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초록아이들에게 아침 바람을 쐬어주는 일이다. 창을 열고 아이들을 창틀로 옮기며 하나하나 상태를 훑어본다. 겉흙이 마른 것 같으면 탕후루 꼬챙이로 찔러보고 흙이 묻어나지 않으면 싱크대로 데려가 물을 준다. 갈증이 해소되도록 흠뻑 물 샤워를 시키며 말을 건네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목말랐지. 많이 먹어라.
왕국의 건설은 여러 행동 양식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초록아이들이었다.
똥손이었던 나는 우연히 다이소 바질 키트를 선물받아 키우게 되었고 그때 살던 방이 생육환경에 맞았는지 죽지 않고 용케 잎을 틔우는 광경을 의아하면서도 신기하게 지켜보았었다.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식물 집사로서의 눈이 떠진 것이.
새 집에는 옥상화단이 있었고, 집 근처 길가에 화분을 죽 늘어 뜨려 놓고 파는 작은 화원에서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또, 마트에서 대파 한 단을 사 와 밑동을 잘라 심었다. 선거철을 맞아 대파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즈음 양평에 갈 일이 있어 두물머리에 들러 로즈마리와 애플민트를 사 왔고 이후 고무나무를 당근했다.
우리 집 초록아이들을 좀 더 소개하자면, 동네 언니가 분주(포기나누기)해 분양받은 테이블야자의 새 순이 올라왔고 작년에 심은 아스틸베(노루오줌)도 잎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이제 두 살이 된선인장 라보사도 제 머리만큼 올라왔다. 그러자 집 안 화단이 제법 풍성해졌다. 매일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부모 된 심정이 이러할까, 생각했다.
초록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m이 말했다.
여자들한테는 돌봄 본능이 있는 것 같아. 출산과 육아의 시기를 놓친 내 또래 싱글들은 다 뭘 키우더라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 말은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산책을 하다 튀어나가듯 줄행랑치는 길고양이를 보면 안쓰러웠고 돌 틈 사이로 피어난 들꽃을 보면 멈추어 서서 그 생명력에 감탄했던 것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 뒤늦게 발현된 돌봄 본능이 작용했던 것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돌봄 본능이야말로 이 삭막한 도시에서 사람들에게꼭 필요한 덕목이었고, 하찮다는 이유로 밀려난 생명을 돌보는 그 마음이 있어 세상이 그나마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식물 집사가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생육환경을 조성해 주고자 공부에 들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초록아이들은 병치레하는 어린아이들처럼 돌아가며 아팠다.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애플민트에 곰팡이가 피어 기겁을 했었고, 아스틸베에 좁쌀같이 퍼진 진딧물 때문에 머리털이 곤두섰었다. 어느 날은 날파리가 테이블야자에 알을 깠는지 집이 온통 날파리 투성이가 되어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조용히 잘 자라고 있는 줄 알았던 라보사에게는 땜통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증상이 생길 때마다 유튜브로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양지와 반양지, 반음지와 음지 식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햇빛만큼이나 통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요즘은 하루의 절반 이상 창을 열어놓는다. 집이 고가도로에 인접해 있는 까닭에 차소리로 귀가 따갑지만 아이들을 위해 소음쯤이야 견디기로 했다.
다음 달부터는 구에서 하는 반려식물 키우기 입문과정*을 듣는다. 말 못 하는 식물을 키우다 보면 정말 많은 질문이 생기는데 유튜브에 떠도는 정보로는 딱 원하는 대답을 찾기 어려웠고 보다 근원적인 앎을 배우기에 수업을 신청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기대에 부푼 학생처럼 마냥 설렌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