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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Oct 16. 2023

뷰 하난 좋은 병실

그날의 기록 #6-2




복막염


산부인과 병동에 자리가 안 나는데 난 바로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다른 입원 가능한 응급의학과 병동으로 옮겨갔다. 11층 5인실이었는데, 뻥 뚫린 커다란 창문 바로 옆이라 적어도 뷰는 참 좋았다. 서울 한 복판이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멋진 도시 뷰. 나중에 옆자리에 온 환자의 보호자 분이 그랬다. 

"와, 그래도 뷰 하난 좋네."

그래, 뷰라도 좋은 게 어딘가.. 하하...



복통은 이제 많이 줄었다. 거의 참을 수 있을 만큼. 진통제는 웬만하면 안 맞으려 했다. 진통제에 자꾸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구토도 줄었다. 이제 금식은 아니라 엄마가 계속 아기새에게 먹이를 주듯 뭐든 먹이려 했다. 하지만 이땐 음식이 안 들어간 지가 오래돼서 마실 것들밖에 못 마셨다. 주로 주스를 마셨는데, 그나마 영양가가 좀 있는 두유나 요거트 드링크 같은 것들을 더 마시려 했지만, 걔네들이 더 진득한 식감이라 소화가 더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마시기가 더 힘들었다. 뭐, 초반엔 주스도 토했으니까.


그리고 기운이 너무 없어서 화장실을 갈 때 빼고는 침대에만 붙어있다. 이런 환자들은 간호사가 매일 욕창 검사를 한다. 그때 난 굳이 할 필요 없다고, 귀찮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욕창이 죽을병이라더라. 옛날에는 욕창이 생기면 죽을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무서운 병이라 그렇게 매일 생기려 하는지 체크를 하는 거였다. 계속 누워있더라도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안 되고 주기적으로 좌우로 돌아누워 줘야 한다.



항상 부인과 병동에만 있었어서, 이번엔 새로운 병동이라 병실 밖(복도) 구경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입원을 자주, 오래 하면 이렇게 되나 보다. 병원 안이 내 세계의 전부다. 계속 병동에만 있으니, 상태가 괜찮으면 지하에 있는 편의점이라도 한 번 가고 싶고, 더군다나 이번엔 병실에만 있으니, 병동 복도라도 구경하고 싶다. 하하.

엄마는 어차피 같은 건물이라 똑같은데 뭘 구경하고 싶냐고 하지만 층마다 복도 디자인과 색, 간호사실 앞 창문에 붙어있는 감사의 메시지들이 다르다. 간호사들도 다르고 병동 분위기도 다르고... 그렇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복도 한 바퀴 돈다는 게 나와는 거리가 너무 먼 이야기였다. 복도는커녕 병실 내 화장실까지 갔다 오는 것도 힘들었다. 몇 초도 안 걸릴 그 짧은 거리도 다시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한껏 구부리고 나릿나릿 걸었다. 배가 너무 당겨서 제대로 피질 못한다.



갑자기 시작됐던 극심한 복통과 심각한 구토 증상의 원인은 '자발성 복막염'인 걸로 결론이 났다.

이는 감염성이고, 무균 상태인 복막강 내로 세균이 침투하여 복막에 염증이 생긴 거다. 나는 사실 복수 때문에 이런 염증에 더 취약하다. 자발성 복막염이 복수에 세균이 증식해서 생기는 거란다. 

치료 시작 후에도 복수를 계속 달고 살았는데,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복막염이 생겼을까? 


갑자기 복통이 시작됐던 바로 그 전날 난 응급실에서 복수천자를 했다. 복수천자를 할 때도 먼저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데, 인턴 의사가 이런 이런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시술 동의를 받는다. 시술의 위험은 주로 주사로 장을 잘못 찌르면 발생할 수 있는 장 천공, 그리고 시술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세균 감염이다. 투병을 시작하고 복수천자를 자주 했었기 때문에, 역시나 당시에도 별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물론 정확한 원인은 언제나 미스터리이지만, 이때 어쩌다 세균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어봤더니 주치의도 솔직하게 동의한다. 안타깝지만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고... 

아니, 낫고 싶어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 치료가 또 다른, 더 큰 문제를 불러왔다. ... 이 터널의 끝은 어디인가. 끝이 있긴 있는 건가..?



그리고 또 간수치가 말도 안 되게 올라있었다. 혈액검사에서 간 기능 저하 여부를 말해주는 대표적 지표는 AST와 ALT인데, AST는 최고 919까지 올랐고 (정상범위: 0~32), ALT는 1069까지 올랐다 (정상범위: 0~33). ALP는 273이었다 (정상범위: 35~104). 

