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든타임 Aug 08. 2024

남편과 내가 다른 건 당연해!

엄마신드롬에서 벗어나기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옆자리를 보니 남편이 없다. 5시 30분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계단 문을 열고 외쳤다.

"여보!"...  남편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내 몸은 벌써 계단을 밟으며 내려가고 있다.

하나둘셋넷.... 열아홉.  숨을 내리쉬며 여유롭게 슬리퍼를 신고 교회 한편 음향실 쪽으로 향했다. 남편이 늘 앉아서 사무를 보는 곳이다.


나: "어제 얘기했던 협회자료들은 다 수정보완 했어?"  

남편:..........

묵묵부답이다.


예전 같으면 왜 아직도 일을 진행하지 않았느냐고 야단법석을 칠 텐데 오늘은 조근조근히 말을 건넸다.

나와 남편은 늘 소통이 되지 않아 대화를 할 때면 언제나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결혼 24년 차에 이르게 되니 비로소 나와 남편의 사고의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천명을 넘어서니 그럴 수도 있겠다.  

지난번 아버님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을 때에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큰 아주버님 및 작은 서방님이 함께 연합하여 장례를 치르는 과정들을 보면서 새삼스레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결혼과 두 아이를 낳자 마자 해외에 나가 살았으니 시댁과 자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4박5일간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동고동락을 하였다.


이 짧으면 짧고 길면 긴 48시간 이상의 시간을 시댁식구들과 함께 보내면서 나는 결혼생활에서 빈번히 충돌하며 부딪히는 남편을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얻었다.

사건은 그렇다.

손님을 맞이하며 상주인 형제들 및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주들이 상복을 입고 마주하며 인사한다.

각자가 자신들의 문상객들을 접대하며 식사를 나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고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아무런 분쟁 없이 알아서 잘 움직였다.

누가 리더이며 누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걸까?  

형제자매들 그리고 자녀들을 합하면 시어머니를 포함하여 모두 17 식구이다.

큰 아주버님께서 주관하시고 그 옆에서 묵묵히 따라 움직이는 형제자매들의 우애와 신뢰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우리 친정 집이었다면 어떠했을까? 1남 3녀 중 셋째인 나는 늘 머리가 되려고 했다.

어떤 일이든 결론을 내야 했고 그 결론대로 따라 움직여야만 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결론을 내주어야만 한다.  이게 나와 남편이 다른 점이다.   

남편은 늘 유유한 성향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하든 아내인 내 의견을 존중해 왔다.

남편의 지혜였다. 그리고 그의 성장환경이 정반대의 가정환경에서 자란 나와 부부생활을 가능케 한 긍정의 에너지였다.  

살아가면서 나는 우유부단한 남편의 성향을 챌린지 해야만 했고 이로 인하여 나의 강한 성향은 더욱 강해져만 갔다.  


나의 목소리는 늘 크다. 화통을 삶아 먹었거나 센 아줌마가 일상이 되었다. 남편의 답답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늘 여겨왔다. 그런데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어릴 적 성장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나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릴 적 우리 엄마다. 네 남매를 키우시다 보니 힘에 버거우셨을까?

완벽하신 엄마였기에 자녀들에게 언제나 엄하셨다.

엄마 뜻에 맞지 않을 때면 늘 큰 소리로 훈계하셨다.

지금은 80세가 되신 엄마이다.  


내 기억 속에 엄마는 언성을 크게 내셨고 나는 늘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딸이었다.

엄마의 칭찬을 받기 위해 언제나 나는 엄마 앞에서 야단맞지 않으려고 마음을 조리며 살았던 것 같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엄마가 원하시는 딸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언제나 나는 엄마신드롬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곤 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정리정돈을 가르치셨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집안에서 가족들 누구도 쉼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 집 환경은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어머니는 우리 엄마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지셨다.

정리정돈이 우선이기보다 자녀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쉬도록 허락한다.

