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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시간

- 더 멀리 더 멀리서 내 삶을 구경하듯

by doctor flotte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나 역시 생각하게 되고, 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잊고 살게 되는 것이 있다. 실은 조금은 이해하는데,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인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덕’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덕’이라는 말을 굳이 지금 사전으로 찾아볼 것도 없다.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도 우리는 ‘덕을 쌓는다’는 말 정도는 알고 있다. 일단은 그 정도만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할 일은 사전에 있는 정확한 뜻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쌓아서 도달해야 할 어떤 좋은 상태’가 있다는 것에 대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는 일이다. 사전은 때로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말들을 몇 단어로 무리하게 정리해 놓거나,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다. 사전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찾아보면 대충은 알게 되겠지만 일부러 천천히 시간을 끌고 내가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게 없으면 우리는 덕이라는 것을 이해할 좋은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고 알아냈다고 해도 다 말해야 하는 것도, 다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덕’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 말은 아마도 내 몸 속으로 집어넣어 나를 움직이게 해야 하는 것이지 서로 그저 주고받는 그런 지식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더하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은 많은 것들을 모아야겠지만, 모아놓은 것을 모두 쌓아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둥근 것이든, 네모난 것이든 쌓아 올리는 크기와 높이는 다르겠지만 모두 똑같은 것이 하나 있다. 쌓아 올린다는 것은 그러면서 어떤 것은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고, 욕심을 내어 높이 쌓아 놓고 만족하는 만큼 나는 스스로 더 이상 쌓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무엇을 쌓아 올린다는 것은 이렇게나 단순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을 사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성급히 원하고 만족하고 하는 것 같다. 성급히 후회하고 절망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몰래 기대하기도 하고 혼자 좋아하기도 하고 무언가 안되었을 때 누군가를 시기하기도 하고 앙심을 품기도 하고, 어리석었다며 값싼 반성을 하기도 한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피할 길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만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좋은 기억, 좋은 일, 나쁜 기억, 나쁜 일 어떤 것들은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점점 쌓여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원했던 일들이 위로 잘 쌓여지고 있는지 이미 굴러떨어져 버렸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원했던 일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뒤섞여 어떤 것들은 굴러떨어지고 어떤 것들은 잘 자리 잡고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도무지 잘 쌓아가고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이렇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기대하고 후회하고 소리 지르고 싸우고 울고 하자. 다 괜찮다. 다만 내 삶이 바로 그런 삐죽삐죽한 모양을 가지고 있고, 바로 그렇게 졸졸졸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나와 상관없는 구경거리처럼 멀리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기도 해 보자. 그렇다고 해서 무얼 더 생각하고 깨닫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모양을 감상할 기회는 될 것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미술관에 가서 그림에 푹 빠져 있을 때처럼 말이다.


아직도 좋은 삶이 무엇인지, 잘 가고는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가고 있다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 질 것이다. 내가 어딘가로 흘러가듯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만 안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더 멀리 더 멀리서 내 삶을 구경하듯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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