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거의 매일 한다. 넷플릭스도 보기 시작했다. 항암 하는 기간 동안 집에만 있을 때, 그리고 상태가 좀 괜찮을 때 너무 가고 싶고 구경하고 싶었던 백화점도 갔다. (난 원래 쇼핑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미국 대선을 팔로우업 할 정도의 여유까지 생겼다. 이제 먹는 것도 좀 더 잘 먹을 수 있게 됐다.
창밖으론 빨갛고 노란 단풍들이 예쁘게 빛을 발하고, 나의 눈썹과 머리는 새싹처럼 다시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밖엔 가을이 오고, 안엔 봄이 왔다.
45kg로 시작한다. 그래도 전에 병원에서 찍었던 인생 최저 몸무게보다는 이게 찐 상태인데, 일어날 힘이 없어 몸무게조차 재지 못했을 땐 아마 40kg를 겨우 넘었던 것 같다. (그래도 40 밑으로까지 떨어진 적은 없다고 믿는다! 그나마 다행..?) 근데 몸무게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거의 항상 배 속에 복수를 한가득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한번 복수를 뺄 때마다 3kg가 한 번에 빠진다.
아무튼 살을 더 찌워야 한다. 말랐는데, 이게 그냥 마른 게 아니고, 아프게 말랐다. 딱 봐도 어디 아픈 사람처럼... 한국엔 마른 사람들이 많으니 몸무게가 같아도 몸 형태가 다르다. 이제 전에 입던 바지들이 다 안 맞는데, 어떤 바지든 입으면 내가 전에 길거리에서 '저 안에 다리가 있긴 있는 건가..' 생각했던 사람들처럼 보인다. '저 다리로 어떻게 걸어 다니지' 했던... 거울을 보면 정말 보기 싫게 생겼다. 난 원래 날씬보단 통통에 가까웠기 때문에 더 해골같이 보인다. 등에 갈비뼈가 훤히 보이는 게 징그럽다.
실종된 나의 엉덩이를 되찾자. 몸에 '엉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내 몸이 이렇게 될 수가 있다니. 살찌는 게 소원이신 70대 우리 할머니의 모습을 내가 하고 있다.
하지만 몸무게보다도 더 중요한 건, '체력 향상'이다.
난 원래 체력이 꽤나 좋은 편이었다. 근데 근 5개월간 거의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으니 근육도 다 빠지고 너무 쇠약해져 버렸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먹기도 열심히 양을 늘려가며 먹었지만, 또 엄마와 함께 매일같이 운동을 나갔다. 초반엔 그냥 아파트 단지 내를 도는 운동을 했는데, 그러다가 집 근처 하천 길을 걷기 시작했다. 30분가량을 걸으면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다. 고작 30분을 걸었는데 마치 3-4시간 등산을 한 것처럼 다리가 아파온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다리가 지맘대로 후들후들 진동을 한다.
걷는 게 아직은 좀 느려서 같은 거리라도 난 시간이 더 걸린다. 기록을 보니 11월에는 하루에 2000~5000걸음씩 걸었다. 엄마도, 나도, 전처럼 같이 등산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근육을 키우자! 체력을 기르자! 아자아자 화이팅!
외래환자로 승급
항암치료를 다 마쳤어도 11월, 12월 두 달 동안 11월 첫째 주와 12월 마지막 주를 제외하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엘 갔다. 많게는 일주일에 두 번도 갔다.
병원 갈 일이 계속해서 있었는데, 일단 마지막 항암 후 치료성적을 보기 위한 CT 검사와 혈액 종양표지자 검사(CA-125), 산부인과 외래, 순환기내과 외래, 그리고 응급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산부인과 외래에서는 임파선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 PET을 다시 예약해 줬고, 내과 외래에서는 CT 스캔상 혈전이 전보다 더 커져서 복용하던 약을 주사로 바꿨다. 매일 프라그민 주사를 맞고 한 달 뒤 경과를 보자고 하셨다.
응? 자가주사라니. 내가 내 몸에 직접 주사를 놔야 한다고? 그것도 매일매일? 헐.
정 직접 못하겠으면 동네 병원에 가서 놔달라고 하면 놔준단다. 이런 걸 한 번도 해본 적,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리고 엄마 아빠도 좀 당황했다. 짧게 어떻게 주사를 놔야 하는지 교육을 받고, 처방된 주사를 받아왔다. 알코올 솜은 전에 배액관 소독할 때 쓰다 남은 게 있다.
엄마는 주사를 원체 무서워해서 못한다 하고 (엄마는 내가 정맥주사를 새로 맞거나 위치를 바꿀 때마다, 또 염증반응 평가를 할 때나 면역주사를 맞을 때도, 어떤 거든 내가 주삿바늘에 찔릴 때는 항상 뒤돌아보고 계셨다.), 아빠가 놔주겠다고 하는데 내가 괜찮다고, 혼자 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매일 해야 한다면, 매일 주사 놔달라고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그냥 내가 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뭐.
