팀 프로젝트, 심지어 운동도
“이거 승진이랑 연관 있나요?”
“이거 실적 되나요?”
슬그머니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 아이는 우리보다 조금 더 솔직한 것뿐이다.
아직 ‘겸손한 척하는 계산법’을 배우지 않았을 뿐.
하지만 동시에 조금 짠했다.
왜냐하면,
아직 열한 살 아니면 열두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세상과 거래를 시작해버렸기 때문이다.
세상과 흥정을 하고,
자기 노력의 가격표를 묻고,
점수가 붙지 않는 순간에는
‘의미 없음’ 취급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오늘도 의자에 앉자마자 내게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지금 하는 건 수행평가 아니죠?”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아니긴 아닌데,
아니라고 답하는 순간 아이의 열정이 급속도로 식어버릴 게 눈에 선했다.
성냥불이 꺼지는 것처럼.
그래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만약 수행평가 아니어도… 해볼 수 있을까?”
아이의 표정이
마치 ‘그런 철학적인 질문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이는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음… 평가 아니면 굳이…? 선생님도 알잖아요… 사람이 노력엔 이유가 있어야 해요.”
이 말이 너무 성숙해서,
순간 내가 제자에게 인생 상담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친구는 분명 미래에 회사 들어가면
연차계산 제일 빨리 해서 신청할 스타일이다.
그런데 사실,
아이 말에 일리가 있다.
노력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근데 어른이 이미 잊은 게 하나 있다.
원래 인간은
이유 없이도 신나게 살던 존재였다.
어떤 점수도 붙지 않은 것에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시절이 있었다.
바람 불면 뛰어가고,
종이 조각 보면 접어 보고,
손에 쥔 펜 하나로도 상상의 세계를 열어젖히던
그런 시절 말이다.
그건 평가로는 잡히지 않는 능력이다.
보고서에는 절대 기록되지 않고
표준화된 루브릭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힘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배워야 하는 건
바로 그 힘이다.
아이가 수행평가냐고 묻는 건
어쩌면 이런 뜻일지도 모른다.
“선생님, 그냥 해도 괜찮은 세계가 정말 존재하나요?”
그 질문 속에
우리가 지켜야 할 교육의 마지막 남은 온기가 들어 있다.
우리는 자꾸 아이들에게
미래 준비하라고, 점수 챙기라고, 계획 세우라고,
붙이면 안 붙이는 게 이상할 정도로
평가 테이프를 여기저기 붙여대지만,
정작
평가 없는 즐거움으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능력’
은 가르친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니까 이 아이의 그 집요한 질문이
우리의 허점을 정확히 찌른 셈이다.
“선생님, 수행평가예요?”
내가 대답한다.
“아니야. 그냥 하는 거야.”
그러자 아이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그냥… 해도 돼요?”
그래, 그냥 해도 된다.
누가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기록이 남지 않아도.
실수해도.
심지어 아무 의미 없어 보여도.
그냥 하는 일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
점수가 없을 때 멈추는 게 아니라,
점수가 없어도 해보는 사람이 되는 것.
교육이란 어쩌면
그걸 다시 가르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