나는 지난 6월 수술에서 간을 절제해서 안 그래도 간을 반만 가지고 항암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네 번의 항암을 견뎌내느라, 그 독한 항암제를 매번 해독하느라 간이 많이 힘들었을 거다. 불쌍한 내 간이 완전히 녹다운 됐다. 간수치가 이렇게나 오른 원인은 복막염이고, 그렇기 때문에 복막염을 치료하며 간수치를 계속 관찰해야 했다. 염증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계속해서 투여받는데, 이 항생제가 또 구토를 유발한다. 하... 지겨운 구토. 항생제를 맞으며 속 쓰림 약과 울렁거림 약도 같이 맞는다. 


치료와 부작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환자는 또다시 고독한 싸움을 한다.




감염주의 환자


응급의학과 병동에서 이틀을 보낸 뒤, 산부인과 병동에 드디어 자리가 나서 자리를 옮겼다. 

복수 검사에서 세균이 발견됐기 때문에 난 <감염 주의> 환자가 되었다. 난 이미 감염이 되었으니 내가 감염을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환자들이 나를 조심해야 한다. 일반인들은 괜찮지만 암 환자들은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어 감염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병실 앞 내 이름표 옆에 그걸 알리는 스티커가 붙여지고 (그나마 위안인건 난 빨간색(A)이 아니고 초록색(B)이었다. 감염 위험등급이 더 낮다는 뜻), 날 보러 들어오는 간호사들은 다 일회용 비닐복(?)을 뒤집어쓰고 장갑까지 끼고 들어온다. 내가 복도에 나가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 일회용 비닐복을 입는다. 

나참,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아프고 나니, 병원을 집처럼 들락날락하니 참 별 경험을 다 해본다. 근데 세균은 내 뱃속에 있는데, 어떻게 전염이 된다는 건진 모르겠다?



복막염의 비수술적 치료는 수액 공급과 항생제 투여다. 이제 염증반응이 많이 좋아져서 구토가 멈추고 먹기도 조금씩 먹었다. 항생제를 매일 맞으면서 배액관으로 나오는 복수를 계속 추적 검사하며 변화를 본다. 

근데 한번 증식한 이 세균은 쉽게 금방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꽤 걸린다. 그리고 검사에서 세균이 안 나왔다고 바로 치료가 됐다고 하지 않고, 3번 연속으로 안 나와야 <감염 주의> 꼬리표를 뗄 수 있다. (나도 아픈 환자인데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 같은 느낌...ㅠ) 


시간이 지나면서 간수치가 내려오고, 세균이 완전히 박멸되진 않았지만 항암을 하고 퇴원을 해도 되는 정도가 됐다. 구토가 없어지고, 복통도 정말 많이 사그라들고, 열심히 먹으며, 각종 약물을 맞으며, 걷기 운동도 하며 그렇게 10일간 병원에서 회복을 하고, 5차 항암을 하고 집에 왔다.



항상 그렇듯 수만 가지 약을 챙겨 왔다. 저번처럼 일주일 간은 거의 누워서 생활하고 각종 부작용을 이겨내며 점차 또 회복을 한다. 

그래도 이제 5/6 왔다!!! 죽을 것 같던 힘듦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5/6 왔다. 

이게 정말 위로가 많이 된다. 한 번만 더 힘내보자. 한 번만 더 버티자.



환자가 바라보는 의료인


이번에 주치의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전 주치의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성의 있게 설명도 잘해주셔서 너무 좋았다. 산부인과이다 보니 주치의들이 (대부분) 다 여자이고 병동에도 교수님들이 회진을 돌 때 빼고는 항상 여자들밖에 없는데, 모든 여자 의사들이 정말 멋지지만, 내 주치의가 특히 더 멋지고 똑똑하고 친절해 보였다. (장**선생님 사랑해요♡)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장기입원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이 직업은 천사가 아닌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난 지난 6월 처음 장기 입원을 했을 때 간호사라는 직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제대로 식사도 잘 못하고, 여기저기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숨 돌릴 틈 없이 바쁜데, 또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더 천사 같은 간호사들이 있다. 이건 정말 간호학 공부만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천성이다. 난 간호사들을 존경한다. 특히 내가 다니는 병원 부인과 병동에서 지금까지 날 돌봐준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존경합니다!♡




아직 하루에 수 가지의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각종 항암 부작용으로 인한 불편함이 있지만, 왼쪽 아랫배에 배액관을 달고 살지만, 아프지만 않으면 괜찮다. 아프지만 않으면 살 만하다.


9월부터는 (입원하기 전) 집에서 찍은 셀카도 있다. 그만큼의 육체적 여유가 생겼고, 또 민머리 나의 모습을 남기고도 싶었다.

그동안 연락을 못 했던 가까운 친구들에게 연락도 했다. 여름 내내 내가 연락이 안 돼 걱정하고 있던 친구들이다. 한 친구가 내 소식을 듣고 쓴 장문의 답장 마지막에 그랬다. "You will rise like a phoenix!" 그래, 난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설 거다. 그들은 그들의 존재만으로 나에게 힘이 된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 30주년♡ 축하를 마지막으로 9월이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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