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 Oct 22. 2023

살아가기

그날의 기록 #9

내 안의 소중한 장기들아, 우리 잘해보자!




프라그민


항암 6차 후 찍은 PET 결과를 들으러 갔다.

교수님께서 괜찮아 보인다고 하셨다. CT상으로 왼쪽 골반 위로 뭐가 보여서 정확히 하기 위해 PET을 찍자고 하신 건데, 그냥 임파낭종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그리고 또 오른쪽 갈비뼈 6,7번 사이에 조그맣게 뭐가 남아있다고 했는데 그건 이제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3개월 뒤에 CT를 또 찍어보자고 하셨다.

이제 좀 살만하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너무 좋다고 :), 대답했는데 그래도 아직 바깥활동은 조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로 거리 두기를 하라고 당부하셨다.


크게 걱정해야 할 건 없는 것 같아, 이제 정말 다 나은 것 같고 내 몸을 되찾을 일만 남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 주 순환기내과 외래에서는, 한 달간 혈전 주사(프라그민; 혈액응고 저지제)를 맞았으니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확인을 하러 갔다. '이제 좀 괜찮아져서 주사는 그만 맞아도 되겠지?' 생각하며 희망을 품고...


외래 전 혈액검사를 먼저 하는데, 혈전을 확인하는 검사는 혈액응고 수치(D-dimer)를 본다.

정상 범위가 0~0.5인데, 2.09가 나왔다. 교수님을 만나기 전에 난 이미 결과를 앱으로 확인한 상태였다.

아, 불안해졌다. 왠지 주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좀 높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안 높은 걸 수도 있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주사를 계속 맞아야겠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음 CT 검사 예정인 내년 3월까지 맞으란다.. 흑흑 ㅠㅠ 아... 슬펐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내 배를 보고 주사 잘 맞았다고 칭찬해 준 걸 위로 삼아 다시 3개월치 주사를 한가득 처방받아 왔다.


[3개월 후] 

지금까지도 밤마다 난 나를 위한 간호사가 되어 배에 자가주사를 놓는다. 여기저기 부분 부분 노랗게 멍이 들었고, 피가 나왔다 멈춰 멍울이 생겨 조그마한 피딱지들이 있다.

주사 놓는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적응은 되는데 익숙해지진 않는다. 아무리 해도 하기 싫은 날이 대부분이고 (하긴, 하기 좋을 날이 있을 리가), 이왕 할 거 얼른 끝내버리자는 마음으로 주사와 알코올 솜을 챙겨 앉지만, 할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더 아플 때가 있고, 덜 아플 때가 있고, 더 하기 싫을 때가 있고, 덜 하기 싫을 때가 있고, 그렇다.


(*자가주사 팁: 자기 주문. '빨리해 버리고 벗어나자', '이 살은 내 살이 아니다..', '난 아무 감각이 없다..', '하나도 안 아프다..')


이제 주사를 그만 맞아도 될지는 곧 결정이 난다. 에이, 설마, 이 정도면 됐겠지!..?!




암 만료일


나에겐 '암 만료일'이 있다.

이런 게 있는지 몰랐는데, 그냥 통상적으로 5년 동안 재발 없이 괜찮으면 '완치되었다고 간주'한다는 건 알았지만, 저런 용어가 있는 줄은 몰랐다. 부인과 외래에서 교수님을 잠깐 기다리는 동안 모니터를 슬쩍 봤는데, '암 만료일 : 2025-06-10'이 눈에 띄었다.

암 만료일이라니. 무슨 유통기한도 아니고. 웃프다.ㅋ


나 저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건가? 2025년 6월까지 아무 문제없으면 완치되는 건가?


아니! 암에 대해 조금만 공부해도 알 수 있다. 암은 완치가 없다. 암의 치료는 아직까지는 '생명 연장'치료이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기저질환처럼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저 얘네들이 더 나빠지지 않게 평생 관리하며 잘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걸 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너무 좌절할 필요도 없다.


솔직히 재발이 무섭다. 항암을 할 때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여유가 없었는데, 그냥 치료가 빨리 다 끝나기만을 바랐는데, 이제 항암치료가 끝나고 나니 재발이 두려워졌다. 특히 난소암은 재발률이 80-85%나 된다.

