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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Mar 07. 2024

소리의 공백 속에서

주절거림

퇴근하는 길 매번 활자에 지친 눈을 가만히 내리감고는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피로감에 흠뻑 젖은 두 귀 와 두 눈에 휴식을 주기 위해 그저 연결되지 않은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잠시간은 그 상태를 유지하며 고요히 있다 슬며시 눈을 뜨고는 여러 소음들이 차단된 조용한 소리의 공백 속에서 사람들의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입을 바라본다. 여러 모양의 입모양들이 여기저기서 움직이기 바쁘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툭 하고 던져 무심히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신발코를 멍하니 바라본다. 해져서 너덜거리는 신발코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 옆에서 반짝반짝 윤을 내는 구두의 앞코를 바라본다.


그렇게 반짝거리는 구두의 앞코를 가진 남자는 금방 그곳을 떠나버린다. 그럼 그가 내린 자리를 또 다른 깔끔하게 정돈된 목덜미를 가진 남자가 차지한다. 그 남자의 희고 깨끗한 목덜미를 잠시간 내려보다가 그 옆에 덥수룩하게 머리가 덮인 다른 남자의 목덜미를 바라본다. 시선을 위로 올리면 시끄러운 지하철 안에서 홀로 집중을 한 채 책을 읽어 내려가는 여자를 볼 수가 있다. 그럼 난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몰래 힐끔힐끔 쳐다보며 그녀의 시선에 따라 나도 조심스레 그녀와 같은 속도로 글자들을 읽어 내려간다. 그 책을 읽고 있는 여자의 옆에는 서로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녀 한쌍이 있다. 그들의 서로를 향한 따스한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어느 순간 '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눈빛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남몰래 깨닫게 된다. 그것에 '한 때는 나 또한 저런 눈빛을 가졌던 것일까 ‘ 하는 조금의 궁금증이 생겨난다.


가만히 서서 그 투명한 소리가 없는 풍경들을 시선의 흐름에 따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점차 지쳐있던 정신과 육체가 어느샌가 회복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매일 퇴근과 함께 내 세상을 채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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