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장

회사, 굿굿바이

by 아궁이

" 맨날 날 새서 일하더니 이게 말이 되니? 당장 노동부에 신고해."

" 때려치워. 회사가 아쉽지 네가 아쉽냐? 너 없이 그 프로젝트할 수나 있대?"

" 어휴, 내가 진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넌 회사랑 안 어울렸어. 그냥 간호사로 돌아가는 건 어때?"


죽어라 일해 놓고 부당하게 해고되는 처지에

회사입장을 덤덤히 수렴하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하는 말들이다.

병원을 떠나 19년이 넘어가도록 회사 생활 했는데, 20년 지기의 일갈에 억장이 무너진다.


가정과 일,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도 다양한 포지션으로 탄탄히 쌓아온

그동안 애쓴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도 들고

나를 위한 말인 줄 알면서도 서운했다.




돌이켜보면, 회사 생활 동안

나의 퇴사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늘 '회사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선택이었다.


둘째 출산 후, 복직하기 일주일 전 당시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며 회사 사정상 휴직을 더 연장하던지 이직하는 쪽을 선택해 줄 수 있냐 물었다.

바로 몇 주 전에 한 명이 복직을 해서 같은 포지션을 또 복직시키기가 애매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동법에 저촉되는 권유였는데, 미리 연락 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하며 받아들였다.

그 덕에 이직해서 연봉도 더 올리고 다양한 경력을 개발할 수 있었으니 손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코로나 시국 때,

그 무렵 글로벌 제약사들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조직개편이 대대적으로 있었다.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 것 같던 회사 오픈 지사장까지 잘려나갔다.

우리 부서에서 시니어 인원감축이 예고되었고, 4명 중 2명만 남길 것이라 했다.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해서 남아야 하는 서로 눈치만 보던 곤란한 상황.


동료 중 한 명이 전화해서 하는 말이

"언니, 언니는 여기 그만두고도 갈 데 많잖아. 간호사라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나는 이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언니동생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 그녀는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내가 지원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에 알면서 지원하기가 참 어려웠다.

매니저가 연락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 무조건 지원하라는데,

다른 시니어에게 받은 연락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을 수도 없어 며칠 잠을 못 자고 괴로웠었다.


결국 나는 지원하지 않았다.

회사는 당초 계획과 달리, 지원한 3명을 모두 남겼다.

나 한 명만 레이오프 된 것이다.


당시 본부장이 따로 연락을 해서 너무 서운하다고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었는데

왜 지원 안 하셨냐, 이직하시냐는 질문에 그제야 내가 지원하기 곤란했던 상황을 설명드려 오해를 풀었다.

오해는 풀렸지만, 내 퇴사는 이미 결정 돼버린 후였다.

그 퇴사 후 2년은 꼬박 이직이 안 돼서 참 힘들었고, 겨우 프리랜서로 일을 이어갔다.


그 당시에도 친구는 한숨을 쉬며 네가 무슨 재벌 2세냐고 했다.

니 밥 줄 끊기는데, 누구를 살리는 거냐고.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데 말이다.


그 친구 말이 다 맞다.

어쩌면 너무 쉽게 나를 뒤로 미뤘는지도 모른다.

회사를 떠날 때, 늘 내가 아닌 누군가를 지키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럴까?

이런 것이 '이타적 나르시시즘' 인가? 자기 해체인가?


그래서 이번 회사는 마지막 기회라고 믿었다.

내가 차린 회사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내가 필요하다면.


이번만큼은 남을 위해, 상황 때문에 떠날 일은 없다고 믿었다.




캐나다로 나온 지 몇 달 만에 듣게 된 회사 내부 균열과

실적운운하는 불길한 소식에 잠 못 들던 나의 기우는 현실이었다.

결국 나는 2025년 12월 31일, 자진 퇴사의 탈을 쓴 권고사직을 하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12월에 새로 시작할 미국제약사 V의 프로젝트팀을 만나고

A국 출장을 통해 아시아 2개 국가 CRO와 MOU 체결을 위한 미팅과 연구시행기관 세팅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연차를 몰아서 절반을 쉴 수 있는 12월에 굳이 한국행을 택한 것은, 캐나다에서의 6개월 근무가 문제없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었다. 나를 믿어준 회사에 대한 의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 본부장은 내가 그 일정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녀는 내 퇴사를 일방적으로 확정했고 단 한 번의 면담도 없었다.

