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좋은 삶을
갑자기 어떤 좋은 생각과 느낌이 들어 열심히 글을 썼다. 순간 집중하고 노력한 탓에 나름대로 좋은 글이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일종의 도취감에 글을 쓰고 나면 꼭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너무 한 쪽에 빠져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쉽게 글을 써 버린 것은 아닌지. 경솔했나, 이제라도 지울까, 고쳐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제는 글을 고치는 것조차도 주저하게 된다. 고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싫더라도 이미 쓰여진 글이니 놔두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내 글을 주워 담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기분에 흠뻑 취해 쓰여진 글은 거의 항상 이렇다. 다음 날 보면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그 기분 속에 있지 않으니 내 것처럼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것도 예전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을 쓸 때에는 기분이란 것이 중요한데 음악은 나를 이리저리 마음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음악에 취해 방향 없이 흘러가는 글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다가 음악을 꺼 버리면 글도 같이 중단된 것 같아서 계속 이어쓰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고 하지만 타고난 성격 탓인지 아직도 이런 고민들에 빠질 때가 있다. 내 글이니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지울 수도 고칠 수도 없다. 맨정신으로 100살을 살면 좋은 글이 나올까.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내가 준비운동을 하고 내가 물 속으로 들어간다. 큰 숨을 참고 팔을 쭈욱 뻗으며 수영을 시작한다. 물 속으로 가라앉는 듯하다가 몸이 둥실 뜰 때 몸을 비틀어 코와 입을 내밀고 숨을 쉰다. 다시 물 속으로 살짝 가라앉는 듯하다가 몸이 뜰 때가 되면 물장구를 치면서 숨 쉴 수 있는 타이밍을 만든다. 그렇게 물이 서서히 익숙해 지면 나는 편안하게 수영을 한다. 나는 배형도 좋아한다. 나뭇잎처럼 내 몸이 물 위에 떠 있고 가만히 몸을 맡긴 만큼 편안히 숨을 쉴 수도 있고, 그렇게 위를 보며 떠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둥실 떠서 편하게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아까 그 고민을 다시 시작해 보자. 기분에 취해 글을 쓴다면 그건 내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든 좋은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그럼 사실은 아주 간단할 수 있다. 좋은 글이란, 내가 글을 쓸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좋은 글을 쓰려 노력을 하고 그때 글이 스스로 좋은 글이 될지 안 될지 결정하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이 스스로 꿈틀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집중해서 글을 쓸 때 그놈이 어디에선가 나타나 스스로 좋은 글이 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글이 나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팔을 젓고 내가 움직이면서 수영은 시작된다. 그리고 수영을 하는 동안 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평온함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평온함은 더 이상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되는 대로 글을 써도 된다거나 어떤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마 내가 살아온 날들이 내가 글을 쓸 때 나도 모르게 개입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또박또박 글을 쓴다지만 내 글씨와 내 표현에는 그리고 단어 사이의 자연스러운 호흡에는 어쩌면 내가 기억하거나 책임질 수 없는 수많은 내 삶의 날들이 제멋대로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유치한 생각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 내가 살아온 날들이 필요한 만큼 목소리를 낼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나와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재미있게도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좋은 삶을 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