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생긴 일

by 수윤

응급실에서 수액을 꽂고 떨면서 누워있었다. 몹시 추웠다. 간호사가 이불을 두 개나 겹쳐서 덮어줬지만 몸의 떨림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중에 해야 하는 검사는 왜 이리도 많은지. 수술에 들어갈 예정이라 심전도 검사와 X-ray 등 다양한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다. 평소 좁은 곳이나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심한 답답함을 호소하고 과호흡이 오곤 했다.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 MRI라니, 상상만 해도 숨 막히는 그 원통에 들어가 몇 십 분을 있어야 한다니. 눈앞이 아찔했다.


MRI 검사실에 들어가서 도와주시는 선생님께 폐소공포증이 있는데, 꼭 찍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여쭤봤다. 접합 수술의 핵심은 혈관을 찾아 연결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MRI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나의 불안함을 보시곤 MRA는 10분만 참아도 찍을 수 있으니 MRA로 변경해서 찍자고 이야기하셨다. MRA 검사만으로도 혈관은 보일 것 같다고 말이다. 이제 참아내야 했다. 10분이다, 딱 10분만 눈감고 참아보자. 심호흡을 하며 다른 상상을 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숨은 점점 차올랐고, 5분이 지나자 숨이 가빠왔다. 언제 끝나느냐고 소리쳤고, 1~2분 뒤에는 검사가 끝이 났다.


검사를 모두 마치고 응급실로 다시 옮겨져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왼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동생이었다.

"언니야 엄마, 아빠 무슨 일 있나? 뭔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만 말을 안 해준다. 혹시 엄마 다쳤나?"

"아니 내가 다쳤다, 나 손가락 잘렸어."

"어??????"

동생은 내 말을 듣고는 펑펑 울어댔다.


아픈 손가락은 우리 가족이 공유하고 있는 트라우마다. 아빠가 사업을 시작하고, 엄마가 일을 도우면서 엄마는 두 번이나 손을 다치셨다. 평생 몸 쓰는 일을 하지 않던 사람이 맞지 않는 일을 해서 그런다고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자꾸 다치게 되는 거라고. 엄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놀라서 병원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 아마 동생도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내가 다침으로 우리 가족의 트라우마는 더 견고해져 버렸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부모님이 마스크를 쓰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응급실 의사 선생님과 간단하게 면담을 했다. 기계에 눌려 살점이 뜯겨나간 케이스라 잘린 단면이 깔끔하지 않고, 살점이 많이 떨어져 나가 쉽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접합을 해도 손가락이 많이 짧아질 것이고, 움직임에 제한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그래도 젊은 여성이니 최선을 다해 재건해 보자고 하셨다. 혈관만 살아있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그 말만 계속해서.



응급실에 몇 시간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병실로 이동했다. 병실에는 환자 1명과 간병인 2명이 있었는데, 간병인은 나를 보며 궁금해했다. 젊은 한국인 여성이 이 병원에 올 일이 뭐가 있느냐는 거였다. 하긴 병원에서 응급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이거나,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이었으니 궁금할 만도 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손가락 한 개 잘린 거면 양호한 거라며 수술 잘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감사하다고 하고는 누워버렸다. 피곤했고,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가 않았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12시 반쯤 다쳐서 병원에 왔으니 벌써 다친 지 6시간이 다되었다. 12시간 안에는 접합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언제쯤 수술을 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간호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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