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xd Sep 21. 2024

커리어 쌓기


남자는 많아?”


독서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b가 전화로 물었다. 독서 모임에 나갈 거라고 하니 다른 사람 만날 준비를 하느냐며 경계했던 b였다.


“남자 없어.”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b가 말했다.


“다행이군.”


b의 반응에 내가 웃으며 농담 삼아 말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망했어. 어딜 가든 8할 이상이 여자야. 남자들이 유일하게 많이 보이는 모임은 부동산, 주식, 사업 관련 모임뿐이야. 돈 말고 관심이 없는 거지. 완전히 망했어.”


내 옆자리와 뒷좌석에는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내 말이 들릴 것을 인지하면서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듣기를 바랐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한 뇌피셜에 불과하지만 그 생각을 오래도록 해왔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대목이었다. 사람들, 특히 젊은 남자들은 점점 더 보수화되어 가고 있었고, 돈이 세상의 전부인양 굴었다.


“나는 그렇지 않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만나는 거지.”


그것은 사실이었다. b는 나보다도 더 돈에 관심이 없고 여전히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는 아주 드문 사람이었다. 루키 소설 속 인물처럼 무심하면서 따뜻한 사람이었고, 그것이 나와 b를 연결해 주는 견고한 끈이었다. 십여 년 만의 독서모임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아는 b는 나에게 소감을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 말투로 하지만 기저에 뿌듯함을 담아 옆자리 남자와 뒷좌석 남자에게 들릴 정도로 크지도 작지도 않게 말했다.


“어디 가서 카프카 읽었다고 할 수 있게 됐지, 뭐.”


독서 모임에 나가기로 결심한 건 나를 팔아 글을 쓰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일 없는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드는 건 차지하더라도 언제까지 나를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다간 이야깃거리가 금방 고갈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늘 따라고 뭐라도 채우기 위해 침대 머리맡과 소파, 책상과 화장실, 손 닿는 곳마다 책을 배치했지만 핸드폰에 더 먼저 손이 갔다. 하는 수 없이 강제로 책 읽기를 결심했고, 독서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의 책은 사후 100년을 맞이한 카프카의 소송이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카프카를 읽으며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해야 했다. 책 읽기는 운동과 비슷해서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감각을 깨우며 책을 덮었다 펼쳤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오지 않으면 천 원의 벌금이 있다는 규정이 있었고 그 규정은 이 독서 모임을 선택한 기준이기도 했다. 나는 매주 열리는 이 모임이 궁금했고 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기다려졌다.


독서 모임 사람들은 자신들을 고인물로 지칭했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 포도송이를 채운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책과 관련된 직종에 근무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우 성실히 책을 읽고 정성을 다해 자료를 조사해 왔다. 어떤 사람의 책에는 알록달록 인덱스 테이프가 빼곡히 붙어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노트에 반듯한 글씨로 내용을 요약해 왔다. 요즘에 이렇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들은 드디어 카프카의 고독 3부작-실종자, 성, 소송을 다 읽었다며 어디 가서 ‘카프카 읽었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모습을 보자 나는 좀 벙진 기분이 들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이 시대에 어디에도 쓸 수 없는 한 문장의 커리어-‘카프카 읽었다’를 얻기 위해 출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 동안 4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읽고 왔다는 사실이 생경하면묘하게 기분을 달뜨게 했다. 연봉을 높이기 위해, 주식 투자를 잘하기 위해, 부동산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프카라는, 헤밍웨이라는, 루키라는 경력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길 기다렸고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다면 이들이 주류가 되는 사회를 희망한다. 소유한 자산의 규모나 거주하는 아파트의 브랜드로 인간의 가치가 매겨지기보다 카프카 읽었다는 커리어가 더 가치롭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기를 순진하게도 바라고 있다.


다음에 읽을 책은 에리히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앞으로 나는 독서모임을 통해 커리어를 쌓아갈 계획이다. 에리히프롬을 읽었다는 커리어.

이전 11화 5월과 종합소득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