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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호암 미술관을 찾아서

by 나철여



어느새 사방이 가울낙엽이다. 겨울이 시작될 때마다 나를 점검한다.

어제는 용인에 있는 호암 미술관을 찾았다.

입구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작품들이 반기고 있다.

프랑스 태생의 여성작가 루이즈부르주아 작품 전시회다. 추상적인 작품 표현은 한참을 머물게 하고 걸음을 천천히 옮기게 되고 오래도록 남긴다.



그중에 파수꾼처럼 잘 견뎌준 나도 끼워 넣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나를 찾게 되는 시간들이다.


기본적인 상식이라도 미추 해보니 여성에 대한 신비감이다.

유방 (Mamelles) 중간중간 벽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리움 미술관으로 초대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신비감은 예술로 창작되고 승화시킨다.

경이롭다.


가장 먼저 만난 거대한 거미와 커다란 바퀴처럼 생긴 '단편들'이라는 작품이다.

드문드문 바코드를 찍어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들

이 작품 재료는 1980년대 미국에서 사용하던 전선 드럼통으로 정확히는 공업용 전화케이블이라고 한다. 여기서 원형 나무판 일곱 개, 그 앞에 놓인 하반신, 마치 마네킹이 누워있는 거 같아 멈칫했지만 시간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걸 나타냈다.

한편 ‘7’의 의미는 70대 초반이었던 당시 작가의 나이와 시간을 상징하고, 갈라진 나무의 결은 다양한 질곡의 터널을 지나는 인간 삶의 흔적을 암시한다고 했다. (몇 달 후면 나도 칠십...)


"나는 내 작품을 통해 내 감정을 해소한다.
예술은 내 공포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다."

독백같은 자막이 지나가고

"기억을 떠나서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
나는 기억으로 만든 사람이다.” — Louise Bourgeois

자막의 문장은 나에게 호소하고 있다.


작가가 힘든 시기를 피하지 않고 아픈 상처를 끄집어내 예술로 승화시킨 점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조금 닮아 있었고 힘이 되는 작품이다.


"뭘 쓰던 숨 쉴 구멍이다." ㅡ 나철여

인체의 일부, 내장, 탯줄, 혹은 감정의 덩어리를 상징하고,

분리불안, 출산의 기억, 자기의식의 왜곡을 표현하는 작품이 있다.


덧없고 영원한

이 두 단어를 저장하고

갤러리에 머무는 동안 해는 지기 시작했다.

희원으로 나갔다.


자연과 시간에서 느끼는 또 다른 나만의 작품들이다.

출구를 찾았다.

뭘 찍어도 작품이다...by. 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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