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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 Apr 22. 2023

콘텐츠 속 그 역사 1 - 죽현릉(竹現陵)

대나무 잎에 담긴 호국의 의지

안녕하세요 저는 이담(易談)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전에 네이버 블로그에서'Winterzero'라는 닉네임으로 'TMI한국사'라는 타이틀의 역사글을 약 10편가량 연재했었고, 앞으로는 이 연재글을 브런치스토리에서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브런치스토리에서의 첫 번째 글로 선택한 주제는 바로 '죽현릉(竹現陵)'이라는 단어인데요, 지금부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아침의 나라'에 숨은 '삼국유사'의 키워드


지난 3월 29일, 펄어비스가 서비스하는 PC MMORPG '검은사막'이 신규 대륙 '아침의 나라'를 공개했습니다. 시나리오부터 NPC, 몬스터, 오브젝트 하나하나까지 오로지 '한국적인 컨셉'을 담아내는 것에 치중한 것이 특징인데요,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요소를 게임 안에 재밌고 아름답게 넣은 덕분에 유저들의 호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검은사막 홈페이지 메인에 소개되어 있는 '아침의 나라'

아침의 나라 스토리는 게임 속 가상의 세계인 '동해도', 그중에서도 '달벌마을'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8가지 설화를 유저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순서대로 즐기면 되는 식이라고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번 글에서 소개할 내용과 연관된 '죽엽군전'인데요, 게임 내 설명에 따르면 죽엽군전은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검은사막'에 나와있는 '죽엽군'의 이미지와 '죽엽군전' 소개 문구.

동해도의 수호자였던 죽엽군이 되려 동해도를 위협하는 설정으로 나와있는데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설화를 어디선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분명 한국적인 컨셉을 담아 만든 콘텐츠이니 한국 설화 어딘가에 있을 텐데, 과연 죽엽군은 어디에서 설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의문은 바로 고려시대 승려인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추왕이 보낸 군대, 신라를 지키다


검은사막 죽엽군전의 원전 설화는 삼국유사의  번째 장인 '기이(紀異)'편의 '미추왕 죽엽군(未鄒王 竹葉軍)'이라는 설화입니다. 설화의 배경연대는 신라의 14대 왕인 유리왕(儒理王, 고구려의 유리왕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재위기인 서기 284~298년 사이인데요, 유리왕 재위기간에 신라는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던 이서국(伊西國)이라는 나라의 침략을 받아 수도인 금성(金城)을 공격당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신라군은 수도까지 쳐들어온 적군을 막아내고자 함에도 장기간 버틸 수 없는 상태였는데요, 이때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대가 나타나더니 신라군을 도와 이서국 군대를 공격합니다. 삼국유사는 이들의 인상착의에 대하여 '모두 댓잎(竹葉)을 귀에 꽂고 있었다'라고 기록하였는데요, 신라군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자신들을 도와주는 이들의 도움에 힘입어 함께 적군에게 반격을 가하였고, 마침내 승리하여 신라를 지켜내게 됩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직후 이 군대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려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는데요, 때마침 유리왕의 선왕이었던 13대 미추왕(未鄒王)의 무덤에 대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이는 일이 생깁니다. 이것을 본 신라인들은 그들이 미추왕의 도움으로 인해 왔던 군사임을 알았고, 그 뒤로 미추왕의 무덤을 죽현릉(竹現陵)이라 부르게 됩니다.

경주 미추왕릉 봉분(경주 대릉원 소재)
죽현릉, 신라 정치의 혼란함 속에서 다시 언급되다

 

이런 사연을 갖고 있던 죽현릉이 다시 언급되는 건 신라의 36대 왕인 혜공왕(惠恭王) 15년인 779년에 이르러서입니다. 그 해 음력 4월, 신라의 명장이었던 김유신(金庾信)의 무덤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그 바람 속으로 김유신과 닮은 누군가가 말을 탄 채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갑주를 입고 무기를 든 병사 40여 명이 함께 등장하더니 모두 죽현릉으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잠시 뒤 죽현릉에서는 누군가 울거나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기록은 그때 들린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신은 평생에 난국을 구제하고 삼국을 통일한 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혼백이 되어 나라를 진호하여 재앙을 없애고, 환란을 구제하는 마음을 잠시도 가벼이 하거나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경술년(770)에 신의 자손이 죄도 없이 죽음을 당하였으니 군신들이 저의 공훈을 생각지 않습니다. 신은 다른 곳으로 멀리 가서 다시는 힘쓰지 않으려니 왕께서 허락하여 주십시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회오리바람이 일던 무덤의 주인인 '김유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갑자기 무덤을 나선 이유는 다름 아닌 자기 후손의 죄 없는 죽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와 연관된 기록은 770년인 삼국사기 신라본기 혜공왕 6년의 기록인데요, 당시 신라의 대아찬이었던 김융(金融)이란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다고 나옵니다. 김융의 정확한 프로필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이 내용을 연결 지어 봤을 때 김융은 김유신의 후손인 것이고, 사실 김융은 단순히 반역을 일으켜 죽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사건으로 인한 희생양이라는 견해가 있기도 합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신라의 멸망이 시작되는 신라 하대가 혜공왕 시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김유신은 미추왕을 찾아가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미추왕은 그런 김유신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나와 공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이오. 공은 전과 같이 노력해 주시오.


우리 둘이 아니면 신라를 지켜줄 존재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김유신을 설득하던 것이죠. 그러나 김유신은 같은 청을 세 번이나 말하고, 미추왕은 세 번 모두 거절합니다. 그러고 나서 죽현릉에 있던 회오리바람은 사라지죠. 이 사실을 안 혜공왕은 두려움이 생겼고, 상대등이었던 김경신(金敬信, 훗날 원성왕으로 즉위)을 김유신의 무덤에 보내 사죄하는 한편 김유신이 세웠다고 하는 절인 취선사(鷲仙寺)에 공덕보전(功德寶田)이란 명목의 땅을 30결 하사합니다. 또한 김유신을 설득한 미추왕의 공이 크다며 그때부터 나라 사람들 모두가 신라의 명산대천 중 하나인 삼산(三山)과 더불어 죽현릉에 제사 지내기를 거르지 않았고, 죽현릉의 서열을 박혁거세의 무덤인 오릉(五陵) 위에 두어 대묘(大廟)라고 부르기에 이릅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삼국사기』

경주 미추왕릉_봉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6284171&ccbaKdcd=13&ccbaAsno=01750000&ccbaCtcd=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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