무섭긴 하지만, 난 할 수 있다, 이 정돈 별거 아니다, 주문을 외우며 나 자신을 다스린다. 근데 이럴 땐 정말 가족 중에 의료 종사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 동생이 간호사였으면 정말 좋았을 뻔했다. (ㅋㅋ)
아빠가 차마 못 보겠다고 하는데 내가 잘하나 감독을 좀 해달라고 부탁하고 처음 주사를 놓는데, 안 아플 거라고 했던 간호사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생각보다 아팠다.ㅠㅠ
배의 한 부위를 꼬집어 그 지방층에 주사를 놓고 솜으로 30초간 누르고 있는데, 약이 들어갈 때도 아프지만 다 들어가고 나서 퍼지면서 얼얼한 느낌이 지속되다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나아진다.
두려움을 뚫고 해냈다. 근데 내일도, 내일모레도, 그다음 날도, 또 해야 한다. 하하. 그래, 한 달만 잘해보자.
그리고 또 복수가 많이 차 불편해져 응급실에 갔다.
복수천자로 약 2.5L를 뺐다. 저번 달에는 잘 안 나올 때도 많았는데 이번엔 그래도 많이 잘 나왔다. 천자를 하고 집에 와서 보니 배가 정상인처럼 홀쭉하게 돌아왔는데, 너무 좋았다. 가볍고 내 원래 몸처럼 편하다. 이대로 유지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복수를 빼고 나니 그다음 날 몸무게가 2.8kg 줄었다. 신기하게 복수는 뺀 L 만큼 kg 수도 비례해서 줄어든다.
응급실 혈액검사에서 간수치(AST/ALT)가 다시 좀 높게 나와서 확인차 다음 주 외래 예약을 잡아줬다. 간수치가 한동안 정상으로 돌아왔었는데 왜 다시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혹시 몰라서 최근 먹기 시작했었던 할머니가 매년 다려주시는 배즙을 끊었다. 일주일 후 검사 결과 간수치는 다행히 다시 정상으로 내려갔다.
감격스러운 일상
5월 이후 처음으로 가장 친한 친구들과도 밖에서 만났다.
친구 한 명이 차를 끌고 내가 사는 동네까지 와줬다. 다른 친구가 알아놓은 동네 골목길 맛있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잠깐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밖에 있는 거 자체가 좋았고, 친구들을 보는 것, 만나는 것, 얘기하는 것, 같이 걷는 것, 함께 맛있는 걸 먹는 것, 하나하나 다 너무 좋아서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아~ 좋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연발했나 모른다.
내가 아프다는 걸 가장 먼저 안 친구들이다. 날 가장 걱정해 주고 위해주고 아껴주는 친구들이다. 서로 그런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이 친구들 때문에 난 정말 행복하고 무한히 감사하다. (있어줘서 고마워♡)
그 얼마나 소소하든 작은 거 하나하나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면서, 잃어버렸던 일상생활이라는 것을 되찾으며,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이 나에게 행복을 준다.
먹을 때 구토나 소화장애, 호흡곤란, 가슴 압박감 없이 먹을 수 있어 살 만하고, 그래서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어 좋고 (먹고 싶은 게 생기기 시작했다), 열심히 양도 늘려갈 수 있어 감사하다.
밖에서 쨍쨍한 햇살을 받으며 걸을 수 있어 행복하고, 엄마랑 같이 장 보러 갔다 올 수 있어 행복하고, 동생과 같이 옷 구경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외식을 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뜨개질을 배우는 것도, 하다못해 그냥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것도, 이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럭셔리, 호사로 느껴진다.
알록달록한 나무들과 파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고, 제법 선선해진 공기가 볼에 닿는 게 너무나 상쾌하고,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
<11월 30일>
거울을 봤다. 속눈썹이 새싹이 나듯 조금 자랐다. 너무 귀엽다. 하하.
My formula for greatness in a human being is amor fati: that one wants nothing to be different, not forward, not backward, not in all eternity. Not merely bear what is necessary, but love it
인간이 위대해지기 위한 나의 처방전은 아모르파티 (amor fati)다. 있는 그대로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미래에도, 과거에도, 영원히. 필연적인 일을 단지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Fredrich Nietzche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인생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병에 걸리고 몸이 아플 것이다. 사람들과 이별할 것이다. 나 자신의 실수로, 동료 인간들의 추잡한 짓으로 실패를 맛볼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그런 순간들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포용하는 것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교훈을 얻고 우리를 단련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삶 자체를 긍정하고 삶의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