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어도 크기와 면적이라는 점에서는
보통 늦게 자는 편이다. 사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그냥 하루의 마지막에 주어진 이 조용한 시간이 아까워서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래도 내일 출근해야 하니 자러 간다. 현관문 단속과 전기 콘센트, 가스 밸브, 창문 등을 확인하고 화장실에 간 다음 조용한 거실에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불을 끈다. 갑자기 불을 껐으니 모든 게 너무 깜깜하다. 그래도 익숙한 방이니 조심스럽게 더듬어 가며 침대로 간다. 자고 있는 아내를 방해할까 봐 약간 떨어진 침대 구석에 소리없이 눕는다. 그러고 나서 하루의 마지막 한숨을 크게 쉬고 잠을 청한다. 잠이 잘 안 오면 나는 오른쪽으로도 누워본다. 한쪽 귀를 깊숙이 베개에 파묻으면 왠지 더 아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잘 때 내게 필요한 공간이 이만큼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루를 마감하고 이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이만큼이면 되는 것이었다. 내 인생 1/4정도는 실제로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이정도의 작은 공간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내 하루에서 실제로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소파에 앉는다. 그렇게 잠에서 서서히 깬다. 내 엉덩이가 닿는 소파의 작은 한 면적. 그러고 나서 화장실에 간다. 변기에 앉는다. 그래, 변기도 내 삶에서 실제로 필요한 면적이다. 그러고 나서 출근하기 위해 운전을 한다. 차의 운전석 작은 자리. 일터에 도착해 내 책상에 앉는다. 책상 앞 의자 한 개. 점심 먹을 때 앉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의자. 그리고 다시 내 사무실 의자. 퇴근길 운전석. 집에 와서 아침의 그 소파. 저녁 식사 식탁 의자. 내 방 책상 의자. 화장실 변기. 그리고 다시 조용히 들어가 눕는 침대의 구석진 한 공간. 하루를 살기 위해 실제로 내 몸이 기대야 하는 공간들을 다 합쳐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마 작은 방 하나 정도의 면적이 아닐까. 내 일상에서 꼭 필요한 앉거나 기대거나 누울 수 있는 것들을 다 합쳐도 말이다. 스무 살 때도 그랬을 것이고, 오십, 육십이 되어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하루에 꼭 필요한 면적, 인간이 하루 동안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면적은 작은 방 하나 정도일 뿐이다. ‘내 하루가 거처하는 공간은 실제로는 생각보다 좁다.’
작은 방 하나를 겨우 채울 뿐인 얼마 안 되는 공간에 붙어 사는 삶이었다. 매일 그 작은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오차는 있겠지만 그 정도의 공간이면 실제로는 충분했던 것이다. 매일 묻고 답을 찾아가는 내 삶의 크기가 작은 물리적인 공간에 잘 갇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삶이라는 것이 별 볼 일 없다는 초보적인 반성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이 붙었다 떨어지는 그 정도의 물리적인 면적이란 것이 있을 테고 그 물리적인 크기에 맞추어 생각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중이다. 되는대로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물리적인 크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긍정하는 삶의 태도란 또 어떤 것일까 생각하는 중이다. 완전히 물리적인 크기에 내 생각을 한정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사실에 바짝 붙어 생각하는 것이 내 삶에 또 하나의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 ‘물리적’이라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니, 나는 의식적으로 겸손해질 필요도 자만할 필요도 없다. 다만 정신을 집중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도 요구할 수도 없는 삶'이라는 이 사실을 관찰하는 것이다.
크기가 없는 쓸데없는 생각들과 허영, 욕심은 자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는 것이 아닐까. 없는 걸 자꾸 자제하려고 하니 스트레스만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우선 삶의 크기와 부피를 재고, 그러고 나서 생각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도 내 남은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크기와 면적이라는 점에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