그럼 나머지 15%에 드는 수밖에. 한만청 박사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저런 통계는 딱히 환자에겐 쓸모가 없다. 개개인에겐 뭐든지 다 50 대 50이기 때문에.




이제야 알게 된 진실


이제 몸 상태가 더 많이 호전되고 나니, 살맛 나니, 궁금해졌다. 알고 싶어졌다. 나의 병에 대해서, 그리고 내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어땠는지, 수술을 어떻게 한 건지.

그래서 외래를 갔을 때 병원에서 처음으로 <의무기록>이라는 걸 떼 봤다. 지금까지의 CT 및 PET 검사 결과들, 유전자 검사 결과, 수술기록, 조직 검사 결과, 초진 기록부터 최근 재진 기록까지...

책 한 권을 만들어도 될 것 같을 만큼의 A4용지를 한가득 받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봤다.


근데 이런 의무기록지들은 그냥 읽을 수 있는 서류가 아니다. 영어를 잘 안다고 해도 모르는 단어들 투성이고, 의학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난 모르는 단어나 의학용어, 약자들을 하나하나 다 찾아가며 읽어봤다. 처음 검사를 받았을 때, 진단을 받았을 때, 수술을 했을 때, 항암을 하며 상태를 지속 관찰할 때 모두, 당시엔 정확히 내 상태가 어떤지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자세한 기록들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심각성을 다시 한번 제대로 깨닫는다. '나 이렇게 심각했었구나...'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낀다. '의사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많은 것들 중에 무엇보다도 새로운, 큰 사실을 발견했다.

진단명을 보니,

 

주 진단: Ovarian cancer

Ov ca IVB (optimal, serous, gr3)


라고 쓰여있다. IV? 잉?? 이건 4인데? 나 3기 아니었어???


난 이때까지, 항암치료를 다 마치고 두 달이 다 되어갈 때까지, 내가 3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의무 기록을 보니 아니었다. 4기B (IVB)였다.


아......

......

......


이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당황스러웠고, 충격이었다(이 표현이 맞나?). 난 내가 스스로 그냥 난 간까지 전이되었고 폐까지는 안 갔으니까, 흉부까지는 안 퍼졌으니까, 3기일 거라 생각했다. 근데 수술기록을 보니 나는 비장(spleen)에 실질조직 전이(parenchymal involvement)가 있어 국제산부인과협회 FIGO의 병기 결정 시스템에 따라 난소암 4기 B에 속했다. 실질 전이가 없었다면 IIIC(3기C)이다.


아, 이 고작 '1' 차이가 천, 만, 억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무슨 선고를 받은 것 같다. 두렵다. 갑자기 생명이 단축된 느낌이다. 생각이 많아진다.



 < 12월 10일 메모 >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야지 했다. 근데 그게 가능할까?
진단을 받기 전처럼, 아프기 전처럼 살 수 있을까?

건강한 성인일 때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듣기만 해도 무서운 4기 암환자가 되고 나서는 (그걸 알고 나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고민이다.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는, 내게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 곁에 있고,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소중한 나 자신을 잘 보살피고, 나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삶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당장 내년, 다음 달, 일주일 뒤, 바로 내일 죽는다 해도 후회 없는, 여한 없는 삶은 무엇일까?
......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며칠간 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머릿속으로 프로세스하고 나니, 시간이 조금 지나니, 4라는 숫자도 익숙해지고, 암, 환자, 모든 단어들이 익숙해진다.


숫자가 뭐 중요한가, 3기고 4기고 암환자는 암환자, 환자는 환자, 사람은 사람, 우리는 모두 한 인류... humanity... 하하



수술 기록을 보니 내가 왜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지 이해가 됐다.

그러고 나서 몸이 괜찮으면 그게 이상한 거였다. 세 과에서 협진을 했는데, 도려내고, 들어내고, 잘라내고,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몸속을 뒤집어 놨는데, 장기들이 잠깐 멀리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몸에 대해 공부할수록 우리 몸 안이 바로 우주구나 싶다. 그만큼 너무나 복잡하고 정교하고 아주 작은 하나라도 불필요한 게 없다.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려면 서로서로가 필요하고, 주인의 정성스러운 관리가 필요하다. 의학적으로도 우리는 하나하나 너무 소중한 존재이다.




내 몸에 암이 살아도, 난 나다.

그래도 나는 나!


12월엔 친구 따라 원데이 클래스들도 다녔다.

