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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TJ Apr 29. 2024

고객의 입장에서

조지 헤로드 (Jorge Heraud)는 페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미국으로 건너와 스탠퍼드에서 전기공학과 산업공학 석사를 받고 이후 산업 기술 회사 트림블에서 15년을 일했다. 주로 정밀농업 부문에서 경력을 쌓으며 관련 분야 회사들의 인수합병을 주도하는 높은 위치로 승진하기까지 했다. 자연스럽게 헤로드는 인수한 회사와 창업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비즈니스'에 대해서 좀 더 깊이 공부해 보기로 했다. 당시 40살이 되던 때였다.


스탠퍼드 MBA에 진학하면서 헤로드는 로봇공학과 머신러닝을 전공하고 있던 26살의 박사과정 학생인 리 레던(Lee Redden)을 만난다. 리 레던은 네브래스카 농가 출신으로 농업에 대해 두 사람은 서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둘은 머신러닝 등 첨단 기술을 농업 분야에 적용해서 새로운 "사업"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미국의 실험실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아이코어(I-Corps)에 선정되어 스탠퍼드 대학의 유명한 창업 강좌인 Lean Launch Pad 수업에 참가했다. 아이코어에 선정되면 5만 달러 (한화 약 6천만 원) 가량의 제품 개발비용을 보조받게 된다.


*참고: Lean Launch Pad는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의 Innovation Corps (I-Corps) 프로그램의 과정 중 하나이다. 유명한 창업자이자 창업 교육자인 스티브 블랭크가 주도하는 수업으로 매주 현장에 나가서 고객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면서 초기에 가졌던 사업적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뉴욕타임스,  리 레던 (맨 오른쪽), 조지 헤로드 (가운데)


처음 헤로드와 레던의 계획은 "자율주행 잔디깎이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팀 이름도 "자율깍이 (Autonomow)"로 지었다. 골프장, 운동장, 공원, 고속도로 등 약 5억 달러 시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객 인터뷰를 실시했다. 스탠퍼드 대학 잔디 관리자부터 골프장, 잔디 깎이 기계 딜러, 잔디 기계 고객 등 잔디와 관련된 고객 6명을 인터뷰했다.


한편으로 혹시 '잡초'와 관련된 시장도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Salinas Valley의 농장과 작은 유기농 농가 등 6명을 추가로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통해서 유기농 농장에서 잡초가 큰 골칫거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원가의 50~75%가 잡초 제거에 소요된다는 것이다. 1 에이커 (약 1,224평) 당 적게는 $250에서 많게는 $3,500의 비용이 드는 작업이었다. 유기농 농장에서 잡초 제거 작업은 일 년에 평균 1번에서 5번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율깍이 팀은 곧바로 시장을 세부적으로 조사했다. 유기농 농장의 전체 시장은 25억 달러 (약 30조 원)에 이르고 상추 농장과 같이 바로 목표로 잡을 수 있는 시장은 약 1억 5천만 달러 (약 2천억 원)이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리고 그 규모는 매 4년마다 2배씩 성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골프장과는 달리 해결책이 시급해 보였다.


헤로드와 레던은 처음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완전히 바꾸어 유기농 농장의 '잡초 제거'에 집중하기로 했다. 제초제 회사, 네브래스카의 유기농 농장 주 등 5명을 인터뷰하고 처음 인터뷰 했던 Salinas Valley의 두 유기농 농장을 직접 방문해서 작물과 잡초, 그리고 현재 잡초 제거 기계 등을 살펴보았다. 잡초를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찾아내서 없애는 것으로 기술적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컴퓨터 비전과 머신러닝을 공부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기술에 대해 준비했다.


당근로봇 프로토타입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자 데이터 수집과 시연을 위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농장의 이랑에 맞추어 철제 수레를 만들고 수레 위에 카메라와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덕지덕지 붙였다. 이름도 '당근로봇'이라 지었다.

잡초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자율주행'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작물과 잡초를 잘 구분하는 능력이다. 구분이 빠르고 정확히 되면 잡초만을 향해 제초제를 발사하면 된다. 이른바 'See & Spray" 보고 뿌린다는 것이다. 0.02초 만에 상추와 잡초를 구별해 내고 바로 잡초에 제초제를 도포하여 90% 비용을 절감해 낼 수 있게 했다.


성공적으로 프로토타이핑이 끝난 후, 자율깍이팀은 회사 이름을 "블루리버테크놀로지"로 정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제품은 판매 방식이 아닌 대여 방식으로 접근했다. 물론 이를 위해 여러 고객층을 인터뷰했고, 여러 차례의 계산을 해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블루리버테크놀로지 See & Spracy

사업이 시작되자 투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2012년 9월, 유명 벤처캐피털 회사인 코슬라벤처스와 여러 엔젤 투자자들이 합쳐 3백10만 달러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 2014년에는 에릭 쉬미트 구글 회장까지 참여한 시리즈 A-1 투자로 1백만 달러를 투자받고, 2015년 12월에는 신젠타 (Syngenta), 몬산토(Monsanto)와 같은 세계적인 농업 관련 회사들이 참여한 1천7백만 달러 (한화 약 200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


2년 뒤, 세계 최대 농기계 회사인 존 디어 (John Deere)가 2017년 무려 3억 5백만 달러 (한화 약 3500억 원)에 인수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존 디어는 187년 전 설립된 대표적인 장수기업이자 농업이라는 전통 산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사인데 그런 회사가 5년 남짓 된 신생 농업 관련 머신러닝 회사를 인수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블루리버테크놀로지처럼 사업의 아이디어는 고객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과거 하버드 경영대 교수인 Dr.Levitt은 "고객은 1 인치의 구멍을 원하는 것이지, 1 인치의 드릴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고객 니즈 중심으로 생각하기를 강조했다.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 자원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236명의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간단한 실험을 실시했다. 연구자들은 참가진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고객 중심" 그룹으로 모든 것을 고객의 문제부터 시작하기를 강조했다. 아이디어를 낼 때,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때,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등 모든 과정의 시작은 "고객"부터 출발하라고 가르쳤다. 두 번째 그룹은 "자원 중심" 그룹으로서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하도록 요구되었다. 당연히 두 번째 그룹은 자신들이 가진 네트워크 또는 기술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워크숍이 끝난 후 나온 결과는 매우 선명했다. "고객 중심" 그룹이 "자원 중심" 그룹보다 두 배 더 많은 고객을 유치했고 65% 이상 높은 매출을 달성했다. 블루리버테크놀로지의 사례와 일맥 상통해 보인다.


Dr.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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