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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계절

다음 페이지를 준비하는 마음들

by moviesa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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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온다
1년 중 가장 바쁜 척하면서, 동시에 제일 끝물 분위기를 내는 달.
딱 12월만 되면 아이들도 뭔가 안다.
"선생님, 우리 한달 지나면 헤어지는 거죠?"
아니, 아직 며칠이나 남았는데.
하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속 달력은 내년으로 넘어가 있다.


아이들이 요즘 들어 괜히 더 착하다.

연필도 빌려주고, 자리도 양보하고, 괜히 "선생님 오늘 기분 좋아보여요" 같은 소리를 한다.

이 모든 건 사실상 '연말 정산'이다.
한 해 동안 쌓아온 사회적 관계 점수 챙겨놓는 중.

사실 이제야 서로 좀 알겠다 싶었는데
누가 아침에 말이 없는 스타일인지, 누가 간식 나눠주다가 갑자기 울컥하는지,
누가 친구한테 장난치는 척하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초딩식 츤데레'인지.
달력은 냉정하게 마지막 장을 흔들어댄다.

"우리 내년에 또 같은 반 되면 안 돼요?"

가끔은 이별을 예측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웃기기도 하고,
조금 찡하기도 하다.

익숙함은 참 무섭다.
함께 웃던 자리와 매일의 복도와 그 바보 같은 농담들.
그 익숙함이 커질수록 헤어질 때 더 아리다.

(익숙해지는 기술은 빨리 배우는데, 헤어짐 적응 기술은 왜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가.)

근데 그렇다고 해서 만남이 끝은 아니다.


아이들은 이별을 겪을 때마다 몸집이 조금씩 커지고 마음도 이상하게 더 넓어진다.
만남이 출발이라면 이별은 추억으로 남아서 다음 만남에 은근슬쩍 힘을 실어주는
보조 배터리 같은 것이다. 그걸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괜찮아, 아쉬운 건 좋은 거야. 너희가 그만큼 잘 살았다는 증거거든."

12월. 끝이 아니라 '총정리의 달' 아쉬움, 설렘, 배움이 몽글몽글 뒤섞인 달.

우리 곧 헤어지겠지만 올해 만든 온갖 추억과 실수와 성장들은

아이들 마음 어딘가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이 이별을 겪고 나면

3월의 또 다른 교실에서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또 한 번 '마음 지도'를 그려야 하고,
누가 먼저 말을 걸지 눈치를 보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며
또 한 번 익숙해지는 연습을 할 것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또 배운다.

모든 만남은 언젠가 끝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는 것을.


어른인 나도 사실 똑같다.
매년 12월이면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별 연습'을 한다.

그리고 3월이면 또 새로운 아이들 앞에 선다.

처음엔 서먹하지만, 어느새 또 정이 들고,
또 12월이 오면 또 아쉬워한다.

이게 반복이라면 반복이고,
매번 헤어지고 나면

나도 조금씩 달라져 있다.
더 잘 들어주게 되고,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되고,
더 깊이 안아주게 된다.

올해의 이별이 또
내년의 만남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다음 페이지엔 또 뭐가 있을까.

그걸 기대하는 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다.
기대감이 있는 한, 이별은 슬프지만 또 견딜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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