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로부터 연락이 왔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3개월 만이었다. 어색한 안부 인사를 몇 마디 나눈 후 나중에 연락하자는 말로 대화는 끝이 났다. 다시 연락이 온다면 피하지 않겠지만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c와의 인연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번역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c는 대형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방송국 공채를 대비하는 주말 학원에서 우리는 같은 날 같이 상담을 받았고 다음 달 같은 초급반에 등록했다. 나는 그곳에서 1년 반 가까이를 보내고 학원을 옮겼고, c는 2년 정도 있다 다른 학원으로 갔다. 둘 다 1차를 통과한 적은 있지만 2차에서 고배를 면치 못했다. 내가 학원을 다니다 말다 하다 5년 여 만에 방송국 입사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접은 데 반해, c는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시험에 응시하는 듯했다. 그때만 해도 c는 나름 붙임성도 있고 유순한 성격에 노력하면 언젠가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긍정적인 아이였다.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들며 자신의 나이가 더 이상 적지 않음을 깨달은 c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접고 취업 준비에 들어간다. 그리고 숱한 거절을 경험하게 된다. 매일 같이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나이가 많은 탓인지, 일천한 경력 때문인지 번번이 실패를 맞닥뜨렸고 나중에는 닥치는 대로 원서를 집어넣었다. 간혹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어디에 지원했는지 메일함을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힘들게 입사한 회사는 근무환경이 열악하거나 성향에 맞지 않았는지 몇 개월을 다니다 그만두었다. 그만둔 후에는 벌이가 없는데 어떻게 사는지 의아할 정도로 상당히 긴 시간을 취준생으로 지냈다. 최근까지도 c는 1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이 넘도록 취업 준비 중이었다.
c하고는 딱히 친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만났다. 주로 내가 밥을 샀고 c는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어 얻은 티켓으로 영화를 보여주거나 어딘가에서 얻은 프랜차이즈 커피 쿠폰으로 커피를 샀다. c는 그런 것들을 참 잘 알았다. 그리고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통화를 했는데 대개 c가 전화를 했고 한 번 통화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었다. c는 참 할 말이 많았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연예. 분야를 막론하고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면 나는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방청소를 하거나 무음으로 핸드폰 게임을 했다.
그래, 취업 준비하느라 힘들지, 너도 말하고 싶겠지.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말하렴.
c는 여전히 방송사 공채 이야기를 했다. 언제 어느 방송사에 시험이 있고, 이번에 누가 들어갔고 이번 전형에는 뭐가 추가되었고 같은 이야기 말이다. 나는 그 방면에 더 이상 관심이 없었지만 c는 계속해서 찾아보는 모양이었다. 공채 시즌이 되면 남몰래 서류를 집어넣고 있을지도 몰랐다. c는 간간히 우리가 처음 만난 학원에서 같이 수강했던 사람들의 근황을 업데이트해 주었다. 누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누군 아직도 그 학원에 남아있고 같은 이야기를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들었다.
"ooo 알아?"
"몰라"
"왜 몰라. 같은 초급반에 있었는데"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그 사람들과 c는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내는 것 같았고, 어쩌면 그 사람들과 연락하며 내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c가 십여 년 전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는 c가 그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c는 많은 말을 했지만 의외로 자기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았다. c가 속내를 드러내는 유일한 주제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향에 내려가면 엄하고 소통이 안 되는 아버지와 매번 싸우고 올라왔고 그래서 이제는 명절에도 잘 내려가지 않았다. 나 역시 불통인 아버지가 있기에 우리는 그 점에서 꽤 말이 잘 통했다. 고집불통에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나도는 아버지가 한 가정을 어떻게 불행으로 이끄는지, 그것이 자식과 가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아버지라면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이야기를 전화로 했다. 나는 누구 하고도 심지어 엄마나 b하고도 15분 이상 통화하지 않는다. 내 전 생애를 통틀어 그렇게 통화를 많이 한 사람은 c가 유일했다. c와 한 시간 이상, 어떤 날은 두 시간 가까이, 그것도 주기적으로 통화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c였다면 딱 죽고 싶을 것 같았다.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구직 생활. 현실적으로 40대 무경력자를 뽑아줄 회사는 없었다. 그렇다고 취업 말고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대처럼 밑바닥부터 시작하기엔 체력도 열정도 후달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렇게 살아서 희망이 있을까. 다들 결혼하고 뭔가를 이루어 내고 있는데 나만이 이렇게 뒤처져 있네. 도망치고 싶다. 떠나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안다. 그리고 지금도 문득그런 생각은 온다.
c와 연락이 끊겼을 때 나는 정말로 c가 죽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그의 집주소를 찾아냈다. 그가 사는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건물에서 나오는 다른 입주자로부터 집주인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아는 동생이 여기 사는데요, 며칠 전부터 갑자기 연락이 안 돼서요. 그럴 애가 아닌데. 카톡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고. 이런 적이 없는데. 부재중 전화가 뜨면 바로 전화를 하는 애거든요."
집주인은 나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더니 마스터키를 갖고 내려왔다. 머리가 희끗한 집주인은 나를 슬쩍 보고는 천천히 c의 집 현관문을 열었다. 나는 복도에서 숨죽인 채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정말 죽은 건 아니겠지.
만약, 정말, 죽었다면, 그땐 어쩌지. 어떡해야지.
집주인이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서 방을 둘러보는 동안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들어와서 보실래요?"
문 밖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방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깔끔한 c의 성격만큼이나 깔끔한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인은 깔끔해, 깔끔해, 하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서운하게 했나 본데요."
c와 나를 연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집주인은 건물 밖으로 나와 c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내 나의 전화를 무시하던 c는 집주인이 전화하자 바로 받았다. 머리도 복잡하고 해서 바람 쐬러 지방에 등산을 왔다며 오늘 저녁 늦게 귀가할 예정이라고 집주인이 전해주었다.
나는 정말로 c가 죽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무사한 c에 안도하며 c의 집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보낸 지난 일주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c의 인스타와 페북을 뒤지고 DM을 보내고 18년 전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락처를 찾고 집주소를 알아내기까지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무 일 없어 다행이었지만 동시에 허망했다. c와 통화한 그 긴긴 시간은 뭐였지.
그날 이후 다시는 c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c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길,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재를 직시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두 다리로 바로 서길, 몰아치는 허무와 좌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c가 이 글을 볼 리 없지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뭐라도 하자. 불안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더 심하게 오거든. 뭐라도 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길 거야. 할 수 있어. 용기 잃지 말고. 건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