난생처음으로 캔들도 만들어보고, 베이킹도 해보고, 도자기는 아마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해본 것 같다. 캔들 만들기는 생각보다 좋아서 한 번은 친구랑 가고 한 번은 동생을 데리고 갔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니 즐겁고, 친구들과, 동생과 함께하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고, 이런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된 내 상태가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 이 정도만 돼도 인생, 충분히 살 만하다!



눈썹과 속눈썹은 이제 다시 다 자랐다. All brand new and 풍.성.! ㅎㅎ


이제 우는 일도 없어졌다. 전엔 하도 툭하면 눈물이 나오고 울음도 자주 나와서 갱년기 증상인가 했는데 (난소와 자궁을 모두 제거한 난소암 환자들은 더 이상 생리를 안 하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증상이 있을 수 있다), 그냥 몸이 아파서 그런 거였다. 너무 힘들고 아파서... 근데 이제 아픈 일도 없다! 야호!



운동도 꾸준히 했다. 거의 매일 엄마와 밖에 나가서 하천 가를 걸었다. 12월에 하루 평균 5500보 정도를 걸었는데, 12월 말에는 하루 만보를 달성했다! 기록이다. 아프고 나서, 4-5월 이후 처음으로 만보를 걸었다.

한때는 한 걸음 한 걸음 떼기도 힘들었던 내가 하루에 만보를 걸을 수가 있다니! 그러고서 다리도 아프고 많이 피곤해서 잘 쉬어줬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꾸준히, 열심히 걸으면, 체력이 진짜 증진된다. 그리고 물론 그렇게 체력을 증진시키려면 연료를 잘 넣어줘야 한다 (잘 먹기!).



새로운 것도 배워보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내 병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하루하루가 꽤 바쁘게 지나간다. 그리고 그런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하다. 살맛 난다. 이런 게 일상을 다시 되찾았을 때, 작지만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다시 되찾았을 때 오는 행복이구나.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복수

12월 말에 한 번 더 병원에 갔었는데, 복수가 또 차서 외래치료실에 예약을 잡아 갔다.

저번 달 말에 복수천자를 하고 온 지 딱 한 달 만이다. 근데 전에 비해 양이 좀 줄기도 했고, 불편감도 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뺄 수 있는 만큼의 양이 있었고 (초음파로 봤을 때 장기와의 간격이 2-3cm 이상이면 가능), 나도 빼는 게 더 편하고 좋기 때문에 천자를 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주사기로 뽑으면 나오고 그냥 내버려 두면 아예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큰 주사기로 두 번을 뽑고, 그냥은 나오지 않아서 결국 복수를 못 빼고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양이 전보다 줄기도 했고, 또 복막이 자꾸 관 구멍을 막아서 안 나올 수 있다고 그랬다.


어쨌든 복수는 위험 가능성이 있으면 천자를 그냥 안 하는 게 낫다.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거 자체가 복수를 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들어있지 않고 애매하거나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난 이제 복수천자에 약간 두려움이 생긴 게, 하고 나서 복막염이 생겨봤기 때문에 이제는 웬만하면, 그렇게 엄청 불편한 정도가 아니면 그냥 안 하려 한다.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점차 흡수되고 덜 생성되며 줄어들겠지...


근데 이번에 새롭게 느낀 게, 전에는 복수천자가 별게 아닌 거였지만, 이번엔 조금 무서움을 느꼈다.

신기했다. 지금까지 수 번이나 한 복수천자인데, 이 정도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근데 이제 병원생활도 안 하고 몸도 많이 회복되고 시술할 일도 없고 그러니 그런 '별거 아닌 거'였던 게 좀 '별거'로 느껴진다. 더 아픈 것 같고, 더 무섭고. 몸 상태가 괜찮아지니 복수천자를 마주하는 나의 자세와 느낌이 달라진다.

아무튼, 이번에 간절한 나의 생각은 오로지 '배에 주사 좀 그만 찌르고 싶다..ㅠㅠ'였다.



처음으로 집에 전구 트리도 만들어서 장식해 놓고, 마지막 주말엔 가족끼리 바람 쐬러 대부도도 갔다 오고 (정말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너무 좋았다),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연말을 보냈다.



난 너에게 아무런 미련이 없다.

잘 가라, 2020.

잘했다, 나. 앞으로도 잘하자.

:)



이전 10화 되찾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