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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소리 그리고 편안함

- 삶의 운동

by doctor flotte

신발을 머리에 베고 바다에 누웠다. 동해 바닷가, 크고 깊고 파란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종종 온다. 실컷 바다를 보고 핸드폰으로 동영상도 찍었다. 이제 모래사장에 누웠다. 눈을 감는다.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날씨가 좋아 모래는 따뜻하다. 바닷소리 그리고 편안함.


나는 왜 바다에 오고 싶었던 것일까? 왜 푸른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차로 4시간을 달려야 올 수 있는 이곳, 다음날 일정이 있어 잠만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반대 방향으로 또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한다. 지금 나는 조용하고 편안하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지만 왜 하필 여기 바닷가에서 조용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있고 싶었던 것일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끝’, 끝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파란 바다, 내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 바다를 찾은 사람들은 서거나 앉아서 같은 방향으로 바다를 본다. 바다는 색과 소리와 크기로 나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원했던 것은 어쩌면 그런 모습들이 아니라, 더 이상 내가 어쩔 수 없는 끝에 와 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다 내려놓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는 듯이 색과 소리와 바람으로 아름답게 나를 위로해 주는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기분 좋은 무력감이다. 그런 끝이 그리워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럼 왜 또 나는 그런 끝이 그리웠던 것일까? 하고 싶은 일, 오르고 싶은 곳도 많고 그런 것들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 왜 그 모든 것들이 멈추게 되는 ‘끝’이 필요했던 것일까? 무서운 생각이지만 그냥 다 끝내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끝에 부딪혀 다 부서지고 무너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바다는 그렇게 해도 나쁘지 않다고 내 편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목표와 목적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만 끝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기분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이제 철학자가 나설 차례다. 새벽 청소부처럼 철학자는 버려진 생각들을 모아간다.


많이 피곤할 때 그리고 생각보다 충격적인 절망감에 빠졌을 때의 공통점이 있다. 우선 다리에 힘이 없고 생각이 멈춰버린다. 사람처럼 생겼고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순간 나는 옷을 입고 있는 살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살덩이는 그냥 물체가 아니라 운동이고 움직임이다. 살아가고 있는 진짜 삶의 움직임이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운동과 움직임만 남아 있는 내 삶의 진짜 모습이다. 아무렇지 않게 심장이 뛰고 있고, 숨을 쉬고 있다. 허리에 힘을 주고 있어 아직은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은 멈춰버렸다. 나는 그냥 여기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삶의 운동’이라고 부르겠다.


움직임과 운동은 방향을 가진다. 무거운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고, 식물은 제 모양대로 자라난다. 거미의 운동은 멋진 거미줄을 치는 것이다. 방향이 없는 운동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럼 우리, 우리의 운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운동은 끝을 향해 간다. 다 그런게 아닌 것 같다. 우리 생각하는 인간만이 끝을 향하는 운동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끝이 삶이라는 운동에서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우리, 우리 삶의 운동은 끝이라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너무 피곤할 때, 예상은 했지만 충격이 너무 클 때 우리에게 이 사실이 훤히 나타난다. 삶은 그저 운동일 뿐이고 끝을 향해서만 나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 그런데 바다는 그게 전부라고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파란색과 부서지는 소리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바람으로.


동해바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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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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