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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an 17. 2024

생생하게 깨어서, 진정을 다해서

고양이들이 사람 말을 따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지.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 도미는 밖에 나가고 싶은데 문이 닫혀 있으면 곁에 와서 ‘아웃사이드’라고 말을 한다. 고양이 구강 구조상 자음 발음에는 제한이 있어서 실제 들리는 소리는 ‘아옥가아’ 정도에 가깝다. 문 열어줄 때마다 이 사람이 내는 소리를 기억했다가 필요할 때 써먹는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아옥가아의 의미를 확장해서 쓰기도 하는데, 꼭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어도 닫힌 방 문 앞에서 고양이 말로 아옥가아라고 한다면, 이때의 아옥가아는 ‘문 열어라’는 뜻인 셈이다. 아옥가아의 용례가 하나 더 남았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첫 번째 의미의 아옥가아보다 훨씬 더 자주 쓴다. 바로 밖에 ‘같이 나가자’는 뜻이다.


그날 아옥가아에는 뜨거운 여름이 한창이었다. 도미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누렇게 마른 잔디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바삭거리는 잎사귀, 물기를 머금고 땅 끝에 가까이 붙은 구름, 모든 것이 태양의 열기 아래 익어가는 것만 같다. 문득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 같은 것이 빠른 속도로 내 위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칠 듯이 가깝게. 그 위에 올라탄 여름은 순식간에 찾아왔고, 아마도 눈 깜짝하고 보면 떠나가고 있을 테다. 지금은 그 여름의 한복판.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사는 인간이라면 사는 동안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실컷 느끼고 싶다. 다음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태어나고 싶든, 윤회의 사슬을 끊고 싶든, 지금은 인간이다. 인간의 몸을 갖고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여름이 깊다. 이 여름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질문한다. 글을 쓴다고 하늘이 파란 걸 외면하지 않았는지. 고양이 말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체, 아옥가아 아옥가아 소리에도 스크린만 들여다보진 않았는지.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도미와 나란히 앉았다. 쓰다듬는 손길에 고양이 말과 사람 말이 섞여서 날아간다. 소나무 숲 너머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빛이 섞여든 파란 물결이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커다랗게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이리저리 떠밀렸다. 몸에 닿는 파란 물결, 끊임없이 출렁이는 물결 너머 멀리 보이는 고요한 수평선. 눈에 보이는 세상의 끝. 거기에 맞닿은 파란 하늘. 눈앞에는 온통 파랗고 파란 것들 뿐이었다.


‘나는 이 여름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이 삶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겠다. 눈으로, 귀로, 코와 혀와 피부로 세상을 얼마나 생생하게 느끼고 있느냐는 결국 얼마나 깨어있느냐와 같은 말이기도 하다. 몇 주 동안 글을 쓴다고 감각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체, 스크린 앞에 앉아 글 몇 편을 만들어냈다. 진정으로 살아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설을 쓰겠다더니 내내 열심히 글을 쓰지 않을 이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다 글을 너무 열심히 써서 생긴 문제니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라’는 말처럼, 글 쓰는 일도 생을 가리키는 여러 손가락 중 하나일 뿐이다. 쓰는 사람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에게 여섯 가지 감각이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오감에 ‘생각’이라는 감각 하나가 더해진 것이다. 전형적인 현대인으로서 생각하건대, 생각이라는 건 잠글 수 없는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 같은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명상을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보기에 현대인은 생각이라는 감각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감각이 과하게 사용되면 몸은 피로함을 느낀다. 눈이 피곤하다거나, 귀가 시달린 것 같다거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미 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열심을 다해 글까지 쓴다니.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런 행위를 생각의 고문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토스트기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듯 지글거리는 뇌 때문에 바다에 다시 가고 싶은데, 오늘은 또 가을처럼 날이 쌀쌀하다. (변화무쌍한 뉴질랜드 날씨. 이 글을 쓰고 있는 여름날 오후 1시 기온은 13도다. 어제 같은 시간의 기온은 25.5도였다.) 따뜻한 긴팔 옷을 입고 고양이를 무릎 위에서 재우고 조금 불편한 자세로 글을 쓰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휘몰아친다. 이러다가 여름이 다 가버리는 건 아닌지 몰라, 생각한다. 삶도 이렇게 순식간일 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순간도, 내 무릎 위에서 깊은 꿈 속에 든 고양이도.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이 세상을 감각할 수 있는 시간도.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가 몇 번 되돌아오고 다시 떠나갈 때, 문득 그 모습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 지나고 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로 열심히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 다만 생생하게 깨어서, 진정을 다 해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습작 노트]  

