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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Oct 18. 2023

투병중 감사한 것들

그날의 기록 #7-1

암, 넌 6개월이면 끝난다.




작은 것들


눈썹

언제지... 전에 입원했을 때 옆자리 언니가 물었었다. 

"그래도 눈썹은 안 빠지나 봐요?" 

드물게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젊은 환자와 하루 병실을 같이 써서 이야기를 조금 나눴었는데, 가발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친구가 사준 가발 하나가 있었지만,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다. 어차피 맨날 병원 아니면 집인데 뭐... 덥고, 쓰기도 귀찮고. 병원이랑 집에서는 두건을 쓰고, 밖에선 모자를 쓴다. 이모가 두건을 많이 사줬고, 친구가 생일 선물로 모자를 사줬다. 

언니가 물었을 때, 

"아, 네. 신기하게 눈썹은 안 빠지더라고요!"라고 대답했었는데. 


5차 항암 이후론 눈썹도, 속눈썹도, 코털도, 몸에 그나마 남아있던 털이란 털들은 다 빠졌다. 눈썹 없는 얼굴. 꼭 무슨 분장한 거 같다. 그래도 어떻게 지금까지 잘 버텼네, 내 눈썹.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지방에서 혼자 기차를 타고 다니며 항암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태가 괜찮았다. 난 이 언니를 만나기 전까진 그게 가능한 건지,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항암을 하는 환자가 혼자 병원을 다닌다고? 그것도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그게 (그럴 체력이 있는 게) 가능하다고??

언니는 상태가 안 좋은 나보다는 내 보호자인 엄마와 더 대화를 많이 했는데, 집에서 자신의 부모님은 자신을 환자 취급도 안 해준다고 했다. 너무 멀쩡해서.

와, 그게 가능하다니. 그런 사람도 있다니. 아니, 같은 항암치료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난 왜 이런 거지?'...



감사

지난 6월 난소암 치료를 시작하고부터 평범한 일상은 나에게 로망이 되어버렸지만, 몸이 회복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작은 것들부터 다시 일상을 찾아갔다.


  < 10월 4일 문득 생각나 쓴 메모 >

심심할 수 있음에 감사

하루에 몇 번씩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볼 여유가 있음에 감사

편하게 앉아서 TV를 볼 수 있음에 감사

노트북 할 정도의 여유가 있음에 감사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영화, 드라마를 찾을 정도의 여유가 있음에 감사

엄마가 정성껏 해주는 밥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음에 감사

그로 인해 엄마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음에 감사

아파서 엄마 아빠를 속상하게 만드는 일이 거의 없어짐에 감사

날 지켜주는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있음에 감사

차를 탔을 때 덜컹거림에도 괜찮음에 감사

새벽에 한두 번만 깨고 계속 잘 수 있음에 감사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음에 감사

집에서 걷기 운동을 더 많이 해도 괜찮을 정도로 힘이 생김에 감사

더 빨리 잘 걸을 수 있음에 감사

힘 안 들이고 똑바로 서서 양치질할 수 있음에 감사


몸이 훨씬 많이 회복되면서, 일상을 조금씩 되찾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그렇게 내 용기와 희망도 함께 커갔다. 어디선가 봤다. '암, 넌 6개월이면 끝난다.'

그래, 넌 6개월이면 끝난다. 벌써 5/6 왔다!




응급실 단골

(feat. 코로나 시대)


화장실에 앉아서 배를 만졌는데 왼쪽 아래가 흠뻑 젖어있다. 뭐지?! 

내 왼쪽 아랫배에 꽂혀있는 배액관에서 복수가 새어 나와 티와 속옷이 다 젖었다. 언제부터 샜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이 샜다. 이 정도로 젖을 때까지 몰랐다. 엄마를 불렀다. 관이 꽂혀있는 부분을 소독하고, 옷을 갈아입고,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별다른 통증은 없었다. 다행히 난 아무렇지 않았다. 괜찮았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주치의가 배액관(PCD)을 보러 왔는데, 꽂힌 부위가 고름처럼 생기고 전보다 더 부은 것 같아서 나와 아빠는 걱정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PCD가 있는 환자분들 대부분 그렇다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별문제 없고, 더 이상 새지 않았기 때문에 며칠간 지켜보고 복통이 심하거나 열이 나면 그땐 응급실로 곧장 오라고 그랬다.


이때도 배액이 잘 되지 않았지만, 복수가 있는 대로 잘 나오지 않았지만, 이 PCD를 빼버리면 또 배에 많이 차서 고생할까 걱정이 된다. 그럼 또 복수천자를 하러 응급실을 다녀야 한다. 일단 그냥 두고 더 지켜보기로 한다. 


