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유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이나, 총을 맞고 부상을 당해도 금방 재생되는 강력한 울버린처럼,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멋진 모습에 빠져들면서.
이처럼 사람은 한 번쯤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적 능력을 가져보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이 상상은 사실 유전자의 관점에서도 자연스럽다.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서도 뛰어난 신체 능력은 곧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희망은 '문명'이라는 형태로 바뀌어, 우리의 신체적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기술을 제공해주고 있다.
✔️ 다리, 발 : 다리와 발의 목표는 빠르고 오랜 이동이다.
사람들은 신발을 발명해 이동의 효율성을 높였고, 현대의 러닝화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빠른 장거리 달리기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뿐만인가? 빠르고 오랜 이동이라는 궁극적 목표는 자동차와 비행기가 제공해주고 있다.
✔️손 : 원시 주먹 도끼부터, 현대 건설 현장의 포클레인까지. 총, 미사일, 붓, 연필, 키보드 모두 사람의 손을 대신해 주는 문명들이다.
✔️그 밖에도 : 눈이 못하는 기능을 극대화시켜 주는 안경, 현미경, 망원경이 있고, 의사의 청진기와 노인들의 보청기는 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얇은 피부가 한겨울 추위를 다 견딜 수 없기에 사람들은 패딩을 입는다.
이처럼,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대부분의 문명은 사람의 신체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문명들은 사람들의 신체를 조금씩 약하게 만들고 있다. 팔, 다리 힘을 굳이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넘어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 가고 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다만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다른 신체 기관의 능력을 문명이 보충해 주는 것에는 사람들이 별 거부감 없는데 비해서, 유독 '뇌'의 능력을 문명이 보충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마도 '뇌'의 기능이 자의식과 연결되어 있고, 더 나아가 '뇌'가 곧 '나'라고까지 여기는 인식 때문인 듯하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의 발달로 사람 '뇌'가 퇴화하거나,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게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뇌'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고, 사람을 고차원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신화일지도 모른다.
'뇌'를 나라고 믿는 것은, 눈이 곧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착각일 수 있다.
'뇌'의 기능은 본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몸의 각 신체 기관들을 컨트롤하는 제어 센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성찰하고 계발하고 삶을 고민하는 것은 '뇌'의 극히 일부 기능, 또는 생존의 측면에서는 굳이 불필요한 기능이다.
멍게 유생은 우리가 올챙이처럼 생겼는데, 뇌와 척삭(원시 척추), 간단한 신경계를 가진다. 스스로 헤엄치며 적당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능력이 필요하기에 뇌가 활성화되어 있다.
그 후 멍게는 성장 과정에서 적당한 바위나 지형에 달라붙어 평생을 붙박이로 살아가는데, 정착한 이후에는 더 이상 이동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뇌는 에너지만 잡아먹고
▪️생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멍게는 뇌를 스스로 소화해 영양분으로 사용한다. 생존에 굳이 필요 없어진 기관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고의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에 내준다고 해서, 지능이 낮아진다고 해서, 심지어 뇌가 없어지고 기억과 사고는 칩에 데이터베이스화된다고 해도, 생존하고 번식해 나가는데 지장이 없다면 그 또한 자연선택일 뿐 행복하지 말란 법은 없다.
사람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도 아직까지는 기우인 것 같다.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사람이 질문하고 명령하는 것에 대해서만 반응할 뿐, 사람이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자의식을 갖거나 거대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는다.
걱정이 된다면 인공지능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지, 인공지능 자체는 아니다. 칼이 강도의 손에 들렸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칼 자체는 잘못이 없다.
AGI(범용인공지능)가 보편화될지도 모르는 먼 미래에 간다면 몰라도,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설령 지배받으면 어떤가? 사람에게 지배받는 강아지들도 집에서 잘 지내고 있고, 어쩌면 걱정과 번민 없이 우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인공지능은 앞으로 우리에게 편리한 도구가 될까. 궁극적으로는 재앙이 될까?
앞으로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사회라면, 어떤 가치들이 사람들에게 중요해질까?
다음 화에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