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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Aug 19. 2023

상실의 고통(세 번째 이야기)

엄마와 나는 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더 이상 그는 오지 않는다.'

엄마 이야기

저만치 기차가 출발하려고 한다.

-차로는 15분, 4킬로 거리-

전에는 신경도 안 썼던 소리가 출발하기 전부터 나의 가슴을 죄여오고 닫힌 귀를 누가

억지로 열기라도 하듯이 생생하게 들린다.

녹음기에 찬송가를 켠다.


'이상하다. 왜 묻히지 않는 걸까?'

'절대 음감도 아닌데 기차소리와 찬송가 소리가 각자의 음색을 따로 내고 있을까?'


 눈물이 흐른다. 아무도 이 애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리고 찬송가에 묻혀 오늘도 피곤한 내 눈꺼풀은 감긴다.


오늘도 그 사람은 오지 않는다.

해가 져도 밤이 돼도 설거지를 하고 자리에 누워도 그는 오지 않는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딸 넷, 적막감과 그리움이 사무치게 밀려온다.

다시 찬송가를 켜고 기차소리가 묻히기만을 기도한다.



30년을 엄마는 이렇게 한 동네서 밤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고통을 날마다 겪으며 살았더랬다.

아빠의 기차 사고 후 엄마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다.

그런데 그 트라우마를 나도 가지고 있다.

막상 기차를 타면 괜찮은데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 심장을 옥죄며 불안한 증상이 같이 온다.

남편을 잃고, 아빠를 잃게 되면 배우자와 딸은 이렇게 같은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다.

딸의 이야기

나는 기다렸다.

억울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일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두고 봐라 우리 아빠한테 일러줄 거야'


나는 기다렸다.

딸기우유를 들고 새벽시장 경매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빠를...


나는 기다렸다.

할머니가 교회를 나간다고  싸우는 할아버지를 말릴 수 있는 아빠를...


나는 기다렸다.

일하고 오면서 산딸기를 따와 씻어서 입에 넣어 주던 아빠를...


그런데 아빠는 오지 않았다. 전설의 고향처럼 무덤이 갈라져서 아빠가 오기를 기다렸고 밤마다 현실이 꿈이길 기도했다.

그런데 꿈에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없는 것은 현실이었다.


그렇게 40년이 지났고

10살 어렸던 나는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남편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진짜 엄마처럼 될까 봐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될까 봐 가슴이 조여 온다.

가슴이 주먹만 한 돌멩이가 막고 있는 듯 쉰소리가 나고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동네 기찻길이 땅으로 들어갔다. KTX의 발전은 우리 엄마를 살게 해 줬다.


남편을 잃어본 적이 없는 나는 엄마처럼 될까 봐 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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