응급실을 다녀온 그다음 날도 또 조금 샜지만, 그냥 젖은 부위를 닦고, 다시 소독하고, 손수건을 바지 허리줌 안에 껴놓는다. 아프진 않으니 괜찮다. 감염이 좀 두렵지만 괜찮을 거라 믿는다.



5일 후...


이상하게 오늘따라 기운이 없고 더 피곤하다. 특별히 한 것도 없고 운동을 평소보다 더 한 것도 아니다. 오랜만에 또 너무 기운이 없어 침대에 누웠다. 아직 초저녁이고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몸이 으슬으슬 해져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있는데, 이럴 수가. 또 구토다. 

저번 달에 항암 5차를 하고 나서는 구토도 한 번도 안 하고 괜찮았는데. 열을 재보니 39도다. (환자가 사는 집에 체온계는 필수다.) 다시 응급실로 향한다.


응급실에 가니 열도 내리고, 구토도 한 번도 안 한다. 상태가 나아졌다. 그래서 괜찮겠지 하고 퇴원을 했다. 

근데 웬걸. 집에 와서 자려고 하는데 또 구토가 나왔다. 열도 다시 올랐다. 상태가 그다지 괜찮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난 그냥 집에서 편하게 자고 싶었다. 아빠는 병원에 다시 가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근데 응급실에 가는 것도, 가서 기다리고, 금식하고 기다리고, 검사하고 기다리고, 주사 맞고 기다리고, 상태가 안 좋으면 이 모든 게 체력적으로 더욱 힘들기 때문에, 난 일단 집에서 편하게 자고 다음날 상태가 어떤지 보고 갈지 말지 결정하고 싶다. 혹시 아나. 자고 일어나면 마법처럼 상태가 호전되어 있을지...


그렇지만 문제는 이거다. 

2020년은 코로나 시국이라 열이 나면 일단 무조건 격리다. 열이 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암 환자들도 응급실에 가면 예외 없이 격리해야 하고 코로나 검사를 먼저 받아야 한다. 

암 환자들은 열이 나면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치료가 훨씬 더 늦어진다. 응급실 옆 임시 격리 병동은 자리가 너무 한정되어 있어 열 있는 사람이 많을 경우 정말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고, 격리 병동에 들어가서 첫 진찰을 받고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그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3~6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저번 달엔가 응급실에 갔을 때도 열이 좀 있어서 격리병동 자리가 나기까지만 병원 밖에서 8시간을 기다렸다. 8시간! 저녁 6시쯤 도착했는데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갔다. 그렇게 8시간을 기다려서 격리병동에 들어가도, 또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음성을 확인하는 데 6시간이 걸린다. 이건.. 응급실이 맞나? 환자가 돼도 하필 코로나 시대에 환자가 돼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 나쁜 코로나는 감염이 안 됐어도 기존 환자들, 병원, 의료진을 비롯 정말 여러 사람 힘들게 한다.


아무튼 그래서 그냥 자고 다음날 응급실을 갔을 때 또 열이 있다면 또 격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자정이 다 되었지만 거의 집에 오자마자 또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불과 2시간 전에 퇴원을 했던 터라 격리 없이 바로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39도에 달하는 고열이 지속되면, 사람이 기운이 하나도 없어 끙끙 앓다가 잠을 자꾸 자게 된다. 난 그랬다. 

응급실에서 해열제를 맞으면 그 순간엔 열이 내려서 괜찮아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열이 올랐다. 해열제와 항생제를 번갈아가며 맞고, 열은 계속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열이 내리면 상태가 호전돼서 멀쩡해진 것 같고, 열이 오르면 다시 힘이 다 빠지고 앓다가 잠이 든다. 구토는 안 했고, 배가 아프지도 않았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계속 열이 난 이유는 염증 때문이었다. 저번 달에 복막염이 생겨 계속 항생제 치료를 하다가 퇴원했었는데, 그때 주치의가 말했던 것처럼 이 염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좀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배액관에서 나오는 복수를 검사하고, 균이 나와 다시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고, 난 다시 감염주의 환자로 임명(?)됐다.



수액, 알부민, 울렁거림 아님 속 쓰림 약, 항생제, 수혈액... 알부민은 혈액검사에서 알부민 수치가 너무 낮아서 맞고, 항생제랑 수액은 염증 치료로 맞고, 항생제가 구토를 유발할 수 있어 울렁거림 약을 같이 맞고, 또 피가 부족해서 수혈을 받는다. 


복수가 있는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알부민이 부족하기 때문에 알부민을 잘 맞게 된다 (알부민이 혈관에서 새나가서 복수로 풍덩! 간기능과도 관련이 있음). 그리고 난 칼륨이 부족해 칼륨도 꽤 많이 맞았다. 근데 약들 중에 유독 혈관통이 심한 약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칼륨이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맞는데, 그래도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반복한다. 그리고 난 수혈을 싫어한다. 혈액이라 꾸덕해서 혈관에 들어갈 때 느낌이 싫고, 이것도 혈관통이 심하다. 근데 빈혈 수치도 높고 (헤모글로빈 부족), 수혈이 필요하다는데 맞아야지 뭐 별 수 있나. 투병 중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수혈받았다.




