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힌트, 性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서아프리카 내전...
포탄이 터지고, 도시가 불타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울부짖는다.
뉴스 화면은 멀리 있지만, 전쟁의 잔혹함은 한 장면만으로도 우리의 감정을 깊게 찌른다.
이 지구는 왜 이렇게 자주 잔혹해지는가.
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메리카 토착인들은 유럽 식민 세력이 도착한 후 약 95%, 2천만 명이 사라졌다.
호주 아보리진은 인종 청소에 가까운 폭력을 겪었고, 대만 고산 부족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문명이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보스니아 전쟁이나 르완다 대학살 같은 참상이 반복되었다.
전쟁은 왜 계속 일어나는가?
역사학자들이 아무리 시대·문화·정치의 원인을 이야기해도, 그 깊은 뿌리를 더 파고들면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전쟁의 근본 원인은 바로 ‘한정된 자원’ 때문이라는 것이다.
식량, 물, 땅, 사냥터, 안전한 영토.
이 모든 자원은 언제나 부족했고, 부족한 것 위에서 생존 경쟁은 격화되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집단을 이루어 살아온 동물이다.
그리고 무리의 생존은 개체 하나하나보다 훨씬 중요했다.
따라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 ‘우리 무리’를 구별하고
✔️ 무리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 외부 무리에 대한 경계를 높이고
✔️ 자원 분배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왔다.
무화과나무 숲을 차지하기 위해,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들과 경쟁하던 호모사피엔스는 호모사피엔스들 무리 간에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호모사피엔스의 공격성은 모리셔스에 도착한 지 176년 만에 도도새를 멸종시켰으며, 이 본능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늘날에 와서는 첨단 무기들이 경쟁하는 현대전으로 탈바꿈되었다.
무리를 지키고 자원을 확보하려는 본능은 시스템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자원에는 ‘성적 파트너’, 즉 ‘번식 기회’가 포함된다.
암컷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고, 번식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 쪽은 대부분 ‘수컷’이다.
따라서 수컷이 다른 수컷을 밀어내고 번식 기회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극단화되면 ‘폭력’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포유류의 대부분은 수컷이 싸우고 암컷을 차지한다.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쟁터에서 싸우던 것도 대부분 남자였고, 승리한 부족의 남성들이 패배한 부족의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일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다.
실제로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칭기즈칸의 Y염색체 계통을 가진 남성은 약 1,600만 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그가 이끈 전쟁이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성적 경쟁의 집단화된 결과’였음을 암시한다.
백제 계백 장군이 패배를 예감하고 처자를 먼저 죽인 뒤 출정한 기록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패배한 무리의 여성은 적에게 넘어간다”는 유전자적 현실을 무의식 속에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인간이 의식적으로 “대를 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해서 전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적 경쟁 본능이 사회 규모로 확장되면 전쟁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논의되는 주제다.
전쟁의 원인을 완화하는 사회가 존재할까?
우리와 DNA가 98.8% 일치하는 보노보(Bonobo)에게서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보노보는 인간과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이지만, 침팬지보다 훨씬 평화적이다. 왜일까?
우선, 자원을 더 많이 공유한다.
먹이를 독점하지 않고 비교적 고르게 나누기 때문에 무리 내부 갈등이 줄어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으로 무척이나 개방적이다.
이들은 하루에도 열 번씩 암수간 교미하거나, 동성 간 성적 행동, 혹은 자위행위가 관찰되는데, 이는 성적 경쟁을 줄이고, 갈등 상황에서 긴장 완화 장치로 활용된다.
물론 인간에게 보노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폭력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보노보는 성적 긴장 완화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관찰되는 극단적 성 억압 문화는 남성 간 경쟁을 극단화시키고 폭력성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중동 지역이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물론 전쟁의 원인을 단일 요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면 성적 경쟁과 폭력성은 깊게 얽혀 있다.
전쟁의 본능을 부정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뿌리를 이해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더 효과적인 제어 장치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개인적 차원의 평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종일 일과 육아에 지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이념도, 장엄한 국경도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폭력을 줄이는 첫걸음은 따뜻한 말 한마디, 서로를 안아주는 작은 접촉에서 시작하는 건 아닐까?
인간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본능이 있다면, 우리를 서로에게 다시 연결시키는 본능도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