정리정돈의 몫은 오직 어머니가 맡아서 해오셨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정리정돈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나의 가사분담에서 빚어지는 문제는 지속적인 정리정돈의 생활을 유지하며 사느냐 아니면 몰았다가 날을 잡아서 한 번에 하느냐였다.

우리는 이 때문에 다툼이 빈번했다.

 

오늘 아침 계단을 밟으며 1층에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면서 문득 깨닫게 된 나와 남편이 다른 이유이다.

일 처리 문제에 있어서 나와 남편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에게 길들여져 있는 나의 내면적 정서와 시어머니에게 길들여져 있는 남편의 내면적 정서가 언제나 늘 부딪혔던 이유이다.


이제야 문제 해결의 고리를 찾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늘 원망했다.

애증이다.

엄마의 맘에 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유초년기와 청소년기였다.

나의 내면 한켠에서 늘 내가 꿈꾸는 어머니상을 언제나 동경해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참, 내가 그랬었지.

 

동네 친구 영이 엄마가 외동딸인 영이를 위해서 손수 뜨개질한 옷들을 보며 얼마나 많이 부러워 했던가?

영이가 입은 겨울 망토 그리고 조끼 심지어는 스웨터와 장갑, 모자까지 나도 입고 싶다며 엄마를 졸라되었던 때를 흐릿하게 기억한다.

  

논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집안청소를 해야 하시고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엄마였다.

한번은 언제 뜨개질 할 시간이 있으셨던지 나에게 목도리를 떠서 건내주시던 어느 겨울을 기억한다.  

사실 나는 영이처럼 노랑 망토를 가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때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나는 항상 엄마에게서 무언가를 원했던것 같다.

그래서일까?

 영이 엄마처럼 영이에게 따스한 옷을 만들어주는 가상의 엄마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 가정을 이루고 있는 나에게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다.


언제나 정리정돈 된 가정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낸 내가 결혼을 하고 난 후 동일한 삶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가?


나의 어린시절 보고 자라온 삶의 패턴 그대로 남편에게 고스란히 전수하였고  남편은 이십여 년간 수동적으로 내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서 수도 없이 듣고 자랐던 "잔소리"를 어느덧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아가면서 나의 우선순위 중 첫번째라고 하는 정리정돈의 삶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문제는 나의 삶에 집착이 되고 충돌의 요인이 될 때가 많다는 데 있다.  

나는 언제나 남편에게 "왜" 능동적으로 정리정돈을 하지 못하느냐고 불만을 쏟았고 남편은 24년간 묵묵히 나의 요구에 따랐다.


나:  지나다니면서  떨어져 있는 수건이 눈에 안 보여요? 일어난 후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왜 시켜야지만 하나요? 나도 지쳐가네요..   

남편: 눈에 안 띄어. 해야 할 일 있으면 이야기해. 내가 할게.

나:  가정일은 가족모두의 몫이에요.

평소에 정리정돈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언제나 깨끗한 집안을 유지하게 되고 한꺼번에 몰아서 힘들게 청소할 필요가 없어요.

남편:........

묵묵부답이다.


50대 중반인 우리 부부다.

나는 내 안에 우리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늘 내가 꿈꾸는 이상적 엄마를 동경해왔다.

결혼 후 시어머니를 보고 신혼초에 시어머니를 매우 존경해 왔다.

나의 이상적인 어머니상이었다.

그러기에 남편의 성장배경이 부러웠다.


막상 어른이 되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보니 역지사지였다.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다 해 줄 수 있는 시어머니손 안에서 자란 남편이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던 성장배경이 가정을 꾸리며 살아보니 오히려 큰 재산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가정과 일터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의 결과물은 나고 시어머니의 결과물은 남편이 아니던가?

나는 늘  '착각'속에서 가끔은 거드름을 피우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집안 구석구석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다.

어쩌면 엄마의 신드롬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날 나는 더욱 자유로워지겠지.

위로와 평화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있겠지.

나를 알게 되니 남편이 사랑스러워진다.

그만 싸우자.

남편과 내가 다른 건 당연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엄마 목소리 좀 낮추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