내 두 번째 집, 병원


MRSA

혈액검사를 매일 아침마다 해서 염증수치(CRP)도 확인하고, 이것저것 부족한 것들을 정맥주사로 맞는다.


그리고 복수의 액상 세포병리검사를 하는데, 이번엔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이 나왔다. 이름 그대로 메티실린(methcillin)이라는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황색 포도알균이다. 이 이름도 길고 이상한 균의 치료에는 반코마이신(vancomycin)이 쓰인다. 

이 반코마이신을 나는 용량을 점차 늘려가며 맞았다. (혈액 약물검사를 통해 용량을 조절한다.) 주치의 선생님이 설명해 줄 때, MRSA는 자기 친구한테서도 나왔다며 사람들 누구한테나 있을 수 있는 균이고, 별거 아닌 것처럼 얘기했다. 너무 걱정 말라고, 애써 안심시켜주려고 해주는 말 같았는데, 나나 엄마나 이때는 MRSA가 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나중에 네이버에 찾아보니,


"황색포도알균 감염증의 치료에 반코마이신(vancomycin)이나 타이코플라닌(teicoplanin)을 투여하는데 치료성적이 나쁩니다.  MRSA 균혈증의 경우 으뜸 치료제인 반코마이신을 투여하여도 사망률이 30% 정도에 이릅니다. MRSA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의료기관 내에서 환자 사이에 전파가 쉽게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

MRSA 감염증은 중증 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다른 세균 감염증에 비해 흔하기 때문에 치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MRSA 균혈증 환자의 합병증으로 감염심내막염이 발생할 수 있고 감염심내막염이 생기면 일부 환자에서 심장기능부전이 합병되어 심장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 감염 [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infection],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MRSA 균혈증은 발열로 나타난단다. 맞네. 찾아보고 나니 주치의 선생님이 왜 친구 얘기까지 하며 나와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친절하시기도 하셔라. 아, 근데 괜히 찾아봤나?


아는 게 힘이지만 때론 두려움도 동반되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Bye Bye PCD

입원해 있는 동안 있으나 마나 하게 된 배액관을 뺐다. 복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데도 잘 배액이 되지 않아 배액관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뺐다. 그래도 드!디!어! 빼니까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


지난 7월 PCD 시술 후 약 3개월 동안 왼쪽 아랫배에 이 배액관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시 시술대에 올라 복강 내 관의 위치를 바꾼 것도 세 번이다. 왜 자꾸 배액이 안 돼서 위치를 바꿔야 했냐면, 처음에는 안 그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위 말해 배 속에서 막들이 방을 만든다 (교수님 설명). 부인과 암에서 특히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아니, 수술하고 항암을 해도 복수가 계속 생기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방까지 만들어?! 어이없기도 하고 짜증도 난다. 이렇게 배 속에서 방이 만들어지면, 여러 방에 복수 나눠져서 차있으면, 다 뺄 수가 없다. 관이 꽂혀있는 그 방에서만 복수가 나온다. 그래서 복수가 더 이상 배액이 안 돼도 배는 빵빵하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다 주사로 찔러서 복수를 뺄 수도 없다. 참, 인체의 신비란...


이런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을까? 

특히 난소암 환우 중에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당시엔 더, 매우 많이 궁금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이런 경우에 딱히 방법이 없어 대부분 그냥 두고, 많이 차서 많이 불편하거나 호흡이 힘든 정도가 되면 (사실 이 상태가 되기 전에 병원에 가는 게 덜 고생이다), 복수천자로 가장 큰 방을 찾아 복수를 최대한 뺀다. 이건 진짜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다. 나도 이 배 속에서 각방을 쓰고 싶어 하는 복수 때문에 정말 답답했고 몸이 원망스러웠다. '너 진짜 나한테 왜 그러니?ㅠㅠ' 


아무튼 이제 배액관을 빼면서 익숙해져 버린 혈관조영실도 바이바이다. 

앞으로 다시는 갈 일이 없었으면!



지겨운 복수

복수는 또 많이 차면 복수천자를 해야겠지만 복수천자는 너무 많이 해서 별거 아닌 게 되어버렸다. 

마취할 때만 참으면 된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복수가 더 이상 안 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좀 불편하다. 그렇지만 복수천자는 흉수를 빼는 것보다 훨씬 훨씬 낫다. 지난 7월에 수술 후유증으로 폐에 흉수가 차 같은 혈관조영실에서 시술을 받았었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다행히 얼마 후 흉수는 다 소실됐다. 복수는 언제까지...? 교수님이 오래갈 거 같다고 하셨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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