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제 항암치료 막바지라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장기 입원인데, 이번에 병동 분위기가 가장 침울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위급환자가 많은 적이 없었다. (사실 내가 투병하면서 입원했을 때 중에 이 당시 상태가 가장 괜찮았어서 더 주변이 눈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운동으로 병동을 돌 때, 교수님과 얘기할 때마다 우는 보호자도 보고, 집중 관찰실에서 하루 이틀을 넘게 보내는 환자들도 봤다. 이번에 유독 관찰실에 사람이 자주 있었다.
또, 검사를 받기 위해 병동에서 이송되는 환자들 중 인공호흡기를 차고 있는 환자들도 몇 분 봤고, 나보다도 훨씬 더 말라서 숨이 겨우 붙어있는 것 같은 환자도 봤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예외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지인들이 방문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봤다.
이게 병원이고 암 병동이다. 환자는 너무나 많고, 죽음은 너무나 가까이에 있다.
내 옆자리 아주머니는 상태가 나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악화되어 있는 듯했다. 아예 움직이지 못하셨고 침대에만 누워계셨는데, 아무것도 못 드셨다. 40대 후반밖에 되지 않으셨다. 그 아주머니를 보면서 내가 구토하느라 하나도 못 먹었던 때가 생각났고, 못 먹는 게 뭔지 경험해 본 나는 아주머니를 이해했다.
음식을 보기만 해도 역겹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했던 그땐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토하지 않을 땐 음식이 받지 않아 먹기 싫었다. 먹을 때 힘들고 먹고 나서도 힘든데, 먹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음식을 거부하는 걸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난 아주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먹길 바랐다. 더 노력해서 드셨으면 했다. 먹어야 산다. 뭐라도 먹어야 된다. 몸이 회복하려면 에너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난 그 아주머니가 안되어봤기 때문에, 정확한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사실 내 경험을 들이밀며 다 이해한다고 할 수도 없다.
아주머니는 내가 입원해 있던 10일 동안 화장실에 딱 한 번 간 게 움직인 게 다였다.
간병인이 계속 소변을 받아야 해서 간호사가 소변줄을 권하지만 환자는 거부한다. 이해한다. 시간이 되면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자꾸만 미루다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삼킨다. 이해한다. 자꾸 울음이 나고 비관적이게 된다. 이해한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희망을 드리고 싶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아주머니는 희망을 잃었다.
항암이 잘 듣지 않은 듯했다. 약물치료를 한다 해도 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이미 악화된 상태고,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할 수 있는 몸 상태도 아니다. 담당 교수님과 주치의가 항암을 한 번 더 진행해 볼지 고민하는 중에, 아주머니는 한 번 더 그 지옥을 뚫고 나올 수 있을지, 제 자신을 항암약물 낭떠러지로 몰아넣는 게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할 거다.
환자의 선택이다. 난 아주머니가 무슨 선택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교수님은 아주머니의 보호자에게 준비하셔야 한다는 말을 한다. 가족들이 방문하고, 병실은 눈물바다가 되지만 난 그 옆 커튼 뒤에 숨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죽음은 아주머니의 희망을 손에 쥐고 가까이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본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 내 가까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 이상 별로 생각해 보지 않는 죽음. 젊을수록 더 머나먼 이야기 같은 죽음. 투병을 하며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게 있다.
병동에서 죽는 것만큼 억울한 죽음은 없다.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있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눈만 깜빡이다가 죽는 것만큼 슬픈 게 없다.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갑자기 죽는 게 낫다. 그냥 일상생활하면서, 뭔가를 하다가, '누리다가' 갑자기 어떤 이유로든 죽는 게, 말할 힘도 없이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치유의 희망이 아예 없다면, 그냥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할 거다. 환자가 원하면 그렇게 해줘야 한다.
아줌마, 지금 어디에 계실지 모르지만, 행복하세요. 이제 절대 아프지 마세요.
마지막 퇴원
(2020년)10월 18일.
마지막 항암을 하고 퇴원한 날이다. 6차 항암. 끝이다!!! 신난다. 행복하다. 야호!!
염증 치료를 먼저 해야 돼서 항암이 좀 늦춰졌는데, 나중에는 내가 너무 멀쩡해져서 수간호사 선생님이 여기에 왜 있냐고 집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나이롱환자라며..(ㅋㅋ)
전에 병동에서 멀쩡하게 다니는 환자들을 보며 왜 입원했는지 싶으면서도 참 부러웠던 그 환자가 내가 됐다. '나이롱환자'라는 말이 이렇게나 듣기 좋은 말이었다니. 행운아가 된 느낌이다. 적어도 병동에서 행운아가 확실하다. 영광이다.
다행히 항암을 더 하자는 얘기는 없었고 (난소암은 약물치료를 기본 6회 진행한다), 이제 한 달 뒤에 CT를 찍고 혈액검사(종양표지자 검사)를 하며 치료 결과를 추적한다.
근데 최근에 간문맥 혈전증이 생겨 순환기내과 외래를 또 다녀야 한다. 수술 후유증으로 생긴 이 혈전은 약으로 치료 중인데(릭시아나정; 혈액응고 억제제), 하루에 한 알 먹는다. 그리고 호르몬 치료도 계속 진행한다. 하루 한 번 같은 시간 레트로졸(페마라정)을 복용한다. 원래 유방암 치료제로 쓰이는 호르몬성 항암제인데, 난소암에도 효과가 있다고 보고돼 보통 후속 치료제로 쓰인다.
아무렴 어떠나, 하루에 겨우 두 알인데! 항암 하면 복용해야 하는 약이 하도 많아서 이제는 겨우 하루 두 알로 줄어든 게 너무 좋다.
이제 배액관도 없고, 상태도 많이 호전돼서 퇴원 일주일 후 외출도 시작했다.
이 얼마 만의 외출인가! 그냥 아파트 단지 안 상가를 갔다 오는 것도 좋다. 이제 완전 저질이 되어버린 나의 체력을 다시 키워야 하는데, 단지 안 상가에 다녀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엄마 따라 상가 반찬가게에 가는 것도, 세탁소에 가는 것도, 밖에 다닐 수 있는 거 자체가 너무 좋다.
그리고 10월 마지막 날엔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을 했다.
6개월 만의 외식이었다. 어린애가 방학을 맞아 놀이공원에 놀러 가듯이,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듯이, 너무 신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장어구이를 먹었다.
이 전전날 응급실에 복수천자를 하러 가서 하루를 다 보냈는데, 복수 세포 검사에서 세균이 안 나왔다.!
긴 기다림이 얼마나 보람이 있던지. 이제 이렇게 복막염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건가? 해방된 기분이다.
복수에 아무 이상이 없다니 아직도 복수가 자꾸 차는 건 둘째치고 정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앞으로 복막염과 복수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이제 다시 아프고 싶지 않다. 지난 5개월 간 제일 많이 쓴 단어가 '제발'인데, 앞으로 더 이상 입원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