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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재앙인가 축복인가?

인구 감소의 역설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서른 살 영희 씨는 집 밖이 무섭다.

사회생활을 위해 겨우 밖을 나가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집에서 머무르려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스트레스도 있지만, 세상 자체가 무서운 느낌이 든다.


갈등은 격화되어 사람들 간, 나라 간 편을 갈라 싸운다.

로봇과 AI 자동화로 앞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지 의문이 든다.

범죄와 사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고, 월급은 거의 그대로인데 물가는 해가 갈수록 체감할 정도로 오른다. 기후위기로 해가 뜨거워지고 식량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무섭다.


연애는 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결혼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아이를 키우면 가난해지고, 내 삶은 망가져버리지 않을까?'

'편익 대비 비용이 너무 커.'

'과연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일까?'

'자녀를 어찌어찌 키워낸다고 해도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일까?'


영희 씨의 걱정은 단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왜일까.


부부 2명이 2.1명의 아이를 낳아야 인구가 유지되는데(영아사망, 성비불균형, 유전병 등 0.1명 여유 필요), 미국은 물론이고, 인도, 중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방글라데시 같은 인구 대국들이 모두 합계출생률 2.1명 미만에 접어들었다. 이대로 이어진다면 인구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이유 역시 영희 씨의 불안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는 대를 이어 생존해 나가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강력한 번식 본능을 역행할 정도로 출생률이 감소하고 있다.

물론 피임 기술의 발달도 원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 힘든 시대라는 감정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더욱 심각하다.



북미와 유럽의 선진국과 달리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선진국들의 인구감소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 나라는 모두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 여기에 자본주의가 결합되어 경쟁이 심각하고, 유교문화가 결합되어 개성과 자유보다 공동체 안에서의 사회적 체면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 2명이 낳는 합계출산율이 0.7명대 수준이다. 이 비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남녀 200명은 30년 뒤에는 70명만 낳게 되고, 그 70명은 다시 30년 뒤 22명만 낳는다. 3세대가 지나면 지나면 200명이었던 사람들의 3대손은 겨우 7명으로 줄어든다. 지방 소멸, 국가 소멸 위기라는 뉴스 기사가 수시로 보인다.


인구 감소는 이처럼 90 년, 100 년 뒤 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먼 미래에 뿐만 아니라 당장의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생산 인구 감소로 인한, 소비 위축과 그에 따른 기업 부진, 자산가격 하락이 문제가 된다. 또, 소득세 징수 감소로 인한 법인세와 재산세 부유세 징수 증가가 다시 경제 위축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90년 뒤 나라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우리의 후손들은 어떨까? 그들도 급격히 감소된 인구로 인해 큰 고통을 겪게 될까?



먼 미래의 후손들은 아마도 괜찮을 것 같다.


우선 쾌적할 것이다.

40년 전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의 모습을 찾아보자.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열반, 스무 반씩 있었고 공간이 부족해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등교하기까지 했다. 담임교사 한 명이 담당해야 했던 학생이 너무 많아 몇몇 학생은 한 학기는 지나야 겨우 얼굴과 이름을 익힌다.

그러나 오늘날 서울의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한 반에 스무 명 남짓 수업을 듣는다.

지하철도, 도심의 거리도, 클럽에서도, 혼잡과 경쟁은 줄어들고 마음의 여유는 넘쳐날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경제 규모가 같은 비율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이미 많은 산업 분야에서 사람을 고용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속도가 더 빠르게 느껴진다.

설령 나라의 경제규모가 다소 줄어든다고 해도, 사람의 행복을 굳이 경제규모로 따져보자면 국가 전체의 GDP는 별로 상관이 없다. 1인당 GDP가 중요하다. 인도의 총 GPD는 룩셈부르크의 40배이지만, 인도인들이 룩셈부르크인들보다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 없듯이 말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쉽게 외침을 당한다고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기우에 불과하다. 현대전에서 인구는 절대적 승패의 요소가 아닐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원이 많고 인구가 적은 풍요로운 세상이라면 갈등, 폭력, 전쟁 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적은 인구는 결정적으로 기후위기를 방어해 낼 수 있다.

적은 인구가 만들어내는 적은 이산화탄소는 지구 생태계를 복원하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국가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인구는 자연스럽게 다시 늘어날 것이다. 풍요로운 환경의 생명체들이 양적 번식 전략을 추구하듯이, 인간 역시 강력한 번식본능을 가진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생존 환경에서는 나 혼자 살아남기도 빠듯하지만,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라면 나 혼자보다는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편이 더 행복하다. 기왕이면 나의 유전자를 가진 핏줄과 함께 누린다면 더 좋을 것이다.

영희 씨의 후손도 그러할 것이다.


인구 감소로 미래의 국가 소멸이 걱정된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거짓말이다.

걱정되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숲 속의 동물들이 아니라, 미래의 후손이 아니라, 당장의 우리다.

생산인구 감소로 인해 필연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모두의 사회적 부담 증가와 저성장(또는 마이너스 성장)...

진짜 위기는 저출생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사회 제도가 아닐까?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면, 동식물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인간이 줄어들어야 우리가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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