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 모자라는 수라 큰 일을 치르지 않는 해.
‘현관이 마주 보는 곳에 거울을 두지 마라, 복 나간다’, ‘해바라기 그림은 돈을 불러온다’와 같은 미신
3년 전, 나의 스물아홉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니던 첫 회사를 퇴사했고, 자취를 하고 있었던 때.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집에서 이런저런 호작질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주 심심했다는 말이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새벽에 처피뱅을 하겠다고 머리카락을 이마 1/3 지점까지 잘라버리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며 이것저것 쿡쿡 찔러보고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돌진할 만큼 마음에 닿지는 않았다. 애매모호한 시간들 속에 코로나가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공장을 운영하신다. 엄마와 몇 명의 직원과 함께 일궈가는 작은 공장이다. 제조업은 인력이 전부이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소중한데, 직원 한 분이 코로나로 2주간 출근이 어려워졌다. 알바를 구하려고 한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아빠의 팔을 붙잡았다. “아빠, 내가 할게!!” 나는 백수였고 돈이 궁했다. 용돈벌이를 조금 하면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심심한 김에 재미있겠다 싶었다. 동생이 종종 아빠 공장에서 알바를 하곤 했는데, 일한 것보다 용돈 삼아 몇 만 원씩 더 주던 걸 알고 있었기에 꿍심을 가졌던 거다. 엄마는 위험하다며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동생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하냐며 고집을 피웠다. 참고로 난 말로 마음을 잘 움직인다. 아빠가 허락했고, 엄마는 못마땅해 보였지만 더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알바를 가는 첫날부터 고비가 왔다.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직장 생활을 놓은 지 1달 만에 내 몸은 아침에 일어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거의 실려가다시피 아빠 차를 타고 갔다. 단순 반복 작업이었는데, 딱 하루 하고는 오른쪽 팔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동생도 했던 거라는데, 나는 동생보다 체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체격도 더 작다. 몸살이 나서 다음날은 일을 나가지 못했다.
3일 일하기로 했는데, 하루만 하고 포기하는 건 왠지 자존심 상하지. 한계를 넘어보자는 혼자만의 대결에 취해 뻐근한 몸을 이끌고 마지막 출근을 감행했다. 엄마가 점심시간에 복어탕을 사준다고 해서 복어탕만 생각하며 출근했다. 첫날 너무 지루하고 시끄러웠기 때문에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가지고 갔다. 그날 하는 일은 왼쪽 팔을 쓸 수 없게 되는 일이었는데, 첫날보다는 할만했다. 양쪽 버튼을 누르면 기둥이 내려와 부품 두 개를 압착시키는 반자동 기계였고, 힘을 요구하지 않았다. 일을 조금 하다가 사무실에서 실업급여 신청을 하며 빈둥거렸다. 점심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았을 무렵, 일하라는 양심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드폰을 끼고 일을 하니 지루하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며 반복작업을 하는 건 꽤 평화로웠다. 기계가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안전해 보였다. 문제는 두 부품이 잘 압착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었다. 불량이 나오면 안 되니까 손으로 두 개가 압착되었는지 만져보며 확인을 했다. 이게 문제였다. 기계에 손을 넣는다는 것.
분명히 두 개의 버튼을 두 손으로 눌러야만 기계가 내려와 부품들을 압착시키는 원리인데, 내가 손으로 부품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기계가 내려왔다. 순간 ‘어? 이게 왜 내려오지?’ 생각했고, 그 생각이 끝나기 전에 내 손가락은 기계 밑에 깔렸다.
부품을 압착시킬 만큼 압력이 강한 기계인데, 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손을 넣었을까?
두 손으로 눌러야 내려오는 기계가 왜 갑자기 내려왔을까?
나는 왜 기계의 위험함을 잘 알지 못했을까?
기계는 손가락을 꽉 눌렀고,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르며 손을 확 빼냈다.
‘다행이다’
안도하며 내 손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손가락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