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작'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글을 쓸 때 내가 된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좋다. 그런데 쉽지 않다. 우선 무엇을 써야 할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하는데, 그건 내가 찾는다기보다 운 좋게 걸려드는 것이어서 안테나를 켜고 기다려야 한다. 억지로 찾다 보면 잘 소화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래서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루를 관찰해야 한다. 하지만 소재를 찾는 일은 어제도 오늘도 실패한다.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어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분량을 쓰기에는 주제가 좀 약한 것 같다. 메모는 해 두었지만 실상 접어두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오늘도 못 찾고 내일도 못 찾는다. 그다음 날도 보나마나다. 그랬던 적이 많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시간만 잘 흘러가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해야 했던 일이나 미리 할 걸 그랬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좋은 소재를 찾는 일은 이렇게 미뤄지고 글을 쓰는 일 역시 같이 미뤄진다. 아무것도 못 했고 시간만 낭비했다. 바보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정기투고하는 것도 아니고 청탁을 받은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자유롭게 무엇이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글, 좋은 소재라는 것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썼던 것과는 다른 더 참신한 소재를 찾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쓰고 싶어 한다. 다 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글을 쓰기도 전에 걱정한다. 슬쩍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이게 내가 원했던 자유롭게 글을 쓴다는 것이었을까.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마음대로 글을 쓰라고 했더니 다른 사람 눈치나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글을 쓰려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소재를 찾으려 하고 그들의 칭찬으로 나를 칭찬하려 한다. 어쩌면 다 오염된 내 모습 중에 그나마 남아있는 마지막 내 모습까지 바보 같이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이유는 정말 없다. 우리, 자유롭게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내 삶의 모습과 순간 중에 지금 내가 가려내고 있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글의 소재가 못 되는 하찮고 무의미한 것들이 있을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멍하게 기다리는 내 모습, 주말 아침마다 빵 사러 걸어가는 길, 공영주차장 노란 조끼 아저씨들, 내가 가기만 해도 알아서 그냥 참치김밥을 싸 주시는 김밥천국 아줌마, 거실 TV 옆에 있어 자꾸 화면을 가리는 빨래건조대, 아이와 함께 쓰는 작은 내 방. 정리 안 된 내 서랍, 아침부터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가 혼나는 내 아이,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공부는커녕 당근마켓에서 아스카소 커피머신이 싸게 나온 것이 없는지 찾고 있는 내 모습. 나는 왜 이런 것들을 하찮고 글을 쓰기에는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이런 것들도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좋은 소재를 찾아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아름다운 글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글'도 정말 그런 글을 원할까? 좋은 소재, 별로인 소재가 아니라 글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을 헤아리면 안 되는 것일까? 내가 쓰지만 글이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글은 글의 소재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글은 우리처럼 무언가를 차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상한 말이 아니다. 옛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 그랬다.
‘습작’, 누구한테 보여줄 글이 아니기 때문에 소재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실컷 쓰고 버릴 글이니 누구 눈치 볼 것도 없고, 예쁘게 꾸밀 필요도 없다. 내가 글을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마음대로 써 보라고 시켜보는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고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