<지난 이야기(비옥한 마음과 싱싱한 글 [클릭])​​​​​에서 계속됩니다>

  “오는 길 괜찮았어? 음식 준비는 거의 다 됐거든. 제부도 잘 지냈어요? 소파에 앉아요. 지후, 지예, 옆으로 옮겨, 이모랑 이모부 앉으시게. 뭐 마실 거 줄까? 제부는 뭐 마실래요? 맥주? 와인?”
  언니가 분주히 주방으로 돌아갔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느라 못 들었을 줄 알았는데, 조카들은 이미 우리가 앉을자리를 비워두고 소파 한쪽에 둘이 붙어 앉아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게임에 빠져 있었다. 형부가 주방에서 맥주를 내 오며 말했다.
  “처제, 얼마 전에 신간 나왔던데, 왜 말 안 했어?”
  “참, 형부도. 제가 신간 한 두 번 내나요?”
  말미에 웃음을 덧붙였는데도 형부의 표정은 심각했다.
  “형부, 농담이에요.”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책 추천한다고 해도 말하지 말라고 해요. 어디 가서 아내가 글 쓴다는 얘기도 못 합니다.”  
  남편이 거들었다. 그제야 형부의 얼굴에 웃음이 돈다.
  “그래, 처제 글이 꼭 그렇네, 생각해 보니. 그 처제 특유의 유머 감각 말이야. 유머인지 아닌지,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것. 그것도 의도한 건가? 사캐즘(sarcasm) 같은 거야? 영국식 유머라고 하나?”
  사캐즘이라니. 기분 상했다는 뜻인가? 책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건 사실이긴 하지만 맹세코 빈정거리려는 의도는 없었다. 게다가 사캐즘이라면 형부 전문 아니던가.
  “배경만 영국이었어요, 형부.”
  어물쩍 넘어가려는데 언니가 샐러드가 가득 담긴 그릇을 들고 나왔다.
  “지후 아빠, 설이 이제 막 도착했으니까 숨 좀 돌리게 해.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설아 미안, 형부가 요새 글 쓴다고 글쓰기 수업도 다니고, 모임도 다니고 그래서 궁금한 게 많을 거야.”  
  이야기인 즉, 형부는 고등학생 때 문예반 활동을 했었다고. 형부의 표현에 의하면 문학소년이었다나. 백일장에서 심심치 않게 상을 타기도 했고, 국어선생의 관심을 받는 문학 꿈나무였지만, 학자금대출이 쌓여가는 동안 삶의 무게를 체감하게 되면서 그때의 꿈은 포기했다고 말하며 형부는 잔을 비웠다.
  “그런데 말이야, 그게 벌써 언제야, 그렇게 오래전 일인데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 그렇게 타오르던 불꽃이 아직도 속에 남아서 빛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사는 동안 자꾸만 이렇게 마음이 일렁였던 건 아니었을까.”
  남편이 형부의 잔을 채우자, 형부는 남편의 잔을 채웠다. 남편은 운전을 해야 한다며 거절했지만, 형부는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거의 준비 다 됐거든. 지금 파스타 삶는 중이야. 그러면 다 끝나.”
  잠시 앉았던 언니가 다시 일어나며 말했다.
  “지후 아빠, 요즘 쓰는 글 이야기 좀 해봐. 제부는 내가 음료수 갖다 줄게요.”
  나는 남편 앞에 놓인 맥주잔을 내 앞으로 슥 당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형부는 미래 사회가 배경인 디스토피아 소설을 쓰고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2350년,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21세기부터 냉동 보존되었던 두뇌들이 대거 깨어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깨어난 뇌의 수에 비해 뇌와 연결될 육체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재밌겠는데요?”
  남편이 말했다. 형부는 남편에게 건배를 청했다.
  “좋네요, 형부. 잘 써보세요.”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완성되면 처제가 좀 읽어봐 줄래?”
  형부가 잔을 비우며 말했다.
  “형부, 저는 과학은 몰라요. 제가 얼마나 전형적인 문과생이었는지 언니가 말 안 했나 봐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 과학책이 아니고 소설이잖아. 소설이라면 처제가 전문이지.”
  아유, 저는, 이라고 말하려는데 형부가 말을 이어갔다.
  “글 쓰는 일이라는 게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해. 그 왜, 신내림 있다고 하잖아. 꼭 신내림 같다니까?  내가 신을 거부했을 때는 나쁜 일만 벌어지던 세상이, 글을 쓰기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터 평온하달까?”
  “정말요? 제 세상은 아직도 혼란스러운데. 글쓰기는 내 운명이 아니었던 건가?”
  형부가 또 오해할까 봐 끝에 웃음을 덧붙였다.
  “평온하긴. 한 번 들어가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으면서. 그 안에서 내가 모르는 무슨 전쟁이 일어나고 있나 몰라.”
  언니가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내왔다. 크림소스를 눅진하게 머금은 파스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식탁은 색색깔의 음식과 촛대와 꽃으로 가득 채워졌다. 붉은색의 냅킨 위에 포크와 나이프와 스푼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형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다들 와인 괜찮지?”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고사리 그림  |  <어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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