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걸어도 종아리 근육이 탱탱 부어올랐고, 몸에 비해 두꺼운 다리는 작은 키를 더 작아 보이게 했다. 평소 치마를 즐겨 입는 편인데 어쩌다 치마 아래로 뻗은 두 다리를 내려다보면 알통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 날이면 집에 와 침대에 누워 양다리를 벽에 붙이고 있었다. 여자들은 다 아는 다리 붓기를 제거하는 데 좋다고 알려진 방법이었다.
그런데 웬걸. 사십대가 되자 콤플렉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폼롤러에 아무리 굴려도 풀어지지 않던 다리 근육이 빠진 것이다. 딱 언제부터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집순이인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어떤 날은 백보도 걷지 않았다. 그런 날이 더해지고 더해져 지금에 이른 것이다.
더 이상 단단하지 않은 두 다리는 내가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주지시켜 주었다. 각종 화장품으로 얼굴의 노화는 늦출 수 있어도 신체는 이미 늙어가고 있던 것이다. 나는 말랑해진 다리 근육을 만지며 엄마의 휘어진 다리를 떠올렸다. 다리 근육이 눈에 띄게 빠져 엄마에게 발뒤꿈치 들기 운동을 권했었다. 곧 칠순을 앞둔 노모에게나 필요한 동작이라고 여겼는데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즈음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된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에 근무하는 정희원 교수의 강의였다
“젊을 때 운동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70대에 어디 아프셔서 관절 주사 맞고, 80대에 기저귀 차실 가능성이 많이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24시간 간병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한 달에 5백만 원 세이브되는 거고요. 500만원은 예금에 넣는다고 하면 20억이 있어야 돼요. 20억을 버는 일이죠.”
20억이라는 단어는 곧바로 뇌리에 꽂혔다. 20억을 벌 가능성이 전무한 내게 그 숫자는 높은 수익률이 보장된 매력적인 투자처럼 들렸다. 미래에 예상되는 지출을 줄이는 것이야 말로 돈 버는 일이 아닌가 생각되었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나에게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음날부터 운동을 습관으로 들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집순이인 나는 헬스장을 끊기보다 홈트를 택했다. 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진입장벽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몇 가지 알고 있는 스트레칭 동작에 스쿼트와 플랭크, 등 근육을 키우기 위한 덤벨 운동 등을 더해 50분가량의 코스를 만들었다. 종아리 근육 강화를 위한 발뒤꿈치 들기도 빼놓지 않았다. 운동할 때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만한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다.
당연히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20대 때 앞뒤 좌우로 쩍쩍 벌어지던 다리는 100도만 넘어가도 근육이 찢어지는 듯했다. 스쿼트는 고작 5회에 무너져 내렸고 플랭크는 30초도 버티지 못했다. 윗몸을 일으키기나 누워 허공으로 다리를들어 올리면 허리가 아파 코스에서 아예 빼버렸다. 한 번은 덤벨을 들어 올리다 어깨에 무리가 갔는지 일주간 파스를 붙이고 다녀야 했다. 어깨 통증을 빌미로 일주일간 운동을 쉬었다.
미루기도 참 많이 미뤘는데 오후에는 절대 운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전 11시경 일주일에 3회씩 운동하는 것으로 픽스했다. 습관회로가 고착될 때까지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정희원 교수의 말을 되새기며 운동하기 싫은 마음을 다잡으려 용쓰고 있다.
운동하지 않는 날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해가 지면 나와 뛰었다. 성북천을 따라 보문2교에서 안암2교까지 1.2km에 이르는 거리를 뛰는데 처음에는 500미터만 가도 숨이 차 중간중간 쉬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 다리에 근육이 붙었는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뛴다. 50분이 소요되었던 운동 코스도 75분으로 늘었다. 지금은 스쿼트는 30회를 하고, 플랭크는 90초를 버틴다. 연말까지 근력 운동 시간을 조금씩 더 늘려 운동 시간을 90분까지 만들어 볼 심산이다.
이 상태로 가면 올 가을쯤 다시 코끼리 다리가 될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코끼리 다리는 콤플렉스가 아니다. 20억을 벌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유망 자산이자 투자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