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직원은 이번 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5만원의 상품권이 모바일로 지급될 거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장려상이라니.
최우수상까지는 아니어도 3명에게 주는 우수상은 당연히 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수상자 명단을 보아하니 최우수상은 선정하지 않은 듯했고 내 이름은 5명에게 주는 장려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수상작의 제목을 보니... 장려상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도약의 발판이 되어준 성북구 1인가구 물품대여’, ‘행복을 찾아서(with 성북구청)’와 같이 구와 사업에 대한 칭송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내 글의 제목 ‘나의 고무나무 침대’는 어딘지 서정적이고 순한맛이었다.
공모전에 응모하게 된 것은 지난달 통장에 꽂힌 급여 때문이었다.
807,440원.
아무리 경제가 좋지 않다지만 삼개월째 백만원을 하회하고 있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만 해도 40만원에, 월세,핸드폰&인터넷 요금, 보험료, 각종 공과금만 해도 급여를 넘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높게 책정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액수를 줄여보고자 공단에 전화했지만 직전 연도에 신고된 소득에 맞춰 책정된 금액이기 때문에 조정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돈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가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사를 하면서 낮아진 보증금 때문에 통장에는 아직 여유 자금이 있었지만, 9였던 앞자리는 5개월 만에 5로 바뀌었다. 물론 200만원 정도는 2차전지에 물을 탔고 더 크게 물려 버렸지만. 이 속도로 가면 미래가 상당히 암울했고 주식이 원금을 회복할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라도 앞자리 5는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부업을 해야 하나.
엄마의 말 대로 알바라도 뛰어야 할 판이었다.
때마침 구청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1인가구 물품대여 체험수기 공모.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구청의 1인가구 지원사업을 통해 침구청소기와 스팀청소기를 빌렸는데, 사업 이용자에게 수기 공모전에 참여하라는 단체 메시지였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무시했겠지만 최우수상 1명에게 무려 20만원, 우수상 3명에게 10만원이 시상된다고 했다. 그 아래 장려상과 입선이 있었지만 이들은 애초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필력에 우수상은 떼놓은 당상이지.
관건은 얼마나 쉽고 대중적이게 쓰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오버스럽지 않게 표현하느냐였다. 나의 상황을 비하하지 않고 긍정성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상금을 향한 욕심을 노골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티가 나게 담았다. 말미에 사업에 대한 칭찬과 공무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고를 쓰며 나는 상금으로 10만원을 받으면 b와 함께 한우 집에 가 몸보신을 할 단꿈에 젖어 있었다. 생활비로 아껴둘 수도 있겠지만 수고한 나에게 일정 정도의 포상은 당연하다 싶었고 남은 금액으로 시장에 들러 제철 복숭아를 한 박스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장려상이라니.
용비어천가를 불렀어야 했나.
조금 더 과감하게 출제자의 의도에 부응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날아왔다. 5만원짜리 성북사랑 상품권이었다. 장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동네 시장에 가 빨간 바구니에 담아 파는 제철 복숭아 3개와 양파와 당근, 총각김치를 사고 불고기용 한우 300g과 불고기 양념을 샀다. 그다지 산 것도 없는데 5만원을 다 써버렸다.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조만간 b와 함께 집에서 불고기를 먹을 생각에 흐뭇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