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해외로 가족여행 가는 거 괜찮은 것 같아."
"그러게요. 저도 그 생각 했는데. 저는 아이와 단둘이 가는 여행하려고요."
옆자리 차장님이 일 년에 한번은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에 질세라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지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삼십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말로 자존심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특히 누군가 나보다 더 잘 사는 것처럼 느껴지면 더욱 그랬다. 말 한마디 한마디 지지 않으려고 에너지를 쏟았다. 상대방은 별 의미없이 하는 말이었다. 그저 본인의 희망사항을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즉석에서 이미 해외여행을 계획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내뱉은 말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그 다음 해에 나는 큰아이를 데리고 단둘이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큰 아이가 여섯 살이었다. 내가 직장 다니면서 일 년에 한번 아이와 해외여행 가는 것쯤이야. 그 정도 보상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교육적인 목적이 있다며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와 8박 9일의 일본 여행을 떠났다.
가방을 뒤로 매고 옆으로 매고 캐리어를 양손에 들었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를 잡으러 다니느라 온몸에 진이 빠졌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밖은 어둑해져 있었다. 이미 아이가 여섯 살이나 됐기 때문에 난 따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일본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무조건 사 먹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가 주택가다 보니 근처에 갈만한 식당이 없었다. 편의점은 꽤 거리가 있었고 길도 건너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와 여행을 하면서 그 흔한 햇반이나 라면조차 비상식량으로 챙기지 않았던 것을... 다행히 주인분이 위에 층에서 상주하고 있던 숙소라 사정을 얘기하고 저녁을 얻어먹었다.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과 사진을 보며 아이와 단둘의 여행을 계획했다. 뭔가 있어 보이고, 좋은 엄마처럼 보이기도 했다. 즐거워 보였고, 로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내가 올린 글과 사진을 내가 다시 봐도 정말 즐거워 보인다. 일본가서 파워레인저도 사고, 홈스테이에서 외국인들과도 지내봤다. 놀이동산도 가고 사탕공장도 가고, 동물원도 갔다.
그 시간들 중 반은 울고, 드러눕고, 땡깡부렸다. 심지어 전철을 이용해서 동물원을 갔다가 아이가 잠드는 바람에 전철역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여섯 살의 남자아이는 더 이상 내가 업고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여차저차 숙소로 돌아왔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핑 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에서 돌아왔다. 힘들긴 했지만 나름 즐거웠고 큰 사고가 없어서 너무나 감사한 귀국이었다. 8박 9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온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움직여지질 않았다. 체력을 너무 많이 소진해서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모르겠다. 감기나 몸살 같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축축 처졌다. 아이가 나를 부르면 짜증이 났다. 죄 없는 아이에게 괜한 보상심리도 들었다. '너랑 여행 가느라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아이는 여행을 가자고 한 적이 없었고, 여행 가서도 내가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돈 내고 사 먹는 매끼 밥은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는 흥분해서인지 잘 먹지를 않았다. 나는 내가 가고 싶어서 여행을 갔고, 스케줄을 짰고(아이를 위한답시고), 초밥 같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갖게 되는 보상심리는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부자처럼 보이려고 하지 말고, 진짜 부자가 돼라."
나는 부자처럼 보이려는 삶을 살았다. 일 년에 한번 해외여행쯤은 별거 아닌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비싼 음식점에 가서 내 돈을 쓰고 사람들과 오묘한 신경전을 벌이느라 내 에너지를 썼다. 이제는 부자처럼 보이는 삶을 살지 않는다. 진짜 부자가 되기 위해 마음이 편한 소비를 한다. 오늘도 난 진짜 부자가 되기 위해 마음이 편한 소비를 했다. 내일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