다른 팀 A를 임시 부서장으로 자기 아래 두고 그를 시켜 결정을 전달했다.

이전 본부장께 6개월마다 업무 평가를 받겠다고 보냈던 메일이 남아있다는 것을 이유로, 그것이 나에게 올무가 되어 새 본부장이 일방적으로 평가할 근거가 되었고 업무를 종료시킨 것이다.


직접 만나서 논의하다 보면 반드시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회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회들을 계약으로 연결했고, 그 기여를 인정받아 캐나다로 자리를 옮겨 일하는 것까지 허락받았다. 여기와서도 틈만 나면 회사에 도움이 될만한 미팅과 새로운 client를 접촉하고 만날 약속을 해 두었는데, 캐나다에 있어서 해고되다니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오겠냐 묻지도 않고 말이다.


한국에 와서 보니 생각보다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새 본부장은 내가 노동부에 신고할까 봐 틈틈이 A를 통해 확인하는 비열함을 보일 뿐 대화의 여지는 없었다.

서울 도착한 다음날부터 매일 프로젝트 인수인계를 진행해야 했다.


A는 자기가 무슨 팀장이냐며 대행 중인데 죽을 맛이라고 했고, 지금은 실적 때문에 인원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사정을 한참 설명했다. 내가 얼마나 책임 있게 헌신적으로 일했는지 알기에 기회가 되면 다시 돌아오실 수 있느냐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대하기는 거기까지였고 새 본부장이 시키는 모든 말을 전달하며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때 동료였던 그녀가 변해가는 것이 낯설고 서글펐다.




지난 25년간 일해오신 부사장님마저 나와 같은 날 퇴사를 하신다고 하시며,

중구에서 가장 맛있는 파스타집을 예약하시고 점심을 사 주셨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듬뿍 담긴 샐러드와 크림 파스타가 정말 맛있었다.


처음엔 캐나다 살이가 어떤지 물으셨고, 이제 오십 대 중반 나이에 퇴사 후 어디 이직하겠냐며 농담 속에 진심을 담아 푸념을 하셨다. 그러다 부사장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겨우 입을 떼시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일하고 싶다 하셨다.


내가 진행한 유럽 프로젝트 성과가 좋아서 이어 많은 프로젝트가 잇따라 수주되고 있다 하시며, 애써준 덕분이라며 마지막까지 나를 격려해 주셨다. 겉으로는 덤덤하게 우리 다 퇴사하는 마당에 '에잇 망해라' 하며 우스갯소리로 한참을 웃었지만, 서로 어딘가 어둡고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Global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글로벌 본부를 세우고자 했던 원본부의 계획은 그렇게 허무하게 수포로 돌아갔다.


많은 이들이 나의 퇴사에 기염을 토하듯 분노해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잇따라 전해 들은 상황과 새 본부장 뒤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대표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희망을 접었다. 예의를 지키며 간단히 마지막 인사를 드렸을 뿐이다. 캐나다로 가는 것을 누구보다 반기셨다던 그분이, 왜 갑자기 입장이 달라졌는지 묻고 싶었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회사가 한다면 하는 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노동자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가 필요로 할 때 있는 있는 힘껏 소모되었고

또 한 번 아무 저항 없이 물러났다.




한 순간에 백수가 돼버린 이 상황이 인생 실패와 초라한 퇴장처럼 느껴졌다.

어떤 목표를 위해 그렇게 애를 쓴 건지 모르겠다며 슬퍼지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에 대해 생각할 힘이 나질 않는다.


그런 상태로 움츠려 들면 내가 아니지.

그럴 때마다 내가 느꼈던 소박한 보람을 떠올려 볼 테다.

회사여 굿굿바이.

이제는 타인을 위한 의리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의리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헛되지 않았다.

수고 많았다.
이제는 내가 나를 지킬 차례다.


무림의 고수처럼 캐나다 어느 시골에서 만두를 빚다가,
정말 내가 나서야 할 때가 오면
다락방에 숨겨둔 검을 꺼내 들 것이다.


아, 헛소리 그만하고

이환천 시인의 시나 읽고 맘껏 웃어보자.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