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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아플 때까지

- 깊은 한숨을 몇 번이고 계속 쉬다가

by doctor flotte

단편적인 만남들이었고 A4 2장을 채울 만한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분에게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어디에 계시든 찾아가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분이었다.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이런 특별한 감정은 아마도 그분의 얼굴과 목소리 때문인 것 같다. 학회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면 그분은 이상하게도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그냥 웃기만 하셨다. 그러고는 인사처럼 하시는 말씀이 ‘박선생이 잘 되셔야 할텐데...’. 이 말씀을 하실 때 나를 쳐다보시던 눈빛과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그분의 말씀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별한 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회에서 으레 만나는 여러 선생님들 가운데 한 분이셨다. 그런데 마치 부모의 심정으로 내 일을 걱정해 주시는 것 같아 왜 나에게 이렇게 친절하신지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말도 안되는 비유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그분의 모습으로 잠시 내게 나타나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짧은 몇 번의 만남과 대화는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을 쉽게 움직였다.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생각해 보니 1년 정도 학회에서 만나 뵐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그분과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에 슬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하고 싶은데, 영원히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 못지않게 강렬한 것이었다. 진심으로 대화하고 싶은 단 한 사람을 잃은 것 같아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장례식장은 일부러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다녀왔다. 입관식을 하고 있었고 나는 바로 문밖에서 가족들의 울음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깊은 숨을 몇 번이나 계속 쉬다가 조용히 돌아온 것 같다.


살면서 어떤 일로 울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윤병렬 선생님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주변 선생님들께 연락해 그분이 어디에 봉안되셨는지 물었다. 여주 추모공원 봉안담에 봉안되셨다는 말을 듣고 어제 차로 다녀왔다. 날씨가 좋았다. 그분과 다시 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그분에게 가서 무얼 물어보고 그분은 또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실까, 나를 보면 또 예전처럼 그렇게 그 표정과 그 목소리로 얘기해 주시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그분이 계신 봉안담 앞에 섰고 한쪽에 비치된 압축기를 이용해 봉안담을 열었다. 봉안담 안쪽에 있는 그분의 사진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다리가 아플 때까지 서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바닥에 앉았다. 마음이 정리되고 추모공원 옆 시끄러운 공장소리가 더 신경쓰일 때쯤 자리를 일어섰다. 일부러 선생님께 이제 간다고 인사하지는 않았다. 고개 인사도 안 하고 버릇없이 획 돌아서 나와 버렸다. 가겠다고 인사를 하면 내가 그분을 떠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넓은 추모공원 평일 낮시간,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그분의 봉안담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실컷 말을 하다 오고 싶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분이 무슨 말을 하실지 생각이 될 것만 같았다. 어리광도 부리고 농담도 하고 신세 한탄도 하다 오려고 했다. 하지만 가족사진 뒷편 푸석푸석한 가루가 된 사람 앞에서는 아무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깊은 한숨을 몇 번이고 계속 쉬다가 돌아섰다. 차 문을 열었는데 여름처럼 덥다. 올 여름에는 모자를 쓰고 와야겠다. 그분도 모자를 즐겨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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