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프로그램이었던 SBS의 <힐링 캠프>에서는 스타들이 출연해 본인의 고달팠던 과거를 고백하며 낯선 스태프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았다. 나는 그들의 눈물을 보며 그런대로 이해는 했지만, 그 진실성에 대해 의심하곤 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기 사연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란 내게 상상이나 영화 같은 허구 속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감정에 메마른 사람이거나 눈물을 거의 흘려본 적 없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라 올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이 패배와 판정에 대한 아쉬움에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승리에 포효하며 원 없이 기뻐하는 모습만 보고도 곧잘 울곤 한다. 그러나 내 얘기를 늘어놓으며 울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군다나 남들 앞에서 그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의무경찰에 복무하던 시절 행정반에서 무료로 심리 상담을 받을 인원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나는 군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그간 앓아온 불우한 과거사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우울감을 치유하고자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부관은 나를 상담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고,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중년의 여성 상담사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러나 그 상담사는 일반 병원에서 진료할 만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내 얘기를 차분히 들어주는 능숙한 청자의 위치에서 그럴듯한 리액션만을 줄곧 반복했다. 다행히 나는 애초부터 그녀에게 높은 전문성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와 처음 만난 사이이며 앞으로도 볼 일이 없다는 가벼운 관계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연유로 나는 자연스레 내밀한 속사정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빠는 저를 때리면서 공부시킨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제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전부 본인의 스파르타식 교육관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제가 언젠가 성공하더라도 그건 저의 성공이 아니라 아빠의 성공이 돼버려요. 그게 너무 억울해요.”
나는 고해성사를 하는 사제처럼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숨이 턱 막히면서 그만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알 수 없는 울컥거림은 마치 커다란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키다가 목에 걸린 것처럼 나를 깊은 무력감에 빠뜨렸다. 그것은 나의 의식과 신체 바깥에서,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 이행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담사가 크리넥스 각티슈를 내 쪽으로 슬며시 가져다 놓았던 것은 기억한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초현실적인 신체의 반응에 불현듯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어째서 말을 잇지 못했던 걸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생경한 경험을 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 경험을 떠올릴 때면 때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또 언젠가 글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흥분되기도 했다. 물론 그간 억눌러왔던 감정이 생각보다 무겁고 깊다는 점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높은 지층을 이루며 차곡차곡 퇴적된 결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나 이 정도의 슬픔은 갖고 사는 거라고. 나처럼 울컥할 기회가 다른 사람에게 없었을 뿐이라고. 그때까지 나는 누구나 나만큼은 아프고 나만큼은 슬프게 사는 줄 알았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나자 내 삶은 헤어나기 힘들 정도의 무기력증에 빠졌고, 평생 나를 괴롭혔던 불면증은 더욱 심해져 일상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했는지 나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생 때부터 우울증이라고 확신했던 것을 28살이 되어서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갖게 된 것이었다. 나는 정신병원을 찾았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의사 앞에 앉은 나는 이미 초연한 상태였다. 나는 의사를 향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면 될 뿐이니 얼른 그렇게 진단을 내리세요.” 그러나 의사는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우울감이 심한 편이라며 에둘러 표현했다. 표현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정답지를 들추어보듯 별다른 감흥 없이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소견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통상 16점을 기준으로 중증도를 판별하는데, 환자분은 19점이세요. 그러니까 점수가 상당히 높으신 편이죠.” 그 말을 듣고 난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아프고 슬프다는 것을. 조금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우울증을 겪고 있지 않은 사람에겐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예컨대, 친구와 수다 떨기, 맛집 탐방, 산책, 영화 감상, 독서, 자전거 타기 등등. 이러한 취미들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삶의 의욕과 열정을 올려주는 훌륭한 동력원이다.그러나 조금 더 우울한 삶을 사는 사람에겐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가 없다. 파괴된 내면의 자아는 거듭 이렇게 자신을 세뇌한다. “해서 뭐해.”, “다 의미 없는 짓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그렇게 의식은 무기력증에 굴복하여 점점 심연 속에 침전된다. 나의 경험상 이 뿌연 안개 같은 질병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의존할 상대가 옆에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이를 타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약을 먹는 것이다. 한 달쯤 약을 먹었을 때 나는 꽤 호전세를 보였다. 우울감과 무기력증은 조금씩 사라졌고, 타인과 만나는 일도 그런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을 앓을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건 직업적 성공이나 자아실현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다. 우선 삶을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만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그때 비로소 꿈을 꿀 수 있다. 그것은 위에 언급한 직업적 성공이나 자아실현보다 더 큰 의미의 꿈이다. 우울했던 만큼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 행복을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찾는 것. 나는 이것보다 아름다운 꿈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약을 먹는다. 행복한 오늘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