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드디어 연말정산 간소화 자료 뜨는 날이다.
연말정산을 빨리한다고 환급받는 세액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순간이 기다려지는지 모르겠다. 접속자가 휘몰아치기 전에 홈택스에 로그인을 해야 한다. 동시 접속자가 몰리기 시작하면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빨리 치고 빠지는 게 관건이었다.
잽싸게 홈택스에 로그인을 하고 기계적으로 간소화 자료를 다운로드한다. 부양가족들은 전년도와 동일하기 때문에 관련 항목을 클리하고 다운로드하기를 하면 간단하다.
요즘 급여를 외주 주지 않고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회사가 있겠느냐 하겠지만, 우리 회사가 그런 회사 중 하나였다. 내가 이 회사에 합류했을 때 급여를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는게 안타까웠다. 심지어 그게 나의 업무 중 하나였다.
급여는 은근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고, 가산세의 리스크도 있다. 잘해야 본전이고 아차 하면 바로 가산세로 이어진다. 직원이 몇 명 안 돼서 연말정산만 외주를 주기도 애매했다. 결국 연말정산도 내가 직접 해야 했다. 입사해서 멋모를 때 급여는 외주를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얘기했어야 했는데, 내 전임자가 했던 일을 내가 입사하자마자 외주를 주네 마네 하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말정산에서 사장님 자녀 학원비 누락, 세금 신고 누락, 고용보험 이중 차감, 간이지급명세서 신고 누락, 연말정산 지급명세서 신고 누락 등 몇 번의 가산세를 물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는데 가산세까지 몇 번 맞고 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급여 외주를 주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일하기 싫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그런데 내가 급여 업무를 하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내가 직접 내 연말정산을 가장 빨리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간소화 자료를 다운로드하자마자 연말정산 프로그램을 열었다. 요즘은 편리한 연말정산 이런 게 잘 되어있는데 우리 회사는 직원이 몇 명 안 돼서 나는 그냥 옛날 방식으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연말정산 자료들을 하나하나 입력했다. 보장성보험, 의료비, 신용카드, 현금 영수증, 기부금 등, 그리고 IRP에 불입한 대망의 연금 납입분.
IRP 계좌를 9월에 개설해서 10만 원씩 4개월, 40만 원을 불입했다. 총 급여가 5,500만 원 이하인 경우라면 16.5%를 공제받을 수 있지만, 나의 경우는 5,500만 원 초과 구간에 해당되어 40만 원의 13.2%를 공제받게 됐다.
연말정산 세금은 소득세와 지방소득세로 나누어져 있다. 결정세액은 소득세이고 소득세의 10%가 지방소득세이다. 즉 공제율 13.2%는 소득세 12%와 지방소득세 1.2%가 합쳐진 것이다. 40만 원의 12%인 48,000원에 1.2%인 4,800원, 총 52,800원이 내가 <근로자 퇴직급여보장 법> 항목으로 공제받은 첫 환급금이었다. 기분이 짜릿했다. 다음 해엔 더 많이 불입하고 더 많이 환급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원천징수영수증에서 세액공제 항목을 보면 '근로자 퇴직급여보장 법'과 '연금저축'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내가 연말정산 담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도 이 둘의 차이를 몰랐다. 내가 IRP로 첫 환급금을 받았던 2017년에 연금계좌로 세액공제를 받은 사람은 나 한 명이었다. 그리고 3년 뒤 한 사람이 추가됐고 그전까지 3년 동안 내가 유일한 환급대상자였다.
개인연금으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걸 몰라서 가입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계좌를 개설하고 얼마라도 불입을 해보자. 단 몇만 원이라도 실제로 환급을 받아보면 그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번 받은 환급금은 중독성이 있다. 더 많이 받고 싶고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불입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더 많이 환급받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IRP로 첫 연말정산 세액공제를 받았던 그 날이 시작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한도를 꽉꽉 채워서 세액공제를 받게 되는 날이 오게 될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