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보다 더 큰 질문 - 우리 자녀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얼음 속 매머드, 흰 대지, 거대한 침묵 같은 장면이 떠오르는 ‘빙하기(ICE AGE)’.
마지막 빙하기는 지금으로부터 11만 5천 년 전부터 약 10만 년 정도 지속되었고, 1만 2천 년 전부터는 지구가 다시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홀로세 간빙기’다.
농업과 도시, 문명과 인류의 역사는 이 짧은 온기의 구간 위에 간신히 세워졌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 이유는 지구의 공전 궤도와 자전축이 아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중 특히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 궤도의 원형 - 타원형, 이심률은 10만 년 주기로 변한다. 이 미묘한 차이가 지구 남, 북극의 빙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간빙기 시대에 살고 있는 어떤 나라의 사람은 의문을 품는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는 것은 간빙기라서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그러나 과학은 명확히 말한다.
지금의 온난화는 자연의 리듬이 아니라고.
곡선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물론 과거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변화가 무척 느렸기 때문이다.
기온 1도 상승에 수천 년, 해양 산성화에 수만 년.
생명체는 그 긴 시간 동안 적응하고 진화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지구는 단 150년 만에 1.4도가 상승했다.
자연이라면 수천 년 걸릴 변화를 인류는 네댓 세대 만에 압축해 버린 것이다.
빙하 코어에 갇힌 공기방울부터 추적해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 직후부터 갑작스럽게 위로 치솟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 전 이산화탄소 농도 280PPM → 현대 420PPM)
기후학자들은 이 급상승 곡선을 ‘인간의 지문(Human Fingerprint)’이라고 부른다. 지구가 따뜻해지는 두 번째 이유다. 바로 인간.
원인은 모두 알고 있다. 석탄, 석유, 가스. 그리고 그것으로 움직이는 도시, 공장, 자동차, 전기.
문제는 온도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속도다.
지구 시스템은 이 속도를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더 무서운 건 온난화 그 자체가 아니라, 지구가 한 번 문턱을 넘으면 스스로를 가속하는 장치가 켜진다는 사실이다.
남, 북극의 빙하는 단순한 얼음이 아니다. 지구를 덮고 있는 거대한 거울이다. 햇빛을 우주로 반사해 지구를 식히는 자연의 방패다.
그러나 이 거울이 깨지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얼음에 반사되던 햇빛은 그대로 바다와 땅에 흡수되고, 지구는 더 빨리 뜨거워진다.
더 뜨거워진 지구는 더 많은 얼음을 녹이고, 더 많은 얼음 소멸은 다시 온난화를 가속한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점점 빨리 내리막길을 달리는 트럭과 같다.
이것이 바로 기후 폭주(Climate Runaway)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가속 구간을 지나면 기후 붕괴를 피할 시간은 불과 수십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기후 문제를 말하면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는 비난이 따라온다.
하지만 여기서 인간을 나쁜 존재로 여기는 데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진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위험을 피하고, 효율을 추구하고, 편리함을 찾는다.
그 와중에 인간은 생태계 사슬 최상위에 서있으며, 지능이 고도로 발달했다.
다른 생물종을 제압하고 자연을 활용해 편리한 현대문명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문명은 언제나 “덜 움직여 더 많이 얻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손으로 바닥을 쓸던 빗자루는 유선 진공청소기가 되고, 진공청소기는 로봇청소기가 되었듯.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이다.
우주는 별과 행성으로 가득하고,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도 충분한데 왜 우리는 그 흔적조차 못 보는가?
가능한 답 중 하나는 이렇다.
문명은 태생적으로 너무 빠른 효율을 추구하고, 그 속도를 행성이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문명은 스스로를 넘어서기 전에 자기 세계를 먼저 고갈시킨다.
지금의 지구를 보면 이 설명은 더 이상 공상과학처럼 들리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인간이 나빠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이 너무 인간답게 살아서 생긴 문제다.
이처럼 지능이 발달한 생명체의 생존 본능은 결국 모행성을 파멸로 이끌어 갈 것인가?
비관적 전망만 가득 차려는 찰나, 주목해 볼만 한 인간의 신체적 본능이 하나 보인다.
바로 ‘움직임의 본능’이다.
우리 몸은 사냥과 채집의 긴 역사를 거쳐 ‘가만히 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도록 진화했다.
걷고, 뛰고, 몸을 써야 정신과 신체가 건강해진다.
흥미롭게도, 자동차 대신 자전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이 단순히 지구를 살리자는 구호를 넘어, 우리의 본능에 부합하는 자발적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존이 확보된 사회에서 불편하고자 하는 바로 그 본능. 지구를 살리는 희망이 될 수는 없을까.
하지만 지구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불편하더라도 몸을 움직이고 소비를 줄이는 개인의 방향은 중요하지만, 이 희망에만 기대기에는 8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 기후의 거대 곡선을 되돌리기엔 부족하다.
해법은 개인의 방향보다는, 문명의 속도와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청정에너지, 신효율에너지, 산업 재편, 국제 협력과 규칙 제정이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각 국의 셈은 달라 보인다.
과학자들은 6500만 년 전 소행성의 충돌로 공룡을 포함한 생물종의 80% 이상이 멸종했던 사건을 제 5차 대멸종이라 부르고,
지금을 '6차 대멸종'의 초입으로 분류한다.
수많은 종이 사라지고,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다. 원인은 단 한 가지, 인간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가장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트럼프는 기후 위기를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인간의 탐욕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본능과 문명의 속도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만 년 후 언제 올지 모를 다음 빙하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문명 스스로를 다시 설계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